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으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임명되면서 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 혁신이 가능할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6일 일간지들은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혁신 방안에 다소 우려섞인 시선을 내놓았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 발언 문제를 언급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이날 <7번째 野혁신, 친노 행태 그대로 두면 또 공염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야당이 당내 혁신을 위한 기구를 만든 게 7번째이고 그간 만든 개혁안과 쇄신안 등도 효력이 없었다면서 “이번 혁신위라고 뭐가 다르겠냐는 냉소적 반응이 야당 안에서조차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또 공천·당직을 놓고 다투다가 계파 간, 의원들 간에 적당히 담합하는 것으로 혁신을 했다고 할 거라면 일곱 번째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그런 가짜 혁신에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이러한 우려에 일리를 두는 유일한 방법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봉합’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 부분부터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혁신의 대상이 될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편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야당이 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에 대해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보고 자기만 옳다는 독선에 빠져서 매사 운동권식 투쟁 논리를 들이대는 게 우리 야당의 체질”이라면서 “그런데 막상 야당의 행태와 실상은 그들이 악(惡)으로 보는 여당과 다를 게 없고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뺨친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났다. 많은 국민은 야당의 80년대식 운동권적 행태에 염증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운동권적 행태’를 ‘친노’와 연관지었다. <조선일보>는 “이런 독선과 운동권식 투쟁의 근거지가 흔히 친노라고 부르는 야당 내 최대 파벌”이라면서 “사흘 전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그의 아들이 손님들에게 난데없이 정치 공격을 퍼붓고, 그에 환호하는 일부가 비노에 욕설과 물병 세례를 한 것이 바로 적나라한 친노의 행태”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전 혁신 기구들이 모두 실패한 것은 극성스러운 친노와 외곽 지지 세력들의 보복이 두려워 이 핵심은 모른 척 넘어가고 그럴듯한 구호와 다짐, 몇 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로 국민을 속이고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라면서 “‘김상곤 혁신위’도 그럴 생각이라면 김 위원장이 벌써 듣고 있는 ‘얼굴마담’, ‘허수아비’ 소리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평가밖에는 남을 게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선일보>의 논리에 따르면 ‘친노’는 ‘운동권’이며, 이들이야말로 제1야당을 위기에 빠뜨리는 주범이고 제1야당이 혁신에 매번 실패하는 이유도 이들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아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일보>의 논리는 상당한 무리수가 포함돼있는 게 사실이다. 그간 보수언론이 ‘친노’로 분류해온 인사들 중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으로 볼 수 없는 인사들도 많았으며, 그 ‘운동권’ 출신이라 할 지라도 ‘친노’로 분류되지 않는 인사 또한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대협 의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이나 오영식 최고위원 등을 ‘친노’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한 일일 것이다. 또, ‘친노’들이 과연 운동권식 투쟁 논리만 들이댔는지도 의문이다. 당장 ‘친노’의 좌장으로 불리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취임 이후부터 내세워온 것은 ‘유능한 경제정당·안보정당’이라는 슬로건이었다. 이는 오히려 ‘운동권식 투쟁 논리’와 결별하자는 차원의 주장에 가깝다.

▲ 조선일보 26일자 기사.

이와 같은 맥락을 모르지 않을 <조선일보>가 ‘친노=강경파=운동권’ 등식을 반복해서 소환하는 것은 오히려 정파적 셈법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이날 4면에 김상곤 위원장의 혁신방안에 대한 기사를 배치했다. <조선일보>가 전하는 김상곤 위원장 혁신방안의 핵심은 호남 출신 다선 의원과 486 출신 의원 일부를 ‘물갈이’하고 ‘계파등록제’를 실시하며 민주정책연구원을 당 외 기구로 독립시키는 것 등이다. 이는 계파갈등을 관리하고 해소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고 소위 ‘친노 문제’에 대한 해법은 따로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조선일보>는 여기에 친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첨가함으로써 문재인 지도부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다른 보수언론들도 ‘친노 문제’를 거론하며 김상곤 위원장이 주도하는 혁신에 회의적 입장을 나타냈다. <동아일보>는 이날 5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궁극적으로 당의 원심력을 강화시킬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친노의 좌장인 문재인 대표가 보여주는 리더십 부재는 제1야당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문재인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의 사건에 대해 별도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혁신 논의가 미래가치에 대한 논쟁이 되지 않고 계파갈등이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만을 언급하는 퇴행적 논의가 반복되고 있어 문제라고 썼다.

▲ 동아일보 2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논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는 나만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편을 가르고 타협과 공존을 어렵게 만드는 분열의 정치”라면서 “가장 책임이 큰 세력이 친노다. 친노는 다른 정파나 정당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친노세력이 보인 증오의 표출은 단적인 사례”라고 썼다. 또, <동아일보>는 “문 대표가 위기 돌파의 카드로 ‘김상곤 혁신위’를 내세워도 친노 세력이 인식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도 희망을 갖기 어렵다”라면서 “친노 분열정치 극복은 문 대표의 손에 달렸다. 말로만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하지 말고 이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라고 썼다.

▲ 중앙일보 26일자 사설.

<중앙일보> 역시 3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사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전한 기사를 배치하는 한편 사설에서는 지금까지 제1야당의 혁신 시도가 실패했다면서 “혁신이 성공하려면 혁신의 순수성과 혁신 주체의 개혁성이 필수다”라고 썼다. 또, <중앙일보>는 혁신위원회가 ‘과감한 제도적 수술’을 단행해야 하므로 다수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 받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교육감 임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경기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패했다. 그는 무상버스 같은 엉뚱한 포퓰리즘 공약으로 당내에서도 반발을 샀다. 그가 어떠한 도덕적 기반을 가지고 혁신을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썼다.

<중앙일보>가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논리를 앞의 <조선일보> 주장과 연관지어 본다면 ‘친노=강경파=운동권’의 등식에 김상곤 위원장도 포함된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보수언론이 이날 내놓은 논지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결국 ‘친노’로 상징되는 어떤 세력이 무조건 물러나지 않으면 당 혁신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 중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보수언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이며 정치인이 아닌 노건호씨의 발언과 봉하마을까지 찾아간 일부 지지자들의 극성스런 행태를 부풀려 문재인 대표와 친노의 문제로 등치시키고 이를 다시 ‘강경파’와 연결짓는 괴이한 논리를 보이고 있다. 오직 ‘친노가 문제’라는 단 하나의 주장을 여론에 주입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쯤되면 ‘마녀사냥’이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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