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사가 있다. 그는 늦은 밤 뜻하지 않는 사고를 내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정작 '법'을 지켜야 하는 형사는 사건을 덮는다. 그런데 그가 죽인 사람이 그의 목을 조른다. 자신의 목을 옥죄어 오는 죽은 사람, 아니 사건을 덮기 위해 무리수를 범하기 시작하는 형사,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것은 예상외의 또 다른 사건이다.

형사가 저지른 범죄, 그로부터 시작된 사건

상복 없는 배우 이선균과 늘 조연의 자리에만 머물던 조진웅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영화 <끝까지 간다>는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가 우연히 저지르게 된 뺑소니 사건에서 시작된다. <악의 연대기> 역시 혁혁한 성과로 수상을 하고 본청 승진을 앞두고 회식을 한 후 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최창식(손현주 분)이 자신을 죽이려던 택시 운전사를 오히려 죽이고 만다. 물론 고건수 사건이 뺑소니이고 최창식의 살인이 '정당방위'성을 띠지만, 이 두 형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 혹은 야망으로 인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그들이 은폐한 사건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건수가 유기한 시신을 목격한 자가 고건수의 목을 죄어오고, 최창식이 버리고 온 시신은 그가 일하는 경찰서 앞에 매달려 있다. 이때부터 사건을 숨기려는 자와 그 숨기려는 자를 옭죄어 오는 자, 그리고 거기에 주인공 형사가 몸담고 있는 경찰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이 결부된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극의 갈등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쫓고 쫓기는 자, 쫓기지 않기 위해 다시 쫓는 자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렇게 액션물 혹은 스릴러물의 전형적인 구도가 미묘해지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혹은 무마하기 위해 시간을 다투며 벌이는 씬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영화를 따라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물량 공세로 스크린을 장악하며 한국 시장에서 독식하고 있는 외화나 1000만을 노리고 기획된 영화들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의 선전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재미들이다.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의 다른 지향

스릴 넘치는 액션, 거기에 거듭된 반전의 묘미를 지닌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는 초반 사건을 펼치는 구도는 비슷하지만, 중반 이후 두 영화의 질감은 달라진다. 뺑소니 사건을 덮기 위해 어머니 관 속에 시신을 숨기는 해프닝을 벌인 고건수의 범죄는, 바로 그의 앞에 등장하는 그보다 더 나쁜 경찰 박창민(조진웅 분)의 존재로 인해,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싸움이 된다. 시작은 나쁜 짓을 벌인 고건수로 인해 벌어졌지만, 고건수를 이용하여 더 큰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이 절대악처럼 카리스마를 뿜어내기 시작하면서, <끝까지 간다>는 도덕적 가치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서부영화와도 같은 오락적 흥미가 배가되는 영화로 전환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죽이려던 택시 운전사를 죽이고 최창식이 자신을 옭죄어 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역추적하며 등장하는 사건은, 과거 그가 결부되었던 형사들의 협잡, 즉 한 선량한 시민을 살인범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연대'이다. 마치 <살인의 추억> 속 해프닝처럼 그려졌던 만만한 장애인을 범인으로 몰았던 정황이, <악의 연대기>로 오면 한 부자의 몰락을 자초한다. 결국 이 영화 아니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초반 빗속에서 ‘나는 살인범의 아들이다'라고 되뇌던 그 사건으로 귀결되면, '연대기'로서의 가치를 드러내며 제도 속에 숨겨진 폭력이 또 다른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처절함에 방점을 찍는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과 싸우는, 그런데 그 나쁜 놈이 절대 악의 포스를 풍기거나 혹은 알고 보니 피해자이거나 진범인 상황이 주는 다른 질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가 기반한 공통의 정서는 부패한 경찰, 결국 시스템화 된 권력의 오류이다.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가 뺑소니 사건을 벌였음에도 영화 종반 그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감정의 근원은,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의 제도화된 부패에 있다. 결국 <악의 연대기>의 마지막. 묘한 슬픔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은 정의로웠던 경찰이 '악의 연대 세력'이 된 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결국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부패한 권력,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를 추동하는 엔진이다. 그 엔진의 동력 위에 때론 좀 더 오락적으로, 때론 좀 더 묵직한 변주가 더해지며 한국형 스릴러가 정착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