정부가 메르스 확진 18일 만에 환자가 발생·경유한 의원 24곳을 일괄 공개 함에 따라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뒷북’ 대응과 거기서도 여지없이 벌어진 어설픔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으나 보수언론은 상대적으로 톤을 낮춰 메르스 사태를 통합적 리더십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면을 배치했다. 하지만 보수언론마저도 이번 사태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무능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조선일보 8일자 4면 기자수첩.

조선일보는 8일 정부의 메르스 관련 대책을 보도하며 4면 하단에 정시행 정치부 기자의 글을 배치했다. 이 글에서 정시행 기자는 정부가 발표한 병원 명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들며 “나흘 동안 24개 병원 명단을 정리해 중복 확인하는 게 그렇게 벅찬 일인지, 고위 간부들은 피곤한 실무자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발표만 한 건지 의문이 든다”고 썼다. 또, 정시행 기자는 “정부가 이왕 ‘메르스 관련 병원’을 공개하기로 했다면 무엇보다 정확성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면서 “부실한 메르스 대처로 신뢰를 잃은 정부가 병원 명단 발표마저 부실하니 어느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도 썼다. 비록 지면에서 작게 편집돼있긴 하지만 문제를 잘 짚고 있는 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날 조선일보에는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의 글도 실렸다. 이 글에서 박성희 교수는 유능한 지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과 태도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문제를 풀려면 우선 정보를 모아야 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해 모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므로 소통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에서 정보를 틀어쥐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성희 교수는 “오랫동안 우리는 ‘억압하지 않는 정부’를 꿈꾸어왔고 그 꿈은 어느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이제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부’를 갖고 싶다”면서 “유독 ‘골든타임’을 자주 외친 지금의 정부에 과연 고장 난 아날로그 시계 하나라도 고칠 능력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도 꼬집었다.

▲ 조선일보 8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박근혜 정부가 메르스 사태에 대한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김만수 부천시장 등이 독자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언급하며 “지자체장들이 독자적으로 나선 데엔 ‘정치적 보여주기’ 목적도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정부가 분명한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하며 부실하게 대처했던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메르스 초기 대응 책임이 질병관리본부장, 보건복지부 차관, 보건복지부 장관 등으로 격상됐지만 학교 휴업에 대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엇갈리는 등 부처 간 협의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지자체장들도 겉으론 정부에 협조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론 저마다 ‘대책본부장’을 자처하며 중구난방으로 나서지 말고 정부 지침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조선일보가 삼성서울병원을 비판하는 사설도 지면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최고 수준 의료진과 시설을 갖춰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는 최상급 종합병원이다. 평택성모병원 같은 지역 기반 병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라면서 “그런 병원에서 전염병이 확산된 것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조선일보는 또 삼성서울병원에서 3차 감염자가 발생했고 메르스 증상 환자가 실려왔는데도 폐렴환자로 취급하면서 사흘간 격리나 소독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면서 “국내 최고 수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놀랍고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의료계 일각에선 보건 당국이 메르스 관련 병원 이름 전면 공개를 늦춘 것이 ‘삼성서울병원 집단 감염’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면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조선일보에는 메르스 격리자와 의료진에게 심리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도 실렸다. 김현수 서남의대 명지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날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전염성 감염 질환에 따른 격리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고 정부의 안내도 충분치 않을 뿐더러 감시 및 처벌만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자가 격리 대상자에 대한 인도적 돌봄, 격리 기간 중 스트레스를 낮출 격리생활 안내, 격리 기간 중 직장 업무를 줄일 조치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교수는 메르스 치료에 나선 의료진이 지쳐가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인간적 배려와 성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이날 3개 사설을 모두 메르스 관련 이슈에 할애했다. 중앙일보는 메르스의 지역전파를 막기 위해 범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지자체의 경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마자 마을 자체를 폐쇄한 전북 순창을 모범사례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정부가 사회·경제적 위축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질병관리본부가 의료계에 대해서만이라도 미리 충분한 정보를 주었더라면 첫 환자를 확진했던 삼성서울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3차 감염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대목은 중앙일보가 삼성과의 어떤 ‘특수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보다 흥미롭게 다가온다.

▲ 중앙일보 8일자 사설.

사설에서는 침착했지만 중앙일보 역시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지면에 배치했다. 중앙일보 정경민 경제부장은 이날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글에서 3차 감염자가 처음 발생한 날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여수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갔고 총리 대행을 맡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우 유럽 출장을 떠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 수장들의 이런 태도 때문에 보건복지부, 교육부, 서울시 등이 학교 휴업과 정보 공유 등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이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정경민 부장은 메르스 때문에 부동산과 증시 등 경기 회복이 더뎌지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고 경제부처 장관들은 내년 총선 출마를 의식해 실현이 불가능할 경기활성화 대책들을 쏟아내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3개 중 2개를 메르스 관련 이슈에 배치했는데, 이 중에는 중앙일보와 비교해서도 더 강경하게 삼성서울병원 2차감염 사례 원인이 정부의 대응에 있다는 주장이 실려있는 것도 있다.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삼성서울병원 측이 집단 감염을 일으킨 14번 환자가 1번 환자와 평택성모병원 같은 병동에서 지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고 분석하면서 “정부가 의료기관에 메르스 감염 병원 명단을 알렸거나, 질병관리본부가 전담한 확진 판정을 지방자치단체와 분담해 확진 판정 시간을 최대한 단축했다면 이처럼 대규모 격리대상자가 나오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성병원발 메르스 2차 확산은 정부의 정보 독점이 빚은 참사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8일자 사설.

또 동아일보는 정부가 발표한 병원 명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무리 총리 대행 체제라지만 메르스 사태를 총괄지휘하는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초기 대응에 실패했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총지휘를 계속 맡겨둬도 되는지 불안하다”면서 “정부가 무능을 드러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부와 엇박자를 낸 것도 국민의 불안감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9월 미국 에볼라 사태 때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에볼라 감염 환자가 다녀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메르스 소비 위축을 걱정하는 최 대행(최경환 총리 대행), 한밤중에 TV긴급회견을 열어 논란을 불렀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가든파이브 식당에 찾아가 외식도 하고 소비도 함으로써 시민을 안심시키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수언론들이 이날 지면에 게재한 글들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고 나름대로의 제안 등을 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정부가 누구도 신뢰하지 못할 정도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메르스 사태라는 위기 앞에서 무능만을 드러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여론이 심각한 정도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범국가적 대응과 이를 위한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사태가 일단락되면 정부 대응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보수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우리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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