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의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편을 중심으로 보수세력 일부가 비판의 선두에 선 가운데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기류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통합 나서는 여당 대표, 김무성 '언론 플레이'는 성공적?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대한 노건호씨의 비판 발언은 여당 대표가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플레이’ 차원에서 추도식에 참석한 것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지낸 문성근씨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건호가 김무성에게‘불쑥 나타났다’ 한 건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뜻”이라며 “‘여당 대표’가 추도식에 처음 참석한다면 ‘의전 준비’ 위해 협의가 필요한데, ‘통보’조차 없이 언론에만 알리고 게다가 경찰 병력을 증파했으니 예의에 어긋난 짓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해 이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 했다.

과거 노사모 대표일꾼을 지냈던 배우 명계남씨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통상 참배나 추도식에 참석하려는 여당 인사건 정치인들은 재단이나 사저 측에 사전에 참석을 알리고 의논을 하는 게 상례”라면서 “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먼저 흘리고 경찰병력 450명과 함께 쳐들어오는 행위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라고 써 문성근씨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측은 어떤 형식으로든 방문을 통보했다는 입장이다. 문성근씨와 명계남씨의 입장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을 통해 추도식에 참석하겠다고 통보했고 따라서 김무성 대표의 이름이 적힌 좌석까지 준비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SNS 등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정치적 이득을 볼 것이라는 경계가 섞인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차기대권주자 1위 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층을 겨냥한 ‘통합행보’에 나섰다는 점이 부각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노건호씨가 작심 발언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일관했고 이후 퇴장하는 과정에서 추도객에 의해 물병을 맞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의 이러한 행보는 지난 17일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 전야제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부 참석자들에 의해 물세례를 받고 30여분 만에 자리를 떠야 했던 사건과 함께 회자되고 있다. 결국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반발을 사더라도 국민통합에 앞장서고 있는 여당 대표라는 이미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종편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노건호씨 발언에 대한 온갖 비판을 내놨다. 나이가 어린 노건호씨가 1951년생인 김무성 대표에게 ‘건방진’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노건호씨의 발언에 ‘배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건호씨가 ‘친노세력’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등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오해하지 마십시오”와 “사과도 반성도 필요없다”는 문장이 대표적인 예로 지목되는 황당한 상황까지 나왔다.

▲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굳은 표정의 노건호 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을 지나 추도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소 부담스러워진 야권, 하지만 노건호는 '자연인'이란 점 감안해야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노건호씨의 발언이 야권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일정정도 드러낸다. 특히 노건호씨가 상주의 입장일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에서 상주가 문상객을 맞이하는 예의를 중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다소 난감한 상태에서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시기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세상을 등지게 됐다는 점과 이후 과정에서 보수세력이 틈만 나면 이를 정치적 논쟁거리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아들인 노건호씨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노건호씨는 정치인이 아니므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내놓는 모든 발언에 정치적 고려를 담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 나오는 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다.

문제는 노건호씨의 발언 자체가 아니라 제1야당으로서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무력한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새정치민주연합은 노건호씨가 언급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문제나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등에 대하여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여당으로부터 끌려 다니기만 했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이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 몇 차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노출하며 종편을 등에 업은 보수세력의 공격을 제대로 당해내지 못했다.

노건호씨 발언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에까지 놓일 위험에 처한 것은 이런 전사가 있는데다 최근 4·29 재보궐선거 패배와 이후 불거진 내홍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과 정부 여당에 대한 정치적 카운터 파트너를 자임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이 그야말로 수습되지 않는 무력함에 빠져있기 때문에 정치의 중심이 노건호씨 발언과 같은 돌발상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 정권에 대한 극한투쟁으로 일관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보수세력에게 “노건호씨 말고 우리를 상대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문제라는 얘기다.

결국, 중요한 건 '혁신' 전도사 김상곤의 '정치력'

새정치민주연합이 뒤늦게라도 ‘초계파 혁신기구’인 혁신위원장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임명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김상곤 전 교육감의 경우 최초로 무상급식 정책을 내걸고 직선으로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되는 등 보편적 복지를 안착시키는 선두에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로 분류되는 인사들과도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주류와 비주류가 대립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상곤 전 교육감이 여의도의 현실정치에 참여해본 일이 없는 데다 혁신위원회 구성 등의 문제로 계파 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높아 비관적 전망 역시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결국 ‘혁신’의 문제는 2016년 총선을 대비한 공천 개혁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정치권에서 가장 첨예하게 각자가 대립하는 사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상곤 전 교육감을 뒷받침하는 조직적 힘(?)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과단성 있는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개혁적 인사를 혁신위원장에 앉혀 그것 자체로 제1야당의 변화 의지를 내외에 피력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비극적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서를 잡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만큼 새정치민주연합이 놓인 상황은 녹록치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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