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감독에서 표민수 감독으로 좌장을 교체하는 극단의 조처를 마다하지 않은 화제작 <프로듀사>. 하지만 3회를 맞이한 이 새로운 시도의 작품의 향방은 여전히 미지수다. 신참 피디 백승찬(김수현 분)을 따라다니는 다큐 피디의 존재가 여전한 다큐인 듯하다가, 탁예진(공효진 분), 라준모(차태현 분), 신디(아이유 분)까지 네 사람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지점에서는 로코인 듯하다가, 왁자지껄한 방송가 에피소드의 연속된 해프닝에서는 시트콤인 듯도 하다.

그런데 이 다큐인 듯 로코인 듯 혹은 시트콤인 듯한 설정들이 여전히, <프로듀사>라는 드라마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3회 마지막 부분, <프로듀사>에도 희미한 서광이 비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서광은 <프로듀사>가 궤도를 튼 '로코'쪽은 아닌 듯하다.

방송국, 그들이 사는 세상

3회까지 방영된 <프로듀사>를 보고 MBC의 이춘근 피디는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평을 트윗에 남겼다. 어리바리 조연출 김수현의 연기와, 프로그램의 위기에 봉착하여 남은 소주를 집에 싸가는 차태현, 그리고 스텝을 물리고 아이유에게 아부하는 공효진까지. <불만제로>가 강제 종료된 후 영업직이 된 이춘근 피디를 웃프게 만드는 내 얘기 아닌 내 얘기는, 그의 평대로 방송가의 리얼한 에피소드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굳이 피디라는 특수 직업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말을 바꾸는 상사와, 그런 상사를 비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부하 직원들, 그리고 당돌한 신입과 면이 서지 않는 상사 등 일반적인 직장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대 또한 내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사>가 보이는 '리얼'과 '공감'은 어쩐지 허전하다. 고지식한 서울대 출신 백승찬을 두고 '니마이, 쌈마이'론을 펼치는 지점은 2015년의 그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과연 2015년의 서울대 출신 조연출들도 '고지식'할까? 문득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즉 이춘근 피디의 회고적 트윗처럼,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든 사람들이 그들의 90년대를 회고하며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듯한 정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국 초짜로서 과자를 사다 바치고, 호떡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백승찬의 고된 '을'로서의 수난시대가 온전한 공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초반 자사 프로그램 <안녕하세요>까지 동원하며 '회사 가기 싫어요'를 외치지만, 그 외침은 벼랑 끝 갑을관계의 절박함이라기보다는 '치기 어린 발버둥'처럼 다가온다는 데 <프로듀사> 공감의 한계가 있다. 차태현의 위선적 말바꾸기에 욕이 나오는 것을 꾹 참는 작가들의 반응에서 보여지듯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디들은 방송가의 갑인 것이다.

아마도 2015년 방송국의 '리얼'한 갑을관계를 드러내려 했다면, 방송국에 밉보여 영업직으로 발령받은 이춘근 피디의 이야기 정도는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고지식하고 순수한 첫사랑의 감성을 지닌 신참 조연출이 아니라, '일베' 전력으로 목이 간당간당한 신입 직원은 어떨까?

거기에 덧붙여 김태호 피디가 벌이는, 자식 학원비를 아끼려 거대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이미는 해프닝부터, 실제 유희열, 신동엽, 윤종신, 그리고 박진영까지 동원한 섭외 해프닝들은 버전은 다르지만 역시나 어디선가 본 듯한 해프닝의 연속이다. 리얼을 강조하기 위해 실존 인물들까지 동원하며 고된 방송가의 나날들을 나열하지만, 분명 그럴만한데 지루하다. 그나마 '박진영의 '버퍼링' 정도가 웃음의 포인트가 되었달까. 하지만 그 정도로 재미를 유발한다면, 시트콤으로서 <프로듀사>는 썰렁한 축에 속한다.

