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가 야심차게 준비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KBS의 현실-발전방향의 모색을 위한 대화마당>(이하 <대화마당>)이 28일 종료됐다. KBS이사회가 처음으로 마련한 ‘대화의 자리’는 3일이나 이어지는 큰 규모의 행사였으나 KBS기자협회, KBS PD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등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일부 이사들도 참석을 ‘거부’해 사실상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대화마당>은 ‘KBS의 현실 진단-시청자의 입장에서’, ‘방송환경의 변화와 KBS의 대응전략’, ‘국가기간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와 방송제작의 독립성’, ‘방송의 품격과 공공성 강화방안’ 등의 주제를 내건 4개의 대화마당과 종합토론으로 구성됐다. KBS이사회는 “급변하는 방송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KBS가 직면한 난제들을 공유하고, KBS 사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시청자와 방송 전문가들과 함께 공영방송 KBS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대화마당을 기획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3일 간 지켜본 결과 <대화마당>은 이 같은 원대한 목표에 전혀 다다르지 못한 자리였다.

내부 구성원, 일부 이사들조차 등 돌린 ‘반쪽 행사’

<대화마당>은 행사 시작 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새 노조, KBS기자협회, KBS PD협회 등 내부 구성원들은발제자와 토론자 등 패널 구성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보이콧’ 의사를 표시했다. 5월 초에는 토론자 제안을 승낙했으나 패널 구성이 확정되고 편향성이 지나치다며 불참을 결정했다.

3일 동안 <대화마당>을 채운 대부분의 참석자는 보수우익 성향 인사였으며, 보도와 제작을 맡고 있는 현업자보다는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간부들과 KBS 전직 인사들의 비중이 현격히 높았다. 그나마 ‘다른 목소리’를 낸 패널은 양문석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정도였다.

▲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간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KBS의 현실-발전방향의 모색을 위한 대화마당>을 열었다. (사진=미디어스)

실제로 이들은 <대화마당>이 ‘불편한 자리’라고 토로했다. 추혜선 정책위원장은 “이 자리가 매우 불편하다. 제가 말할 때마다 이인호 이사장님 표정 변하는 걸 보고 있는데…”라며 “이렇게 닫힌 단상이 아니고 밑에 판을 깔고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정말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밝혔다.

양문석 이사장은 “KBS이사회의 권위, 공신력을 믿고 왔는데 일부 이사들과 내부 직능단체, 노조가 이 토론회를 오히려 보이콧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참석하는 데) 고민스러웠다”며 “참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제문을 보니 한반도기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첫 번째더라. 이러니 사람들이 오겠나. 나라도 안 오겠다”고 비판했다.

KBS이사회 야당 추천 이사들도 27일 4번째 대화마당 사회를 맡은 이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불참했다. 한 야당이사는 “발제자와 토론자가 편파적이어서 나가지 않았다. 이영조 교수, 조우석 문화평론가, 이재교 교수 등 뉴라이트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뉴라이트의 KBS 진격’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1달 넘게 준비기간이 있었지만 이사들의 전체 의견을 듣기보다는 이사장 입맛에 맞춰서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야당이사들이 문제제기를 많이 했지만 ‘들어가서 참여하면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안 나오려는 사람들을 최대한 설득해 나오게 만들려는 노력은 없었다”며 “시청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의견을 듣자는 취지였지만 결코 ‘토론’이 안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이인호 이사장 역시 패널 구성의 ‘편향성’을 인정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아침 (토론자를) 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졌다”며 “발제자도 양쪽에서 한 명씩 나와서 시청자 입장에서 직접 견해를 듣고 회사 간부진, 일반 사원과 이야기하는, 말 그대로 ‘대화 마당’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의견 조율이 안됐다”고 말했다.

여당 추천 한진만 이사도 “사실 이만한 발제자를 구하는 데도 상당히 어려웠다”면서 “시청자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 KBS 내의 1노조, 2노조, 공영노조 등 마이너리티 그룹까지 포용해 다양한 목소리 들어보는 토론의 광장을 만들고자 했는데 KBS로 오라고 한 점은 실수한 것 같다. 하여간 이 세미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우리의 서투른 시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KBS이사회는 편향성을 인정하면서도 ‘행사 불참’에는 불만을 표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편향됐다면 자기들이 더 들어오고 요구해야지, 참여하지도 않고 편향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여당 추천 이사인 이병혜 이사 역시 “KBS 내부 구성원들도 어떤 얘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각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피력한다면 더욱 더 좋은 일”이라며 “이런 단어 쓰기 그렇지만 비겁하게 뒤에서 다른 곳에서 얘기하지 말고 마당을 펼쳐놨을 때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새 노조 관계자는 “비겁하게 뒤에서 얘기한 적 없다. 대놓고 앞에서 ‘편향적’이라고 얘기한 후 불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방송을 관장하는 사장, 각 본부장 등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부 이사들과 외부인들이 논쟁하는 것 자체가 실효가 없다. 그동안 노보, 성명, 면담에서 끊임없이 보도공정성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다. 그런데 이를 검토하지도 수용하지도 않으면서 공청회에 나오라는 건 ‘보여주기 식 행사’에 불과하다. 개선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물 만난 보수인사들, 다양한 어록 남겨

반면 보수인사들은 눈부시게 활약했다. KBS가 어떻게 하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자기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왜곡된 역사관을 밝힌 단독보도와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에 대한 힐난은 <대화마당> 주제가 바뀌는 와중에도 그대로 되풀이됐다.

