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리스트’로 낙마한 이완구 후임 총리로 황교안 현 법무부장관이 선택됐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전형적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높다. 그러나 지상파 뉴스에서는 이 단 한마디의 비판이 없었다. 황 후보자는 검찰 내 대표적 공안통으로 , 퇴임 후 17개월 간 16억의 수임료를 받아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에 올랐고, 청와대는 이미 ‘검증은 끝났다’는 자신감을 갖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이런 자신감은 상당 부분 방송 뉴스게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후임 총리로 내정된 21일 KBS, MBC, SBS는 각각 <새 총리 황교안…“민생안전 최선”>, <새 국무총리 황교안 장관 지명>, <새 총리 후보 황교안..8년 만에 ‘50대’> 리포트를 헤드라인으로 올렸다. 리포트 내용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21일 KBS '뉴스9' 헤드라인

평가와 검증없이 ‘앵무새’처럼 전하는 지상파 3사 뉴스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첫 리포트에서 황교안 총리 내정자가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 등을 지휘했다고 언급했다.

▲ 21일자 지상파3사 보도

이어 KBS는 황교안 내정자에 대해 “굵직굵직한 현안을 처리하면서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 받았다”며 “따라서 취임하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고강도 사정과 정치·사회 개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MBC 역시 “굵직한 사건들을 잘 해결했다는 평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MBC는 더 나아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는 외유 내강형에 합리적인 리더십, 현직 검사 시절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낼 정도로 업무에 정통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덧붙였다. SBS는 “2년 3개월 동안 법무장관 직을 안정되게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아는 만큼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 MBC, SBS는 황교안 내정자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개입이 ‘잘’ 대응했는가를 넘어 적절했는가에 대한 평가를 하지 못했다. 청와대의 내정 배경을 읽었을 뿐이다. 관련 사건들에서 황 내정자의 행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황 내정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걸 반대했다. 그로 인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혼외자’ 사생활을 여론화시켜 검찰총장을 찍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공당에 이념적 덧씌우기를 해 국가적 해산을 도모한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민주주의 시스템에 역행하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로 인해 정권을 지지하는 층의 결속을 다져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관료적 판단이 아닌 정파적 선택 행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잘 들을지는 모르겠으나 황교안 후보자는 근본적으로 ‘국민통합’, ‘소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물론, 지상파 뉴스 이런 지적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런 뉘앙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KBC, MBC, SBS가 오히려 주목한 부분은 황교안 내정자가 ‘50대 총리’라는 점이다. SBS <8뉴스>는 “황 내정자는 올해 58살”이라며 “노무현 정부 당시 한덕수 전 총리에 이어 8년 만에 50대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총리’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문맥이었다. 여기에 MBC는 벌써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에 대한 경계를 보탰다.

청와대의 의중 다시 한 번 강조한 MBC와 SBS

MBC와 SBS는 또한 <“부정부패 척결 정치 개혁 적임자”>, <“기본 바로 잡겠다”..전방위 사정 예고> 리포트를 별도로 배치하고 청와대의 ‘의중’을 전하는데 앞장섰다.

▲ 21일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
“황교안 장관을 총리로 지명한 건 박 대통령의 정면돌파 의지를 보여준거란 분석입니다. 부정부패 척결과 사대구조 개혁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을 선택했다는 관측입니다.…(중략)…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직접 법정에 서서 흔들림없이 난제를 해결한 공안통 황 후보자에 대한 야권의 거센 반대도 예상했지만, 사정경험이 풍부한 황 후보자가 국정 최우선 과제인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완수할 적임자로 판단했다는 분석입니다”_MBC 뉴스데스크

“황교안 내정자는 법무장관 재직 도중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사건’을 직접 변론하며 정당 해산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졌다는 후문입니다. …(중략)… 황 내정자는 검사 시절에 국가보안법 해설서까지 펴낸 대표적인 공안통입니다. 법치주의와 원칙론에 입각해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달라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는 해석입니다. 정치권이 아닌 법조계 출신으로 과거 정치권의 비정상적인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정치권의 고질적인 비리를 대상으로 한 전방위 개혁도,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_ SBS 8뉴스

2015년 대한민국에 필요한 총리의 상은 무엇이고 현재의 정국에 황교안 내정자가 적절한 인물인지에 대판 판단은 아예 없다. '분석'이 없는 뉴스의 한계, 출입처 저널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보도의 전형이었다.

JTBC, “미스터국가보안법 공안통…수첩인사 한계 못 벗어나”

JTBC는 훨씬 뛰어났다. <‘공안통 황교안’ 총리로…또 불붙는 논란>를 헤드라인으로 올리며, 손석희 앵커는 “사정 수사를 지휘해온 황교안 법무장관”이라며 “미스터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검사 출신의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공안정국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도 이른바 수첩 인사의 한계를 못 벗어났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며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는데도 뭔가에 쫓기든 몇몇 측근 인사 말고는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 21일 JTBC '뉴스룸'
JTBC는 해당 리포트에서 황교안 내정자와 관련해 “초대 내각 멤버로 출발해 인사 때마다 총리나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됐다. 이번에도 유력 후보군으로 일찌감치 이름이 올라있었다”며 “이 때문에 대통령이 수첩 밖의 인물을 과감하게 등용하지 못하고 믿는 사람만 돌려가며 쓰는, 인재풀의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검사 출신 총리를 내세워 전방위 사정 정국을 예고한 것”이라며 “사정의 고삐를 바짝 조이면서 레임덕을 막고, 당·청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밖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동안 낙마했던 국무총리 후보자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JTBC는 이 밖에도 <별명은 ‘미스터 국가보안법’…황교안 후보자는 누구?>리포트를 별도로 배치했다. 이 부분 또한 별도 리포트를 배치한 MBC와 SBS 리포트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2005년에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구속 수사를 고집하다 수사 지휘권을 발동한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과 충돌했습니다.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로펌 변호사로 변신해 열일곱 달 동안 수임료 16억원을 받았습니다. 장관 인사청문회 때 이 문제로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중략)… 국정원 댓글 사건 때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반대해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정부 대리인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물타기 의혹이 제기된 특별사면 수사 가능성을 언급해 박 대통령의 지침에 따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습니다”_JTBC 뉴스룸

지상파 뉴스를 보며, 저널리즘의 ABC, 기초도 해내지 못한 채 청와대의 의중만 받아쓰는 뉴스가 과연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하고 인사 검증을 하는 상황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JTBC와의 실력차도 확연했다. 황교안 총리 후보를 발표하며 청와대는 돌연 시간을 연기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KBS는 이를 “소동이 벌어졌다”고 언급했다. 반면, JTBC는 “전례없는 우왕좌왕”이라며 “중요 인사 발표 과정에서 빚어진 이런 촌극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과연,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지 다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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