공감보다는 뻔한 로코의 설정들

방송가에 갓 들어온 신입 사원들이 고지식하고 순수할 거라는 전제에서 풀어내기 시작한 <프로듀사>의 갈등 구조는 백승찬의 '순수한' 첫사랑과, 그가 바라보는 아니 그가 오해하는 라준모, 탁예진 그리고 백승찬의 첫사랑녀 신혜주(조윤희 분)의 삼각관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걸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뻔하다. 고지식한 백승찬이 피디직에 도전할 만큼 순수하게 바라보았던 신혜주까지도 90년대에도 있을까 말까한 이야기인데, 알고 보니 잘 생긴 장혁에 스윗한 이천희까지 마다한 탁예진이 일관되게 라준모바라기였다니. 게다가 해프닝으로 연결된 백승찬과 탁예진, 신디가 이제 또 다른 남녀의 관계로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뻔한 구도에 대한 공감이 어설프다는 것이다. 첫 회부터 내내 일관되게 짜증나는 선배 피디의 역할에 집중했던 탁예진도 그렇고, 작가들 앞에서 말바꾸기는 당연하며 자주 비겁하며 비굴한 피디의 리얼리티를 실현해가고 있는 라준모 피디 모두 어쩐지 '로코' 버전에는 이질감을 주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방송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열연을 펼친다. 그런 그들이 이제 3회에 이르러 서로를 '남녀'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는데, 여전히 히스테릭한 탁피디와 비굴한 라피디의 면모가 그들 캐릭터를 지배한다. 자고로 사랑 이야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동생의 말처럼 탁피디는 도무지 궁금해지지 않는 뻔한 여자요, 라피디는 잘생긴 전 애인을 대체할 만한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잘난 척하는 왕싸가지 캐릭터 신디 역시 다르지 않다. 당대의 대표가수 아이유의 실제 매력에 한참 못 미치는 신디의 당돌한 캐릭터 역시 아직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게다가 <프로듀사>에서 앞으로 러브라인을 탈, 두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묘하게 동질감을 준다. 신입 피디에게 과자 심부름이나 시키는 철면피 탁피디나 왕싸가지 신디나 자기중심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멋지기보다는 궁상맞고 어쩐지 불쌍해 보이는 지점에서 라피디와 백승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많고 적음, 잘 생기고 덜 생김 외에.

그런 면에서 <프로듀사>가 앞으로 집중할 '로코'엔 산적한 과제가 많다. 리얼리티의 만연 속에서 이 네 인물들이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될 매력을 찾아내어야 하며, 서로 겹치는 캐릭터들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찾아내야 비로소 '로코'로서의 <프로듀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승찬 캐릭터가 보이는 가능성

그렇지만 <프로듀사>가 내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김수현이 연기하는 백승찬 캐릭터가 어리바리 신참 피디라는 뻔함을 넘어 조금씩 그만의 장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꽃미남'처럼 보이는 김수현의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니마이'로서의 백승찬 캐릭터이다. 도대체 선배 누나를 좋아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개성이 보이지 않던 그가, 조연출의 '사마천'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방송가의 역사를 두루 섭렵한 면모와 피디로서의 능력을 드러내며 백승찬의 가능성도, <프로듀사>의 가능성도 열린다.

방송가 프로그램의 주기를 도표까지 보이며 차분하게 설명하는 백승찬. 그를 추파를 던지는 남자이거나 섭외만을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의 피디로 바라보는 신디 앞에서 뻔한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연예인론을 펼칠 때, <프로듀사>의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다른 질감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는 여태까지 이 드라마가 해프닝만을 그리면서 라준모, 탁예진을 희화화했을 뿐, '직업인'으로서의 피디로 그려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찬을 피디를 할 만한 인물로, 그리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감동시킬 만한 인물로 가능성을 열었듯이, 그를 제외한 다른 세 주인공 역시 '감동'과 '공감'의 지점을 열 인물로 설득해낼 때 비로소 <프로듀사>는 진정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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