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금천지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줄었고, 넷 중 한명은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가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이 지역 노동자 552명의 노동조건을 분석한 결과다. 정부가 대규모 IT산업단지 같이 ‘IT 보도방’에서 일어나는 근로기준법 위반행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지만 현실은 오히려 나빠진 셈이다.

‘노동자의 미래’는 12일 고용노동부 관악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팀에 따르면, 2011년부터 격년으로 실행한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들의 2015년 실질임금은 2011년에 비해 1.8% 줄었다. 같은 기간 명목임금은 188만1천원에서 196만1천원으로 8만원 늘었지만 물가지수(2010년 기준)를 고려한 실질임금은 180만9천원에서 179만3천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 4년 간 서울단지 노동자 임금의 ‘하향평준화’ 추세가 뚜렷하다. 조사팀 분석 결과, 서울단지 내 중상위권(2014년 8월 기준 시간당 임금 중위값인 8323.3원의 1.5배 이상)은 2011년 18.3%에서 2015년 6.6%로 줄어든 반면 중하위권(중위값 3분의 2 미만) 포함 초저임금노동자는 58.0%에서 64.8%로 늘었다. 특히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24.2%나 됐다.

특히 남성노동자의 경우, 명목임금마저 크게 줄었다. 2011년 233만8천원이던 명목임금은 2013년 236만5천원으로 조금 늘었지만 올해 들어 226만6천원으로 급감했다. 실질임금으로 따지면 224만8천원→219만7천원→207만2천원으로 5.7%나 줄었다. 여성노동자의 명목임금은 2011년 152만4천원에서 2013년 164만1천원, 2015년 173만원으로 늘었지만 실질임금은 3.8% 늘어나는 데 그쳤다.

▲ IT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사진=대한민국 정부 정책브리핑)

고용유연성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단지 내 비정규직 비율은 46.7%로 한국사회 평균 45.3%와 비슷했다. 그러나 서울단지 노동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2.6년으로 한국사회 평균(5.6년)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특히 1년 미만 노동자가 44.5%(2011년 47.4%)인 반면 5년 이상 노동자는 14.2%(2011년 16.4%)에 불과하다. 정규직 노동자에 한정하더라도 1년 미만이 35.7%(2011년 36.9%), 5년 이상이 17.6%(20.9%)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조사팀은 “2000년대 이후 새로 조성한 공단이라 해도 첨단화된지 15년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1년 미만 근속노동자의 비율이 여전히 높은 건 서울단지의 고용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서울단지에서는 정규직도 정규직이 아니다”라며 “근속년수가 5년이 넘는 노동자가 열의 둘도 안 된다. 권고사직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서울단지를 첨단화·고도화하며 산업단지를 확대했고, 산업단지 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56.5%는 임금이나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계산받지 못한다는 노동자가 37.5%나 됐다. 조사팀에 따르면, 이는 단순·생산직(80.7%)일수록 비정규직(63.1%)일수록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외 노동조건도 마찬가지.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응답은 36.1%, 연차휴가 없다는 응답비율도 37.0%나 됐다. 23.4%는 회사가 날짜를 지정해야 연차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받았다는 노동자는 42.9%에 불과했고, 17.9%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언, 감시, 상호감시 등을 겪으며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노동자는 44.1%. 거의 매일 비인간적 처우를 받는다는 노동자도 14.9%나 됐다. 폭언·폭행·모욕적 처벌 등 전근대적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노동자는 27.8%고 이 같은 폭력을 매일 겪는 노동자는 5.3%로 조사됐다. CCTV 감시와 일상적 감시를 호소하는 노동자는 29.2%로 나타났다.

▲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자의 미래’ 조사팀은 “첨단화된 산업단지에서 고용유연성이 높고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것은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노동소득을 공단사업주들이 보장하지 않아서이고, 불법적으로 노무관리를 하며 사업을 해도 고용노동부가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조사팀은 지난 1일부터 보름 동안 체불임금 관련 상담 14건, 연차휴가 상담 5건, 권고사직 등 고용 관련 상담 2건, 연장수당 미지급 3건, 최저임금 위반 1건, 부당대우 2건, 퇴직금 상담 3건 등을 접수했다며 “대부분의 상담건은 고용노동부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서 사업장을 감독한다면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미래’는 기자회견에서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다가 필요 없으면 나가라 하고, 그러면 꼼짝없이 쫓겨나는 게 서울단지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사태를 막고, 그로 인해 고용불안이 확대되는 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동부와 공단사업주들에게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 (사진=노동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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