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발행된 'KBS 2013 사업연도 경영평가 보고서' (사진=KBS)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30일 오전 7시 30분, 조찬 모임을 열어 <KBS 2014사업연도 경영평가 보고서>(이하 <경영평가 보고서>)를 심의했다. 법으로 정해 둔 공표 기한인 5월 31일을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처리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일부 이사들이 세월호 오보 등 <경영평가 보고서>에 담긴 ‘보도’ 지적사항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는데, 보고서를 ‘이사회’가 아니라 ‘경영평가단’이 작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KBS는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KBS 정관>에 따라 매년 <경영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국민들에게 발표하고 있다. KBS이사회는 방송 부문, 기술·뉴미디어 부문, 경영·회계 부문 전문가 각 2인과 내부 인사로 감사를 포함시켜 경영평가단을 꾸린다. 경영평가단이 경영목표 설정의 타당성, 예산집행의 효율성 등 총 7가지 사항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보고서를 작성하면, KBS이사회가 보고서 내용을 심의·확정한다.

지난해의 경우, 2월 중순 구성된 경영평가단이 자체 회의, 편성본부·보도본부·시청자본부·정책기획본부 등 각 부 부서장 면담, 사장 면담 등을 거쳐 경영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5월 14일 경영평가단과 이사회의 면담을 마지막으로 제작과정이 끝났고, KBS이사회는 1주일 후 보고서 내용을 심의·확정했다. 확정된 보고서의 내용은 “이사회는 (경영평가를) 매 회계연도 종료 후 5월 이내에 공표해야 한다”는 <방송법시행령> 제33조 3항에 따라 지난해 5월 30일 1TV 및 1라디오 방송에서 공개됐고 KBS 홈페이지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게시됐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KBS이사회는 지난 5월 28일 정기이사회에서도 <경영평가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다수 이사들이 보고서에 담긴 지적사항에 이견을 표해 격론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다수 이사들이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표해, 논의의 방향은 평가의 ‘주체’를 재설정하는 쪽으로 새롭게 흘러갔다. 결국 KBS이사회는 법정시한을 하루 남긴 30일 오전 급히 회의를 소집해 보고서를 처리했다. 이 결과로 1TV와 1라디오에 나가는 방송에는 ‘KBS이사회’가 아닌 ‘경영평가단’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무엇이 이사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나

28일, 30일 이사회에는 해외 출장 중인 이인호 이사장을 제외한 10명의 이사들이 참여했다. 두 번의 회의에 모두 참석했던 이사들에 따르면 <경영평가 보고서>에서 문제제기됐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사고 때 정확하지 않게 보도한 부분이 여러 차례 있었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재난보도주관방송사로서 재난방송의 표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방송 부문에서 보도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갖추기 위해서 힘써야겠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을 질적, 양적으로 확충해야 합니다’

KBS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모범이 되는 보도를 하지 못했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저질렀던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피하지 못했고, 세월호 선내에 엉켜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는 자막을 내보내 빈축을 샀다. 아비규환인 현장 상황이나 실제 구조상황보다는 최대 규모로 입체적인 수색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부 발표를 전하는 데 힘썼고, 결국 기자들은 “팽목항에서는 KBS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기조차 두렵다”며 반성문을 올렸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한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의 발언이 알려졌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버이날이었던 5월 8일 여의도 KBS를 항의방문하기에 이른다. 다음날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로 간 유가족 앞에서 사과하며 김시곤 보도국장의 보직사퇴를 약속했으나, 김시곤 보도국장은 길환영 사장을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길 사장이 그동안 청와대 지시를 받고 보도와 인사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 뉴스는 20분 이내에 소화할 것 △해외 순방 때마다 리포트 수 늘릴 것 △해경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 것 등 ‘대통령을 모시는’ 길환영 사장의 원칙이 김시곤 보도국장에 의해 폭로됐고, ‘해경 비판 보도 자제’는 이후 정홍원 총리가 시인하며 사실로 확인됐다. KBS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영방송’이라는 비아냥이 나왔고, 양대 노조는 길환영 퇴진 및 KBS 정상화를 내걸고 최초로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결국 길환영 사장은 해임됐다. (▷ 관련기사 : <김시곤 전 보도국장, 청와대 KBS 개입 추가 폭로>)

청와대-사장-보도 책임자로 지시가 내려오는 구조 아래서 KBS뉴스의 독립적인 제작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해 KBS 보도를 둘러싼 중요한 화두였다. 자연히 <경영평가 보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됐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일부 여당 추천 이사들이 표현이 ‘과하다’며 순화시키거나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KBS 경영진 역시 불만이 높았다.

▲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경영평가 공표 법정시한 하루 전인 30일 오전, 'KBS 2014 사업연도 경영평가 보고서'를 처리했다. (사진=KBS)

앞서 소개된 사례 외에도 반발이 나온 대목은 또 있다. 여당 추천 이사들과 경영진은 ‘청영방송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론 프로그램 주제와 출연자 선정에 사장이 개입했다’, ‘보도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았다. 세월호 보도 당시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JTBC를 언급하는 것에도 민감해 했다.

외부인사가 중심이 된 경영평가단이 매해 별도로 꾸려지는 이유는 결국 평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경영평가단을 제외한 누구도 보고서 내용을 수정, 삭제할 권한이 없다. KBS 경영진과 각 부서장, 이사회 등은 각자의 생각을 밝힐 뿐, 이를 어느 정도로 수용할지는 경영평가단의 몫이다. 하지만 여당이사들과 KBS 경영진의 문제제기가 경영평가단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야당 추천 이사는 “평가위원들이 하도 시달려서 보고서의 많은 부분이 순화됐다”고 설명했다.

KBS 경영평가 보고서, 이사회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한 여당 추천 이사는 “경영평가단은 이사회, 경영진과 끊임없는 토론 과정을 거친다. 왜냐하면 경영평가위원들 역시 자기 주관을 지나치게 드러내거나 틀린 사실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며 “실무진(KBS 경영진)은 (개입한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사회는 내용을 건드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후, “그동안 묵인해 왔던 ‘KBS이사회가 경영평가를 했다’는 표현을 ‘KBS이사회의 위임을 받은 경영평가단이 작성했고 이사회는 이를 수용했다’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바로잡은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KBS이사회는 ‘경영평가단 보고서에 동의하지 않지만 수정 권한이 없으니 보고서는 채택한다. 다만 보고서 작성 주체는 이사회가 아닌 경영평가단임을 분명히 한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에 KBS 내부 관계자는 “결국 이사회 의견이 아니라는 취지로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은데, 그럴 거면 차라리 외부 위탁을 하지 말고 직접 하면 되지 않나 싶다”며 “객관적 의견을 듣기 위해 경영평가단을 만든 건데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경영평가 결과를 공표하는 것은 이사회의 의무 중 하나다. 작성을 평가단이 했다 할지라도 그들을 위촉한 것도 이사회고 보고서의 책임 역시 엄연히 이사회가 져야 한다”며 “각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해서 평가를 받아 놓고 이사회 뜻과 이견이 있다고 해서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발표하는 것은 최고 의결기구로서 올바른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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