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아동성폭력예방센터인 동부해바라기센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해바라기센터는 사건의 신고 및 피해자 상담, 치료, 법률지원 등 아동 성폭력과 관련해 원스톱으로 피해자를 돕고 있는 기관입니다. 해바라기센터가 전화를 건 이유는 지난 5월 20일 모 신문사에서 어린이 성범죄 관련 재판 결과와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대해 상담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부해바라기센터는 피해자 측으로부터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으니 기사를 삭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언론인권센터 측에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모 신문사의 해당 기사는 상당히 선정적이었습니다. 그 같은 사건 자체가 어린이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에는 (피해자의 주장처럼) 타인이 피해자를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기자가 주의를 기울여 기사를 작성한 흔적이 보였고 언론보도피해로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우려됐던 부분이 있다면 사건과 관련한 지명이 기사에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바라기센터의 실무자와 상담을 하면서도 “담당기자에게 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난 곳을 이니셜로 표기해 달라는 정도의 요청을 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의 지명을 기사에 쓰는 것을 피해자 특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곧바로 기사를 쓴 기자의 전화번호를 묻기 위해 해당 언론사의 다른 기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 기자는 “피해자 가족이 기사를 보고 자신들이 사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이유로 기사 수정이나 삭제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 보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했습니다. 그의 항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자에게 “피해자 가족이 아닌 피해 어린이가 지명만 치면 자신의 사건을 볼 수 있는 나이인데 그것은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냐”고 설득을 하며 지명을 다르게 표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기자는 더 이상의 항변을 멈추고 담당기자의 연락처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피해자가 수정을 요청한 기사를 썼던 담당기자와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피해자의 입장을 재차 설명했습니다. 그 말에 해당 기자는 “지명을 달리 표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사삭제는 쉽지 않다”는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지명을 달리 표기해주겠다는 말이 그저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10분 뒤 해당 신문사로부터 “기사를 삭제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10분 만에 기사삭제, 달라진 언론사

해당 문자를 받고 곧바로 동부해바라기센터 측에 기사 삭제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실무자는 무척 놀라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놀랍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제까지 언론사 기자들이 피해자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자신이 쓴 기사를 쉽게 삭제하지 않는 모습을 주로 봐 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사의 인권침해가 매우 심각해 법원에 간 사건에 있어서도 언론피해소송 법정에서 기자들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습을 많이 봐왔던 터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 신문사 측의 대처는 언론피해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높게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피해 당사자인 어린이가 또다시 기사를 통해 상처받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신문사 명을 밝힙니다. 바로 <서울신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실 기자들이 지금의 기사 생산 시스템 속에서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대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권을 지키려는 진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이여, 인권지수를 높이자!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사건기사라 할지라도, 그리고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글자 하나와 띄어쓰기 하나로 기자가 어떤 생각과 의도로 기사를 썼는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인권보도가 매우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인권보도준칙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보도준칙 - 제7장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

1.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는 자세를 갖는다.가.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는다.나. 따돌림, 학교폭력, 체벌, 인터넷 중독 등을 다룰 때 어린이와 청소년의 입장을 고려 한다.2.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충격을 줄 우려가 있는 선정적․폭력적 묘사를 자제한다.나. 주변의 도움이나 후원을 받는 경우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주 의한다.다. 범죄 사건을 재연할 경우 아동을 출연시키지 않는다.라.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피해상황과 관련한 사진과 영상 은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기사를 보면서 기자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였는지, 피해당사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은 사건보도를 하면서 우리사회를 점차 따뜻하게 바꿀 수도 있고, 더 험악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번 <서울신문>이 피해자를 고려해 기사를 내려준 경험을 통해 취재원 입장에서, 사건의 당사자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주는 언론으로 우리 언론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울신문>과 같이 피해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언론이 더욱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우려는 여전합니다. 최근 경기도 부천에서 세자매가 한꺼번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언론매체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고 경쟁적 보도가 시작됐습니다. 그 속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양 보도되고 제목 또한 선정적으로 뽑아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해당 사건 보도에 인권보도준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일선 기자들이 느끼는 고충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기자는 “대형 언론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면 작은 언론사 기자들은 ‘물 먹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더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한국사회 내 ‘인권보도’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사 그리고 기자 개개인의 의식이 매우 중요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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