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가장 빠지기 쉬운 여자는 첫사랑도 아니고 절세미녀도 아닌, 지금 막 만난 여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삼시세끼의 옥택연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삼시세끼 정선 하우스를 찾은 고아라에게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의 모습을 보여 이후로도 이서진에게 잦은 놀림을 당했던 옥택연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박신혜가 찾아온 것이다. 분명히 만들 때에는 고아라와의 핑크빛 기대감이 충만했을 옥수수밭의 하트는 망설임 없이 박신혜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박신혜에게 반한 것은 비단 옥택연만이 아니었다. 가장 가깝게는 이서진과 삼시세끼 스태프들이었고, 아마도 시청자 역시도 예쁜 여배우 박신혜가 아닌 곱창집 딸내미 박신혜 그리고 화덕미장질도 척척 해내는 신혜렐라에 분명 반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박신혜의 모습에 이서진과 옥택연은 이구동성 고정으로 들어앉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실현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그들과 함께 시청자 역시도 지금껏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삼시세끼에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로서 박신혜가 자리잡는 상상을 갖게 했다.

삼시세끼 정선하우스의 원조인 이서진과 옥택연이 갓 도착해 첫 끼를 겨우 마쳤을 즈음이었다. 할아버지가 직접 채집한 꿀단지를 품에 무겁게 들고 찾은 박신혜였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사온 꿀도 아니고 집안에서 직접 구한 꿀이라는 것이, 이후 박신혜가 게스트가 아닌 안방마님으로 떠받혀질 강력한 복선과도 같은 예사롭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꿀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매니저가 옮겨다 놓은 박신혜의 또 다른 짐은 아이스박스였다. 아이스박스가 열리자 가장 먼저 시전을 끈 것은 양대창이었다. 도무지 게스트의 자세가 아니었다. 삼시세끼 게스트는 빈손으로 와서 이서진과 옥택연에게 노동빚을 떠안겼던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옥택연의 노예근성도 사실 게스트에게 삼겹살을 대접하기 위해 나영석 PD에게 헐값으로 노동을 팔게 된 것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번에야말로 자급자족 유기농라이프를 제대로 실천하겠다던 나영석 PD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연히 나PD는 박신혜의 아이스박스를 압수했다. 그러나 그런 나PD의 동작이 그다지 단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제작진과 이서진, 옥택연 모두에게 하나의 숙제가 됐다. 나PD 입장에서도 그냥 내주기는 그렇고, 이서진과 옥택연 입장에서도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나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양쪽 모두를 납득시키고 만족시킬 반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이 난제의 해법은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가만있는 성격이 못 돼 보이는 박신혜는 일단 인사를 마치자 자진해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는 동안 두 남자는 나PD가 모레 아침 메뉴로 정해준 바케트를 위한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선에는 참바다씨 유해진이 없었고, 두 전형적인 도시남자들은 의욕은 있었으나 화덕을 만들 지식과 경험은 없어 보였다.

결국 설거지를 마친 박신혜가 쭈뼛쭈뼛 화덕 짓기에 참가하면서 비로소 일에 진척을 보였다. 이글루 방식으로 짓자는 화덕 설계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미장까지 박신혜는 주저 없이 일을 해나갔다. 두 남자의 입에서 감탄과 칭찬이 마르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미리 제작진이 화덕을 짓는 방법을 공부해오라고 귀띔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박신혜는 두 남자를 리드했고, 벽돌을 쌓다가 아치부분에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자 곧바로 나무를 가져다 받치는 순발력까지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그런 박신혜를 보고 이서진이 건축과 출신이냐고 따지듯 묻기까지 했겠는가. 물론 감탄의 이서진 식 반응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박신혜에 놀랄 장면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박신혜의 활약에 나PD는 압수했던 아이스박스를 내줄 수밖에 없었고, 덧붙여 된장국을 위한 두부, 애호박 등을 사오는 것까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읍내 중독자 둘을 포함해 박신혜까지 정선읍내를 경험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곱창집 딸내미의 능숙하고 프로 포스 풍기는 양대창굽기는 이날 신혜렐라의 절정이었다. 가끔 지인이 찾아올 때면 직접 부모님 가게에 나가 해본 솜씨를 제대로 발휘했다.

이렇게 박신혜가 삼시세끼 역대급 활약을 보이는 동안 마침 김광규가 화정 촬영으로 제때에 합류하지 못한 터라 시선을 분산시키기도 어려웠다. 굳이 이서진과 옥택연이 박신혜를 고정으로 하자고 떼를 쓰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날의 모습은 누가 게스트이고 누가 호스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박신혜는 능동을 넘어 주도적으로 정선하우스의 삼시세끼를 끌어갔다. 박신혜가 앞으로 보일 또 다른 정선라이프에 주목해도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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