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쇼이 온 아이스’ ⓒ공연타임스
2막에서 갈라쇼를 선보인 안도 미키는 명불허전 그 자체였다. 한때 김연아, 아사다 마오와 함께 3대 피겨스타로 불리던 그는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볼쇼이 온 아이스 쇼에서 갈라쇼를 선보이는데, 회전 점프와 같은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어린아이에서 부모 관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관중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갈라쇼를 위해 빙판을 가로지를 때에는 스케이팅이 아니라 ‘활공’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탁월한 기량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하지만 볼쇼이 온 아이스 쇼는 안도 미키만을 보기 위해 찾을 공연이 아니다. 1막에서 ‘백조의 호수’와 ‘메리 포핀스’ 등 다섯 가지의 레퍼토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이 기사를 읽고 볼쇼이 온 아이스를 관람한다면 조금 더 많은 설명을 함께 관람하는 자녀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이나 연극과 달리 아이스 스케이팅 쇼라는 장르는 대사가 극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스케이터의 몸짓이 극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① 백조의 호수: 모두가 알다시피 원작 백조의 호수는 지그프리드 왕자와 백조의 마법에 걸린 오데트의 사랑이야기를 그리는 발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악마 로트바르트, 로트바르트는 자신의 딸 오딜로를 오데트의 모습으로 둔갑시키고는 지그프리트 왕자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시킨다. 당연히 지그프리트는 오딜로를 오데트로 착각하고는 오데트의 모습을 한 오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볼쇼이 온 아이스 속 백조의 호수는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 <블랙 스완>의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원작 발레 속 로트바르트는 등장하지 않는 대신에,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로가 검은 백조의 모습을 하고는 지그프리트 앞에 나타난다. 흑조가 지그프리트로 하여금 오데트로 착각하게 만드는 셈. 흑조의 모습을 한 오딜로를 백조인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트는 흑조 오딜로와 행복한 시간을 나눈다.

▲ ‘볼쇼이 온 아이스’ ⓒ공연타임스
② 백설공주: 메리포핀스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볼쇼이 온 아이스의 레퍼토리는 바로 백설공주. 백설공주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일곱 난쟁이들로, 볼쇼이 온 아이스에서는 백설공주와 계모를 등장시키기 전에 일곱 난쟁이들 보여줌으로 이들 난쟁이들이 얼마나 즐겁고 유쾌하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동화 원작에서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고는 유명을 달리하는 백설공주를, 볼쇼이 온 아이스에서는 ‘왕관’을 쓰고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으로 바꾼다.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씌워준 왕관을 왕자가 벗겨줄 때 비로소 백설공주가 깨어난다.

▲ ‘볼쇼이 온 아이스’ ⓒ공연타임스
③ 로미오와 줄리엣: 볼쇼이 온 아이스에서 로미오의 가문인 몬터규 가문은 ‘검은색’으로, 줄리엣의 집안인 케풀렛 가문은 ‘빨간색’으로 표현된다는 것만 알아도 이해하기 쉽다. 서로 반목하는 두 가문인 몬터규 가문과 케풀렛 가문을 대표하는 두 남자 스케이터는 검은색 옷과 붉은색 옷을 입은 채 두 가문의 대립을 스케이팅으로 보여준다. 남자 스케이터 한 명이 상체를 숙인 채 마주 오는 남자 스케이터를 등으로 받아내는 장면은 몬터규 가문과 케풀렛 가문의 대립을 넘어서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하기 전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어린이 관객이 관람하다 보니 원작에서처럼 마큐시오와 티벌트가 살해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운명하는 장면도 은유적으로 처리되는데, 볼쇼이 온 아이스에서 로런스 신부의 손에 들린 흰 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또는 운명을 상징한다. 흰 천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얼굴을 감싼 다음에 드러나는 두 남녀의 얼굴에는 코 아래로 흰 천이 뒤감겨 있다. 대립되는 두 가문을 넘어서서 사랑으로 묶인다는 의미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 두 남녀가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슬픈 의미도 담겨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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