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한가요?”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서 ‘안녕’이라는 단어의 구술을 선호한다. 부디 ‘안녕’이라도 했으면, 그리고 그 시시한 시간 속에서 그저 ‘안녕’하기만을 기대하는 소박한 인사법이다. 그래서 다시, 2008년 “안녕한가요?”를 되물어 본다. 나의 2008년 시시콜콜한 개인사(라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만은 그렇게 보편적인 개인사들이 경험이고, 상식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과연 ‘안녕한’ 발견은 무엇일까? 시시한 개인사를 펼쳐 놓을 수는 없겠지만(아니 펼쳐놓아봤자 재미도 없겠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개인사를 빼고 나면 단연 ‘소녀’들이 나에게는 ‘안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단코 나에게 2008년의 발견은 ‘소녀’다.

10대를 거쳐 20대, 그리고 갓 진입한 30대까지. ‘나는 신세대’에서 ‘꼰대가 되기는 싫어’로 세대적 갈등과 차이를 부단히 거부해왔다. 허나 흘러가는 시간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소녀들과의 거리감은 비단 늘어나는 주름이 아니라 이제는 대중가요의 랩을 버벅거리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히며 점차 커져만 가고 있을 찰나, 소녀들과의 스킨십을 경험하였다.

비호감 연대 ‘이명박’

첫 인상은 꽤나 조악했다. “미친소, 너나 ‘처’먹어라!”라는 제목의 집회. 지난 2년 한미FTA 반대 시청각 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진행했던 경험 때문인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는 이미 나에게는 시들해진 의제였다. 그래서인지 비가 내리던 5월 2일, 대수롭지 않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오후 청계천으로 나오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말 오후 꾸물거리다가 별 생각없이 보신각 앞으로 향했다. 일행을 만나고, 보신각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청계천 소라광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한 그 분 덕분에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 그 비싸디 비싼 소라 앞에 자리를 펼 수 있었다. 문화연구를 하는 동행자는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순간의 행위와 말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심지어 급하게 책 뒤에 이것저것 메모를 하기 시작하였다.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유쾌함 속에서 나 역시 사람들 한 명 한 명, 그 공간을 주시했다. 작은 단상 위에서 울려 퍼지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이들의 단어를 잡아낸다. 그리고 내 옆에는 정말 ‘소녀’들이 앉아 있었다. 교복 치마가 내심 불편하지는 않을까 흘깃거려 보지만, 생각보다 소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음악프로그램에서 보던 정성이 담긴 작은 피켓도 보인다. ‘아~악~’하는 함성은 음악프로그램이나 콘서트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하이톤. 집회 현장이 아니라 진짜 ‘공연장’, 그러니까 ‘문화제 Festival’에 온 것 같았다.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니 그렇게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들이 가득했다.

단상 위에서도 소녀들의 활약은 빼어났다. 구태의연한 공식화된 ‘집회’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의 불만을 토로했다. 독서실을, 학원을 등지고 소라광장에 모였다는 소녀들은 그들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교육의 문제서부터, 광우병 이야기, 그리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인간극장>처럼 풀어냈다. ‘기특한 소녀’가 아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계기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는 세대적 간극을 뛰어 넘는 소녀들과의 만남이었고, 접촉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물체이고, 감성의 교감을 나누는 친구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의 굳어버린 머리에 충격을 가져다 준, 말라버린 상상력에 냉수를 퍼붓는 유쾌한 스승은 아닐까.

호감 연대 ‘빅뱅’

사무실 옆 친구가 핸드폰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란스런 벨소리를 선물하였다. 빅뱅의 ‘마지막 인사’. 그 당시만도 노래의 멜로디가 익숙치 않아, 벨소리는 모닝콜로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사실 이제 곧 30이라는 나이에 등극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돌 가수와 그이들의 노래는 의식적으로 나에게 배제되어 왔다. 시간을 거슬러 2006년 빅뱅의 첫 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어 발표된 ‘Dirty Cash'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만 해도 ’고만고만한 아이돌 그룹이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는 노랫말을 가지고 등장하였군‘이라는 냉소를 보냈을 뿐, 나에게는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빅뱅에게 꽂혔다. 사람이 좋아지는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못하겠다. 포털에 ‘빅뱅’을 검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영상과 그들의 음악을 찾아보고, 찾아듣고. 그들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MP3에는 빅뱅의 모든 앨범에 실린 노래들이 많은 용량을 차지하고 있고, 몇 개의 노래를 제외하면 모두 흥얼거릴 정도로 섭렵하였다.

물리적 시간의 집중, 그 시간에 난 소녀들과 또 접촉을 시도하였다. 온라인상에서 소녀들이 구축해 놓은 정보를 클릭하고, 접속을 시도한다. 물론 아쉬울 때도 있다. 한 포털의 꽤나 큰 규모의 빅뱅 팬카페에는 ‘10대들의 친목대화’ ‘20대들의 친목대화’라는 게시판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소녀들에게 나는 아직 ‘발견’은 되지 못한 것 같다. 하긴 TV음악프로그램 공개방송에 찾아갈 배짱도 없고, 그나마도 한 번 시도해보려 했던 콘서트는 5만원이라는 티켓 값에 다음을 기약할 뿐이니. 그럼에도 단언컨대 나는 내 또래의 친구 중에 빅뱅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또래의 친구들과 소녀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소녀들은 또 한 번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물체이고, 감성의 교감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소녀들은 나의 굳어버린 머리에 충격을 가져다 준, 말라버린 상상력에 냉수를 퍼붓는 유쾌한 스승이 되었다.

안녕한가요?

2008년 시시한 개인사에서 요란스럽게 호들갑 떨고 싶은 사연들이 말들로 가득 찰 12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난 ‘소녀’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소녀들과 접촉했던 ‘호감 연대 빅뱅’과 ‘왕비호 연대 이명박’에 대해서 떠들고 싶을 뿐이다. 빅뱅의 음악을 이야기하고, 그이들의 스타일과 퍼포먼스에 대해서 소녀들에게 얻어 낸 정보들을 쏟아낼 것이다. 이명박의 독단과 오만한 정책과 소녀들과 나를 괴롭히는 실체에 대해서 소리 높여 꼬집어낼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지껄이고 난 이후, 소녀들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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