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한결같다. 이런 판국에서도 ‘정면돌파’의 기조를 재확인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에서 경제활성화와 4대 구조개혁, 정치·사회개혁 등을 반복 언급하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을 요구했다. 이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던 정책을 지속해야 하니 국무총리 인준을 서둘러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경제활성화와 4대 구조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이 때만 되면 내세우는 단골 메뉴다. 경제활성화의 경우 지난해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오면서 매번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얼마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의 처리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불어터진 국수’를 언급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어터진 국수론’은 불어터진 국수는 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으면 배는 채울 수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즉, 늦어져 효력은 반감됐을지라도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것보다는 처리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4대 구조개혁은 노동·공공·교육·금융의 4개 부문에서의 개혁을 일컫는 것으로서 박근혜 정부 3년차 핵심 아젠다로 취급되고 있는데, 이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노동개혁과 공공부문개혁으로 볼 수 있다. 노동개혁의 경우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정규직 양보론’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고 공공부문 개혁은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겠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가장 첨예한 논란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사회개혁의 대표적 측면은 ‘성완종 리스트’ 관련 사건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죽음을 통해 정치권과의 정경유착을 고발한 이 사건에서 불법정치자금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는 대부분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여당 인사들이다. 이 중에는 홍문종 의원이나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에 깊게 관여했던 인사들도 포함된다. 야권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수사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정치권 전체의 포괄적인 부패 문제로 규정함으로써 여야를 아우르는 대대적 사정을 예고했다. 또,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리스트와는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참여정부 시기 이뤄진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과정에 의혹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여당 인사를 수사한 만큼 야당 인사도 수사해보라는 가이드라인을 검찰에게 사실상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대부분이다. 황교안 장관은 익히 알려진대로 그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수사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사실상 반대해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과 정면으로 충돌한 바 있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 앞장 선 이력이 있다. 국무총리로 임명될 경우 그 누구보다도 앞서서 청와대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황교안 총리가 탄생할 경우 청와대의 검찰 장악력은 거의 완전무결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아꼈다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능력이나 그의 영향력을 뒷받침할 이명재 민정특보의 존재, 그리고 황교안 총리가 탄생할 경우 임명될 신임 법무부 장관의 역할까지 감안하면 검찰은 사실상 청와대가 ‘직할통치’를 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황교안 총리 이후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게 될지를 가늠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종합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바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나 정치권 내외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검찰의 수사가 여당 인사들에 대한 ‘봐주기’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은 오히려 비난을 자초할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 측으로부터 3천만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총리와 ‘금품메모’에 1억을 받았다는 취지로 이름이 적힌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이춘석, 진성준 의원을 포함한 15명의 의원 등은 이에 반발하며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검찰은 홍준표 지사가 구속수사의 통상 기준인 2억원 이하의 액수를 받았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은 야당 의원일 경우 5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만 나와도 의원회관에서 체포한다며 검찰의 방침이 사리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권위가 실릴리는 만무하다. 최소한 정치개혁을 언급하려면 자신의 허물부터 드러내겠다는 각오를 갖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권 인사들은 봐주기로 일관하면서 애초 ‘성완종 리스트’에 적시돼있지도 않았던 야당 인사들을 수사할 가능성을 반복해서 시사한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고질적 문제인 ‘일방통행’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종합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총리 인준 촉구 발언은 황교안 후보자가 편향성 논란이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적절한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황교안 후보자는 현재 전도사를 겸직하고 있으며 과거 수차례 종교 편향적 발언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있는 나라에서 총리 후보자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아서는 안 되겠으나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정책적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나 자신의 저서를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것 등을 엮어서 보면 정교분리 원칙의 훼손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황교안 후보자의 극우적 편향성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의 권위를 한층 떨어뜨린다. 황교안 후보자는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릴 만큼 정치적 지향이 확실하고 오랫동안 공안분야에서 활약해 왔는데 보수언론과 기득권을 중심으로 ‘종북’을 키워드로 한 여론몰이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인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 무슨 해명이나 입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늘 변화를 요구받아 왔다. 그리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도 그간 많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유출,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 주요 고비마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여론은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 후보자 지명과 이의 인준을 촉구하는 이날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2년 9개월이 남았는데, 언제까지 이런 통치 스타일을 고수할 것인지 이제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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