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지인이 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부당해고를 당했고, 노동부를 찾아갔다”고 했다. 그가 있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사실을 알게 된 기자는 “노동부 판단을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동부에서 “우리는 80~90%가 노동자의 편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안심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는 한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곳은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노동 관련 부설기관 정도다.

일본의 방송사 NTV가 2013년 4분기 내보낸 드라마 <단다린 노동기준감독관>이 떠올랐다. “서비스 잔업, 이름뿐인 관리직, 직권남용 상사에 의한 불공정한 대우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여성 감독관 단다린”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한국으로 치면 근로감독관 이야기다. 단다린(타케우치 유코 분)은 출근길 ‘아르바이트 구인공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근로감독관이다. 그는 “경영위기는 경영자의 책임”이라며 “노동자에게 함부로 전가하지 말라”고 말한다.

막장드라마 작가 같은 한국의 근로감독관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다. 백우연 청년유니온 노동상담국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준수·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소개한 노동상담 사례를 보면 근로감독관의 직무는 “기업과의 유착”이나 “직무유기”에 가깝다. 실제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 진정을 낸 노동자에게 “근로자는 사실상 노예”라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근로감독관에게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014년 8월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대형마트 하청노동자(20대 여성)는 정규직 남성 캐셔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을 문제제기한 뒤 폭행과 사내 왕따를 당했고, 회사에서 자신의 사물함을 뒤진 것을 목격한 뒤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는 노동부 진정 열흘 뒤 체불임금을 받았지만 근로감독관은 성희롱 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은 오히려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고, 사업주도 돈을 줬으니 더 이상 문제제기하지 마라”며 다그쳤다고 한다.

업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사례는 차고 넘친다. 비슷한 시기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22세 여성노동자은 2013년부터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했다. 그가 노동부를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받고 끝내라”는 것이었다. 한 20세 여성노동자는 수능시험을 치른 뒤 예식업 이벤트회사에서 일했는데 체불임금 때문에 근로감독관을 찾았다. 그런데 감독관은 “네가 법적 대표를 찾아와라. 우리는 그런 것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초고용질서 확립?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사각지대를 관리·감독해 ‘사법처리’까지 할 수 있는 곳도 노동부가 유일하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에 따르면, 2014년 노동부가 점검한 업체는 2012년에 비해 4분의 3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재혁 간사는 “수시감독을 제외한 모든 근로감독 실시규모가 감소했고, 정기감독 실시규모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노동부가 정기감독을 통해 들여다 본 업체는 2012년 7093곳에서 2014년 1897곳으로 크게 줄었다. 기업과 사용자가 법을 잘 지켰다고 해석하는 것보다 노동부의 관리감독과 단속이 헐거워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수년 전부터 확립하겠다고 나선 △최저임금 준수 △근로계약 작성 △임금체불 예방 등 ‘3대 기초고용질서’를 보자. 노동부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거나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2014년 3대 기초고용질서를 어긴 1만1946곳 중 단 3곳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사법처리도 120곳에 불과하다.

노동부의 최저임금법 위반업체 집중점검 결과만 보더라도 노동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06년 1만7732개였던 점검업체 수는 2009년 2만5505개까지 늘었다가 2013년 1만3280개까지 떨어졌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최저임금법 위반 사법처리 건수는 82건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근로감독 행정이 취약하고 벌칙 수준이 낮으면 최저임금은 종이호랑이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3대 기초고용질서 확립은 결국 노동부의 몫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영세사업장에 준법을 유도하면서 근로감독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에서 저임금 일자리는 고임금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나 노동시장 진입 일자리(entry job)이 아니다. 청년, 여성, 고령층에게 다양하게 적용되는 ‘덫’”이라며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최저임금 인상 수혜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와중에 국회는 대통령 공약 틀렸다며 ‘규제완화’

근로감독관이 1485명(정원 대비 87.9%, 2014년 8월 기준)뿐이고 감독관 1인이 담당해야 하는 사업체가 1711개(노동자 수는 1만5272명)나 되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정부의 들쭉날쭉한 정책기조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본연의 임무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은 “근로감독관 업무는 매년 세우는 감독계획에 따라 선정된 극소수 사업장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어 감독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아닌 ‘규제완화’를 추진 중이다. 최재혁 간사는 “고용노동부가 ‘기초고용질서’라고 지칭한 내용은 강행규정이며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강행규정의 이행과 관련한 사업을 근로조건자율개선사업 확대 등 민간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심지어 최저임금의 경우,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위반에 대한 처벌 수위를 낮추는 개정안을 스스로 제출하고,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4월 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사실상 결론을 지었다.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며 “과태료로 전환해서 일단 시행을 해 보고, 그것만으로도 최저임금 위반 행위가 시정이 안 되고 감소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좀 더 강력한 제도가 나와야 되는 것”이라고 밀어붙였다.

노동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제재 수준을 높이는 게 대안이다. 김유선 연구위원은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탈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최저임금 위반 적발 즉시 과태료 부과 △반복적으로 최저임금을 우이반한 사업자 처벌 △최저임금 전담 근로감독관, 명예 근로감독관 운영 △최저임금 위반 신고 간소화 △최저임금 준수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서 사용자로 전환 △최저임금 체불임금 노동부 선 지급, 후 구상권 행사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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