▲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왜곡된 역사관 및 가치관이 드러난 교회 강연 영상을 단독보도했던 지난해 6월 11일자 KBS <뉴스9> 보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등을 수상했으나 KBS이사회의 <대화마당>에서는 가장 첫 손에 꼽혀 비판받았다.

뉴라이트 계열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청자 입장에서 KBS라고 하면 ‘도대체 이게 공영방송인가’라는 생각만 든다. 왜냐하면 보도와 기획물이 공정성, 객관성 결여했다고 보일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그는 문창극 전 후보자 보도, 성완종 리스트 보도, <뿌리 깊은 미래>,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한반도기 응원 보도 등이 각각 정부와 대통령을 흠집 내고 대북 편향성을 지닌 보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통의 시청자들은 저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저렇게 보기도 한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영조 교수는 “교회 강연 중 일부만 내보내고 (판단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다른 부분을 안 내보내는 게 문제다. 전체적인 사실을 판단하기 어렵도록 편집하는 건 의도가 있지 않느냐”며 “당시 풍문으로는 바로 이 KBS에 문창극 후보가 사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있어, 총리 후보 지명되자마자 사장 임명 저지를 위해 일각에서 미리 준비했던 걸 반영한 게 아닌가 한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성향의 언론시민단체인 공정언론시민연대의 이재교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5공 때는 대통령의 동정을 톱뉴스로 보도해서 그렇지 전체 내용이 일방적인 대통령 찬양은 아니었다. 그런데 2002년, 2004년, 2007년 보도 프로그램을 보면 이건 완벽하게 편파적”이라며 참여정부 때 보도가 ‘땡전뉴스’가 날마다 이어졌던 군부독재시대 보도보다 더 편향적이라고 강변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자 <나는 보수다>라는 책의 저자인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KBS 내부 구성원들은) 아직도 70~80년대 이른바 땡전뉴스를 포함한 언론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갇혀 있다 보니 ‘방송제작의 독립성’이라는 말이 구호 형태로 튀어나온다”며 “그런 구호를 앞세우다 보니 대한민국 전체와 위상에 대한 큰 그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우석 평론가는 “보도지침 사건이 났던 게 87년, 벌써 30년 전”이라며 “지금은 외부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라는 게 없다. 제가 알기로는 거꾸로다. 언론이 무서워서 정부는 적극적 통치행위를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정홍원 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해경 비판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한 것, 방통위의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 내부문건 등을 통해 ‘보도 통제’ 움직임이 드러난 게 불과 1년 전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 청와대 지시 아래 보도와 인사에 개입한 것이 밝혀져 사장이 불명예 퇴진한 KBS라는 점 역시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조우석 평론가는 KBS가 최근 발표한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다’는 부분을 크게 문제 삼기도 했다. 그는 “(KBS의 역할은) 대한민국의 주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공정성 가이드라인>은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법> 제6조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KBS는 타 방송사보다 더 무거운 공적책무를 지닌 ‘공영방송’이라는 점은 무시됐다.

또 “공정성은 비례적이거나 산술적인 균형 또는 외견상의 중립성에 의해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의를 추구하는 윤리적 자세로 접근할 때 확보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KBS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진리’가 아니라 ‘정의’의 깃발을 올렸다. 정의의 깃발은 20대 운동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폄훼했다.

<대화마당>에 불참한 새 노조를 향한 공공연한 비난도 이어졌다. 조우석 평론가는 “진보 노조, 이른바 좌파 노조인 그들은 명백한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며 “정치적 독선을 깔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성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에 화답하듯 “(새 노조 상급단체인) 민노총 규정을 보면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야권에 가까운 목소리를 낸다든가 하는 건 상관없지만 외부기관 지시에 따른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야지 집단 행동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수신료 인상’

▲ 28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대화마당> 마지막 섹션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사진=미디어스)

이번 <대화마당>은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 논의가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개최돼 결국 ‘수신료 인상을 호소하기 위한 발판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화마당>은 ‘발전방향의 모색을 위해’ 기회, 개최됐지만 자연스레 ‘수신료 인상’을 메인 이슈로 끌고 갔다. 시청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재정 안정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자연스레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뒤따랐다.

발언의 결은 달랐지만 다수의 토론자들이 수신료 인상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영조 교수는 “시청자 입장에서 한 말씀만 드리면 지난 30 몇 년 간 안 올려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광고 안 받는 방송 하나, 광고 받는 방송 하나 있으니 예산의 50%는 시청료(수신료)로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올려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홍금표 전 한국HD방송 사장은 “흔히 공부 열심히 하면 상을 주겠다고 한다. KBS 수신료가 그렇다. 열심히 노력해도 35년째 안 해 준다. B학점 맞았더니 A학점 맞으라, A학점 맞았더니 A+ 맞아라… 정치적 논리를 내세우려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면서 “4500원으로 한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6000원, 7000원으로 해서 정치권에게 명분(인하할 수 있는 기회)을 줘야죠”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28일 방통위가 국회로 보낸 수신료 인상금액은 1500원 오른 월 4000원이었다. 정확한 금액도 모른 채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고 있는 셈이었다.

KBS의 ‘수신료 인상’ 드라이브 행보는 ‘진행형’이다. 내달 1일 열리는 조대현 사장의 수신료 인상 관련 기자회견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KBS는 KBS이사회 주최로 수신료 인상 공청회를 열거나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해 온 바 있다. KBS는 수신료현실화추진단을 가동, 운영하고 있는 만큼 1일 사장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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