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사회성과 연계채권을 통한 민자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해 2월, 서울시가 박운기 서울시의원을 통해 제출한 <서울특별시 사회성과연계채권 운영에 관한 조례>는 이후 <사회성과 보상사업 운영 조례>로 수정되어 한 달 만에 통과되었다가 다시 <사회성과보상사업운영 조례>로 추가 수정됐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도입되는 조례였는데, 조례명의 곡절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논의없이 졸속적인 과정을 통해 통과된 셈이다. 서울시가 해당 조례에 근거해 첫번째로 제출한 <그룹홈 아동대상 사회성과보상사업 동의안>은 9월에 제출되었으나, 같은 달 30일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해당 사업을 추진했던 사회투자재단 등에서는 시의원들의 무지를 개탄하는 등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유형의 민자사업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던 점에 비춰보면 이를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서울시는 2014년 11월 위 안건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한 <공동생활가정 아동교육 사회성과보상사업 동의안>을 제출했고 2015년 4월 2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달라진 내용이라고는 기존에 MOU(양해각서)를 맺은 대상이였던 한국사회투자재단과 MOU해지를 통해 특혜시비를 방지한 점과 사회성과 측정의 핵심인 웩슬러 지능검사 시 친권자의 동의를 추가해 인권침해 소지를 없앤 것 뿐이다.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기존 그룹홈 아동을 대상으로 웩슬러 지능검사(일반적인 IQ검사)를 실시하여 검사수치가 낮은 아동들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향후 사회에 진출했을 때 수급자가 될 확률을 낮추어 사후적 사회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모호한 성과의 검증, 불가피한 사회적 낙인효과

이번에 서울시가 제시한 그룹홈 아동에 대한 제도 설계 내용을 보자.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동 중 경계선급 지능 및 경증 지적장애 아동(IQ 64~84) 100여명에게 3년간 1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여해 정서회복 및 기초학습 프로그램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정적 보상은, 10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했을 때 향상자가 10명 미만이면 10억 7천만원의 투자 비용을 잃게 되지만, 31%에서 33% 사이면 투자금만 회수를 하게 되고, 33%이상부터는 최대 30%의 인센티브를 받게되는 식의 설계다. 사실상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기존의 민간투자사업과 같은 유형이다. 기존의 사업이 도로나 터널 등 사회인프라투자에 집중되었던 것에 반해 사회서비스투자에 집중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모델이 가지고 있는 검증되지 않은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사회성과에 대한 검증 여부다. 사회성과연계채권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실시하는 사회정책 사업 중에서 프로그램 사업을 바탕으로 설계되는 금융투자모델이다. 이 프로그램의 초기 모델이었던 영국의 사례를 보면, 만약 전과자 3,000명의 재범율이 30%라고 했을 때 재범률을 25% 수준까지 낮추면 투자원금을 받고, 22%까지 낮추면 성과급을 받는 형태다. 이번에 사회투자재단에서 서울시에 제안한 사업은 이 모델을 그룹홈 아동에 적용한 것으로, 경계선 지적기능 아동(지능이 상대적으로 낮아 나중에 사회로 진입할 경우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30% 정도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즉 대상에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인프라는 시설의 수요 자체가 직접적으로 검증되지만 '사회성과'에 대한 검증은 '이현령 비현령'이 될 공산이 크다.

▲ 서울시가 제시한 그룹홈 아동에 대한 예산절감 효과

자세히 보자. 이 사업의 구조는 “지능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이 적절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사회보장 수급자나 혹은 시설생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지능향상을 통해서 탈 시설이 되면 시설유지 비용이 줄어들고 사회 보장 수당 역시 줄어서 돈이 절약된다는 구조다. 일차적으로 지능향상이 해당 사회사업의 결과인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은 제쳐두자. 문제는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대상에 대한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높으면 직업을 구해서 탈시설이 가능하다는 전제 자체가 굉장히 편견에 기반한 시각이며, 무엇보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회시설 자체에 대해 ‘비용'으로 접근하는 시각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사회보호시설의 입소자들은 지능과 같은 ‘개인적 사유'보다는 해고나 가정폭력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경우가 더 많다.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보다 중요한 도입의 맥락

서울시는 이번 발표를 통해서 예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최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사실은 이 모델이 수용되는 맥락을 주목하게 만든다. SIB는 2010년에 영국 브라운 총리에 의해 실시된 모델이 시초이며, 이 프로그램은 6년의 기간을 한 주기로 설정하여 진행되고 있어 아직 결과는 모르는 상황이다. 영국 외 국가에서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주되게 확산되고 있다. 도입되고 있는 모델은 몇 가지 사업에 집중되어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재범률 관리사업(영국 중앙정부, 미국 연방, 호주 일부주), 홈리스 관리 사업(영국 중앙정부, 미국 메사추세츠 주) 등이며, 기존의 사회서비스를 보완하는 형태에서 점차 기존 사회서비스를 대체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미 지역에 이 모델이 수출되고 있는데 양상은 다르다. 남미의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사회정책 재원을 주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예산 지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적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SIB라는 것이 투자자의 '선의'나 '양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투자 모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SIB의 특징은 그것이 왜 미국에서 'Pay-For-Success(PFS)'라는 다소 노골적인 이름으로 확산되는지를 보여준다. 2013년 말 미국의 규제국이 SIB를 운영하고 있는 하버드케네디스쿨 쪽에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정책질의를 하고, 이에 학교 측은 답변을 한다.

