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스포츠 ‘구단 육성’ 프로그램을 표방하며 심야방송임에도 마니아층의 인기를 받아 왔던 KBS <스포츠이야기 운동화v2.0>의 부속 코너 <스포츠대작전>이 편성본부장의 지시로 갑자기 방송이 잠정중단돼 논란이 일고 있다.

▲ 5월 17일 방송된 KBS <스포츠이야기 운동화v2.0>의 <스포츠대작전>

올해 1월부터 시작한 <스포츠이야기 운동화v2.0>(이하 <운동화v2.0>)은 지난 3월 개편 이후 <스포츠대작전>과 <오! 나의 스포츠>라는 2가지 코너로 방송 중이었다. 이 중 <스포츠대작전>은 6명의 출연자가 단장이 되어 프로야구 선수들을 선발하고 이 선수들이 실제 리그에서 올린 성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구단 육성’ 프로그램으로, 심야방송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정 팬층이 생길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 17일 이후 <스포츠대작전>은 방송되지 않고 있다. 제작진은 KBS 스포츠 트위터(@KBS_sports)를 통해 “당분간 <운동화 v2.0>은 내부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곧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만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 팬 커뮤니티 MLB파크에는 <스포츠대작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편성 쪽 높은 분이 보더니 말을 함부로 하고 술자리 같은 분위기가 맘에 안 든다고, 프로야구를 몰라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며 한 방에 폐지하기로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빠른 속도로 전파됐고, ‘윗선’의 한 마디에 프로그램이 좌지우지된 것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다. KBS는 <운동화 v2.0>은 ‘폐지’가 아니라 ‘리뉴얼’되어 6월 중 방송된다고 해명했다.

복수의 KBS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스포츠대작전>의 잠정중단을 지시한 인물은 권순우 편성본부장이었다. KBS PD협회에 따르면 5월 17일 방송을 본 권순우 본부장은 “이런 술자리에서 잡담하는 분위기의 프로그램은 1TV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요지로 방송중단 결정을 내렸다. <스포츠대작전>이 6명의 출연자가 서로 한 번씩 맞붙어 최소 5번의 상호대결을 통해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라 최소 5회의 마무리 방송이 필수적이며 그 이후 적극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제작진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권순우 본부장이 밝힌 내용은 MLB파크에 올라온 글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 권순우 본부장은 “프로그램 리뉴얼을 지시했다고 들었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그는 “1TV에서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전문적이더라. 그래서 일반인들이 팔로업(따라가기)이 전혀 안 된다”며 “우리는 전문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 스포츠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매료돼서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그래서 이런 쪽으로 좀 정리를 해 달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적인 대화 자리에서 하는 것 같은 방송 분위기’도 ‘리뉴얼’의 이유가 된 것인지 묻자 “그런 것도 있다”며 “예를 들어 프로그램을 할 때 정보라는 뼈대가 있고 거기에 양념이 있어야 하는데 (<스포츠대작전>은) 양념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스포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를 기대하는데 ‘어머, 얘 뭐 했니~’ 이런 대화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시끄럽다고? 심야토론처럼 정적으로 진행되길 바란 건가”

편성본부장이 <운동화 v2.0>의 <스포츠대작전> 코너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후, 제작진과 어떤 조율도 없이 프로그램 잠정중단을 지시한 것에 대해 내부의 반발은 크다.

KBS PD협회(협회장 안주식)는 27일 낸 성명에서 “프로그램 편성의 고유권한이 편성본부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방송중단과 같은 중대한 결정은 신중을 기하고, 제작진과의 협의 절차를 밟아가며 진행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시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한 마무리 시간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운동화 v2.0>의 비정상적인 방송중단 결정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편성본부장의 독단적 행태가 아주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프로그램이 편성본부장의 말 한마디에 방송 중단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다. 편성본부장은 독단적 운영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절차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 <스포츠대작전>은 6명의 출연자가 단장이 되어 프로야구 선수들을 선발하고 이 선수들이 실제 리그에서 올린 성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구단 육성’ 프로그램으로, 심야방송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정 팬층이 생길 만큼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의 불만도 높다. <운동화 v2.0> 홈페이지 게시판과 각종 SNS, 커뮤니티에는 갑작스런 방송중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 김정훈 씨는 “시끄럽다고요? MBC 라디오 스타에 비하면 양반이에요. 그럼 무슨 심야토론처럼 정적으로 진행되길 바란 거예요? 이건 보수적인 시선이 아니라 몰상식한거 아니에요?”라고 꼬집었고 시청자 이경우 씨는 “일요일 밤만 기다렸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방송을 안하다니..”라며 “이렇게 방송을 안한다는 것은 시청자를 우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청자 김미연 씨는 “출연진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고 즐거웠던 프로그램이었고, KBS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습니다”라며 “하지만 방송이 중단되는 과정 또한 다른 의미로 굉장히 놀랍네요. KBS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과 감탄은 ‘아 KBS가 그럼 그렇지 뭐’ 라는 생각으로 돌변하게 만들고 계시네요”라고 말했고, 시청자 임영희 씨는 “패널들의 케미도 너무 좋았고 축구만 알던 제게 농구, 야구의 재미를 일깨워 준 프로그램인데 이렇게 황당하게 폐지라니…”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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