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는 연 이틀 명품 투수전이 이어졌다. 반면 타 구장에서는 여전히 10점 이상의 점수가 나는 타격전을 벌여 광주에서만 이어진 투수전이 더욱 빛났다. 양현종과 차우찬의 불꽃같은 투수전의 바통을 전달받은 스틴슨과 클로이드 두 외국인 투수들의 대결 역시 전날에 비교해 손색없는 명승부였다. 다만 색깔을 무척 달랐다. 우선 삼성 클로이드는 홈 플레이트 양끝을 절묘하게 활용하는 제구력으로 기아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 9개를 잡아냈다.

반면 스틴슨은 삼진 하나 없이 땅볼 아웃을 18개나 잡았으며 특히나 위기 때마다 병살을 3번이나 유도하는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야구 속설에 병살 3개면 필패한다는 말이 있는데, 삼성은 스틴슨에게 8개의 안타와 4개의 사사구를 뽑아냈으나 득점에 실패하며 이틀 연속 영봉패의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 삼성 선발 클로이드, KIA 선발투수 스틴슨 ⓒ연합뉴스
전날의 1 대 0 경기에 이어 다시 2 대 0의 짜릿한 승리 뒤에는 투수 스틴슨의 호투 못지않은 야수들의 멋진 수비들이 있었다. 기아 야수들의 명품 수비 열전의 서막은 유격수 강한울이 열었다. 1회초 2사 1,2루 상황 타자 박선민의 다소 느린 땅볼이 큰 바운드를 만들며 중견수 방면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안타였고, 최소 1점은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치 강한울의 글러브가 가제트 팔처럼 쭉 뻗어가는 느낌을 주며 중견수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볼을 낚아채더니 빙글 한 바퀴를 돌아 1루로 송구하면서 타자를 잡아냈다.

이후 이범호, 김민우의 호수비는 위기 때마다 선발투수 스틴슨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지만 결정적 슈퍼 캐치는 9회초 2사 후 김상수의 우중간 큰 타구를 30미터 이상 달려와 넘어지면 잡아낸 우익수 박준태의 수비였다. 8회초까지 삼성 타선을 산발 안타로 막으며 실점을 하지 않은 스틴슨이 9회에 다시 마운드에 섰다. 투수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완봉 기회였기에 김기태 감독도 허락했을 것이다.

스틴슨은 채태인과 이승엽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2루 위기를 만들었다. 결국 전날도 깔끔하게 9회를 틀어막았던 기아의 마무리 윤석민이 스틴슨을 구원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러자 삼성은 윤석민에게 강했던 진갑용을 대타로 기용했다. 그러나 윤석민은 진갑용을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다음 타자 박해민 역시 삼진으로 잡으며 주자 변동 없이 투 아웃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140km대의 명품 슬라이드가 빛났다.

▲ KIA 타이거즈 마무리투수 윤석민(연합뉴스 DB)
이제 마지막 타자 김상수만 넘어서면 기아가 너무도 약했던 삼성을 상대로 4년만의 위닝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날 스틴슨에게 눌려 안타를 치지 못했던 김상수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윤석민의 슬라이드를 제대로 밀어 치며 우중간에 큰 타구를 보냈다. 이 타구 역시 안타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2사 상황이라 주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릴 것이기 때문에 동점이 될 수 있었다.

당시 기아는 장타를 방지하기 위해 우익수 선상에 치우친 수비를 하던 상황이라 이 타구를 잡아내긴 힘들었다. 그러나 교체된 우익수 박준태는 빠른 판단과 주력으로 타구 진행방향을 놓치지 않고 쫓아가 다이빙 캐치로 김상수의 주루를 멈추게 했다. 박준태의 이 한 번의 놀라운 수비로 승리를 지켜낸 것은 물론이고 윤석민의 블론세이브를 막아냈다. 이 수비가 아니었다면 기아의 승리는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요일에 전패했던 삼성의 징크스를 좀 더 연장시키는 박준태의 호수비는 긴 시간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기아의 위닝 시리즈를 좀 더 익사이팅하게 장식하게 했다.

▲ KIA 브렛 필 ⓒ연합뉴스
또한 이틀 연속 승리타점은 물론이고 모든 타점을 혼자 책임진 브렛 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주 브렛필의 타격은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홈에서 유독 강한 브렛 필은 삼성 클로이드를 상대로 2루타와 홈런을 빼앗아내며 스틴슨의 호투를 지원했다. 나지완은 물론이고 팀 화력의 중심인 이범호마저 부진한 기아에 브렛 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성적은 기대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국내타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이로써 기아는 롯데, 삼성과의 대결에서 3승 3패로 선방한 한 주간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승률 역시 5할로 복귀했으며 무엇보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험버가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스틴슨이 초반의 불안감을 씻고 양현종과 함께 기아의 선발 마운드를 책임질 거라는 기대를 확인시켜 준 것은 크다. 한편 이날 경기에는 신종길이 다시 1군에 복귀해 올 시즌 첫 안타를 신고하기도 했다. 기아 타선은 조금씩 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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