▲ 세계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SOB의 현황. 기본적으로 복지제도가 최약했거나 혹은 시장적 복지제도가 발달된 나라에서 주요하게 도입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SIB를 도입하면 좋은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학교 측은 정부의 지급보증에 대한 부분에서, "투자자들의 PFS에 대한 관심이 점 점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시장이 더 발달하면, 개인 금융도 PFS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성과연계 채권의 다른 목적은 (사회) 프로그램의 수행성을 더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방재정이 투여되는 것에 대해 PFS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SIB가 사회정책 프로그램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성과가 있는 프로그램'에 세금을 사용하는 셈이어서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형태는 서울시가 SIB사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업, 즉 성과가 보장되는 사업만 취사선택하여 사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사회성과는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SIB라는 제도의 설계 자체가 성과를 부풀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누가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결정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시장주의적 관점(투자의 성과가 계량화될 수 있는 사업부분)이 일방적으로 통용될 소지가 크다.

증세 대신, 감세 축소 대신 사회투자?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왜 기존에 지방정부가 해왔던 사회투자 사업의 재원이 부족하게 되었는가라는 원인을 도외시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사회투자의 재원이 부족한 이유는 각종 감세 정책에 따른 재정의 부족이다. 80년에서 90년 사이 서구의 주요한 국가에서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나 기업에 대한 법인세 축소가 진행되었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수많은 실업과 빈곤을 낳았지만 이를 고스란히 정부 책임으로 떠넘겼다. 그리고 이제 와서 재정을 늘릴 수 있는 증세나 감세의 축소가 아니라 괜찮은 투자처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SIB가 도입되는 나라들은 대부분 현재에 드는 비용을 미래로 전가시키면서 당장의 비용 절감에만 집중하고 있다. 결국 재정의 부실화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서울시의 2015년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약 2조 늘어난 25조에 이른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추가적으로 사회에 투자할 돈이 없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이는 예산 총규모의 측면에서 보면 맞는 말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예산 편성을 줄이면 어떤가. 놀랍게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재정지출 구조의 효과적인 개선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도로, 터널 등 토건사업이 지속되고 있으며, 각종 공연장 건립을 계속하고 있다. 후보시절에는 과감한 지출구조 개선을 통해서 투자를 강화하겠다더니, 그 공약이 공염불이 된 것이다. 그런데 SIB는 채무를 지는 행위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 투자대상이 된 아이들은 어떤가. 해당 업체가 손실을 보고 쫓겨난 자리에 남겨진 '사회투자의 대상들'은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은가? 그래서 SIB는 미래의 채무를 지는 행위임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할 권리를 투자처로 바꾸는 시장주의적 도구다.

따라서 SIB를 사회혁신의 위대한 도구 쯤으로 평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SIB가 그저 수많은 금융상품 중 하나'이며 서울시나 서울시의회가 솔직하게 인정했듯이 "증세없는 복지확대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2014년 2월 서울시의회 조례 검토보고서 중)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들을 배제시킨다.

SIB가 일종의 성과 기준을 될 경우, 금융상품으로서 실패한 사회 정책의 대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히려 사회정책의 사각 시대에 방치되는 것은 아닌가? 금융상품으로 구성되지 못하는 사회정책은 지방 정부 입장에서 투자할 가치가 없는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닐까? SIB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것이 사회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일텐데, 여기에 소위 '투자자인 시민'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개념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이들이 정책결정의 당사자로서 공공 영역에 포괄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사실 아시아 최초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을 둘러싼 토론이었다. 그런데 적절한 사회적 과정도 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영국 브라운 정부의 제도도입에는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 설립에 참조한 영국 '영 파운데이션'이 있었다. '사회정책채권'의 제안자인 로니 호레시(ronnie horesh)는 채권의 목표로 "정부 지출을 보다 비용절감적이고 목표지향적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금융수단"을 제시했다. 보통 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선의는 노골적인 악의보다 나쁠 때가 많다.

서울시는 가정폭력 피해자 자립지원, 학교밖 청소년 지원, 노숙인 자립지원, 새터민 지원 등 총 11개 사업을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대부분이 기존에 서울시 재정으로 했던 사업들이다. 서울시에 묻는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서울시 정부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싶다. 다양한 채권 관리만 하면 되는데, 아예 서울시도 외주화시키면 어떤가? 아시아 최초보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더라도 철학이 분명한 사회정책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며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고 한미FTA를 시작했던 정부와 지금의 서울시정부는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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