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사이버통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른바 ‘광우병 괴담’ 수사를 통해서 인터넷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이명박 정부는 ‘쥐박이’, ‘2MB’ 등의 용어 사용 금지를 뜻하는 사이버모욕죄를 적용하려다 한때 역풍을 맞았으나, 고 최진실씨의 죽음을 계기로 사이버모욕죄를 다시 꺼내들었다. 여기에 임의로 인터넷 감청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까지 들고 나왔다.
미디어행동은 이러한 일련의 인터넷 통제 관련 법안을 ‘사이버 통제 3대법안’이라 규정하고 청와대와 여당의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려는 각종 악법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각각의 법률안 등에 대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미디어스>는 ‘사이버모욕죄’, ‘인터넷실명제’, ‘사이버감청’이 가진 의미와 문제점을 세 차례 전문가 기고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10월 11자 매일경제신문 23면.
모욕은 특정 상대에 대한 의견과 감정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모욕 규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견과 감정의 표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인데, 이는 헌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법원 판례들이 이미 명예훼손 법리를 해석하면서 의견표명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상대에게 듣기 싫은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유로운 토론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의견표명 자체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과격하거나 저열한 표현을 쓰지 말자는 취지라고 모욕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어느 표현이 과격하고 저열한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 대법원은 ‘부모가 그러니 자식도 그렇지’라는 표현은 모욕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음란한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은 모욕이라고 판단하였는데, 필자가 실험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표현이라도 표현의 대상이 된 자가 느끼는 과격함과 저열함의 정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존감(自尊感) 즉 체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신은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당신은 대통령 재목이 못 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 될 수 있다. 표현수용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자존감에 따라 표현의 가벌성이 달라진다는 것은 표현자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될 것이다. 결국 표현의 과격성 저열성은 규제의 잣대가 될 수 없다.

혹자는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내의 자존감의 침해만을 모욕으로 처벌하면 위 문제는 해결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합리적으로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의 범위를 법원이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법원은 객관적 지표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은 ‘사회적 지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 말은 초등학생 같은 소리이다’라는 표현도 교수가 학생을 향해 사용한다면 모욕이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학생이 교수에게 사용한다면 모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표현이 제시된 상대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표현의 가벌성이 달라진다면 표현을 사용한 사람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불평등한 침해가 될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법원이 한 사람이 가진 합리적인 자존감의 범위를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든 재단하는 것 자체가 행복추구권의 핵심적 요소를 침해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모욕 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한 욕망은 명예훼손 규제를 이용하여 객관적인 평판을 허위주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주관적인 ‘체면’까지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일반인에 대한 모욕죄가 있는 국가는 독일과 일본 뿐이고, 독일에서는 마지막 유죄판결이 1960년대였고 일본에서는 처벌이 매우 경미하다. 미국은 모욕죄 자체가 없다. 일부 사람들이 모욕 규제가 프랑스 등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왕정시대에 만들어졌다가 현대에 와서는 사문화되거나 점차 폐지되어 가고 있는 국가모독죄이거나 역사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겪어왔던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혐오죄이다.

우리나라의 모욕 규제가 가지고 있는 더욱 큰 문제는 그 규제의 집행이 형사처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선진국들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제도마저도 거의 폐지되거나 사문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권력자들이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를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패악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예훼손죄보다 더욱 남용 가능성이 높은 모욕‘죄’를 두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논리적으로도 모욕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욕도 포함하게 되어 전세계적으로 폐지 및 사문화의 일로를 밟고 있는 국가모독죄를 두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사이버모욕죄의 신설은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적 모독이 될 것이다.

혹자는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는 사이버명예훼손죄가 있으니 모욕을 가중처벌하는 사이버모욕제도도 만들 수 있다’라고 한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도 위헌적인 상황에서 사이버명예훼손죄를 이용해 사이버모욕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겨가 묻어 있으니 똥도 묻히자”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또 현재의 법안은 모욕죄를 친고죄에서 반의사불벌죄로 변경하려 하고 있고, 이는 모욕 규제의 취지 자체를 형해화하는 것이다. 모욕은 개인이 느끼는 모멸감을 방지하거나 개인이 가진 자존감을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이 모멸감을 느꼈는지에 대한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는데 이를 처벌한다는 것은 절도된 물건이 없음에도 절도죄를 적용하는 것과 같다.

사이버모욕죄 찬성자들은 우리나라 인터넷문화의 특수성을 들어 사이버모욕죄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그러나 (1)진정한 불법정보와 (2)단순모욕을 구별해야 한다.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명예훼손 조항, 음란물 배포죄 조항 등의 인터넷 상의 책임을 강화하면 된다. 최진실씨의 죽음도 명예훼손과 관련된 것이지 모욕죄와는 관련이 없다. 우리나라의 인터넷문화가 아무리 특수하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종류의 모욕죄까지 만들면서 개인의 감정이나 의견의 표현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보편타당한 원칙까지 포기할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숙고해보아야 한다. 최씨의 친한 친구였던 정선희씨가 사이버모욕죄에 대해 반대의견을 이렇게 제시한 바 있다. “문화는 거대한 호수와 같다. 어떤 미생물이나 병균이 자란다고 해서 물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 글을 대한변협신문에 실렸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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