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 문제에선 잘못된 수치를 제시하며 '세대 갈등'을 유발했고, '보건' 문제에선 놀라울 정도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공포가 퍼지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메르스’가 한반도에 상륙해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는 자세로 하나하나 철저하게 대응하겠다”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됐다. “보건복지부가 개미만 잡은 거 아니냐”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앞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주장에 대해 “세대간 도둑질”이라고 발언한 것까지 엮여 '보건'과 '복지'에 모두 무능한 문형표 장관의 사퇴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 여당의 한 의원은 “낙타가 있는 나라보다 대한민국에 메르스 환자가 더 많다”고 짚기도 했다. 낙타는 메르스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다.

이번에도 여지 없는 '초기대응' 실패, 이 정부는 늘 왜 이런가

박근혜 정부들어 무언가 ‘초기대응’에 실패하는 것이 늘상 있는 문제가 됐다. 세월호 참사는 대표적인 초기 대응 실패의 문제였다. 이번의 경우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동물을 대상으로 한 질병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전염병이었단 점에서 초기대응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은 이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이 애당초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들게한다. 이 정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대상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피해를 입는 개체의 수는 얼마나 되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비용’이 얼마인지, 해결책이 얼마나 ‘효율적’인 것인지 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질병관리본부가 최초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검사를 거부하였다는 사실 또한 확인되는데, 이것 역시 효율성과 비용의 문제를 빼놓고는 상상하기 힘든 사례이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그러니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사람을 앞에 놓는 것이 아니라 비용과 효율성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면 ‘인간’에 속하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국가와 체제를 믿지 못하니 스스로를 ‘자력구제’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괴담’은 그렇게 발생한다. 지난 주말 각종 SNS 등을 통해 메르스 관련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돌아다닌 것은 이런 때문이다.

비용과 효율부터 따지는 '비인간적' 정부가 낳은 불신 사회

‘괴담’을 제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국가와 체제를 믿을 수 있도록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는 반대로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예컨대 보수세력이 늘 강조하는 대로 국내의 혼란을 바라는 ‘적국’의 요원이 그러한 괴담을 유포한 것으로 본다면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괴담’을 공유하는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그 ‘괴담’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 중 하나인 ‘정부의 은폐 시도’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정부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싶다면 괴담 유포자의 처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대규모의 대응책을 내놓는 것을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그러한 해법의 가능성은 늘 유예된다.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를 거스르는 어떤 전향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를 ‘책임’져야만 한다.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의심 환자에 대한 검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병원 측에 “메르스가 아니면 책임질 거냐”라며 짜증스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만일 질병관리본부가 그들 윗선의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룰 수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화끈하게 책임을 져줄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대통령이다. 종종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고 수틀리면 정부조직을 ‘고심 끝에 해체’도 시키는 바로 그 박근혜 대통령 말이다.

▲ 메르스 확진 환자가 3명 늘어난 1일 한 중국인 관광객이 마스크를 쓰고 서울 경복궁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 괴담은 결국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향해 간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메르스와 괴담, 대중적 공포에 대한 문제가 정치에 대한 대중적 냉소주의와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기본 도식은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믿을 수 없으며 그들은 뒤로 자기들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자신의 사익만 추구하는 속 좁은 사람으로 묘사했던 ‘나꼼수’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를 오랫동안 해온 정치전문가보다는 정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정치신인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쨌든 정치에도 어떤 ‘기예’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신인의 실패는 대중적 냉소를 강화하기 마련이다.

‘괴담’이라고 하면 보수세력은 반사적으로 2008년의 촛불시위를 떠올린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입장이 큰 문제가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고의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감을 키워 대중적 혼란을 조성해 보수정부에 타격을 줬다는 게 이들이 생각하는 ‘광우병 사태’의 진실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보수세력은 촛불시위 정국 당시 인터넷 사이트 등에 올라왔던 광우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글들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촛불시위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초는 다 어디서 갖고 오는 건가”라는 의문은 이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해주는 문장이다. 이 시기 직후에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보수세력이 촛불시위의 ‘배후’를 ‘친노’로 특정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런데 2008년 촛불시위 정국을 이명박 대통령에 반대하는 어떤 ‘세력’이 ‘기획’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과 경험을 돌아봐도 그렇고, 촛불시위에 참여한 당시 제1야당 소속의 정치인들이 오히려 곤혹스러운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는 점을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보수세력의 촛불시위에 대한 독특한 회고는 ‘괴담’을 ‘괴담’의 방식으로 다루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가 ‘메르스 괴담’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는 것은 ‘괴담의 배후’를 상상케 하며, 그 배후에 대한 또 다른 ‘괴담’을 생산하게 할 만한 정치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즉, ‘괴담으로 이득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주장을 정치적 냉소주의의 일반적 도식과 결부해보면 박근혜 정권은 지속적으로 대중의 냉소주의를 활용한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냉소주의를 활용해 온 박근혜 정부야 말로 '괴담'의 진원지

결국 ‘괴담’이 확대되는 것은 정치가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배달사고 사건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살아있는 탄저균을 ‘실수’로 오산공군기지에 반입했다고 하는 미국의 설명을 이해하고 인정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소파(SOFA, 주한미군주둔지위협정) 개정의 검토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나 이것이 음모론적 방식으로 소화될 경우 또다시 괴담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권이 이러한 괴담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면 모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해 신뢰를 쌓아가면서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악용하는 정치를 그만두면 된다. 그러나 국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대통령이 ‘쉬운 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남은 2년 반 남짓 한 기간 동안 우리는 더 확산된 정치적 냉소주의를 앞에 두고 괴담들에 뒤덮인 사회를 눈앞에 두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언론이 이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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