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 훈련에 참가한 예비군 한 명이 실탄이 장전된 K-2 소총을 다른 예비군들을 향해 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당한 예비군 중 1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고 3명은 경상을 입은 상태다. 이 사고로 해외에 출장을 나가있던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조기 귀국하기로 했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예비군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사건의 전모가 공식적인 형태로 밝혀지기 전에 이를 무책임한 태도로 보도하는 것은 올바른 언론으로서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런 비극이 벌어진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예비군 훈련에서 실탄을 발사하는 훈련을 시행한다는 것에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특히 사격 훈련은 극도로 통제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하지만 훈련 참가자 누구라도 그럴 마음을 먹는다면 총기에 장착된 안전고리를 해제하고 이를 흉기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훈련장에 배치된 기간병들이 돌발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란 늘 한계를 노출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SNS 등에서는 예비군 훈련의 축소나 폐지를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육군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고와 관련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중 예비군 훈련 폐지론은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가장 큰 근거는 실제 예비군 훈련이 그다지 내실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군 당국의 온갖 노력도 사실상 무위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훈련에 참가한 예비군들 대다수가 ‘하는 시늉’에 그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며 이런 세태는 다양한 문화적 컨텐츠들에서 부정적 묘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실탄 사격의 경우에도 단지 총을 발사해보는 경험을 얻는 것 이상의 어떤 교육적 효과를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예비군의 실탄 사격 훈련은 영점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의 총기를 사격토록 하고 표적지의 탄착군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총기를 더 잘 다루기 위한 교육은 보통 없고 표적지에 아예 탄이 맞지 않는 경우는 성과를 평가할 수조차 없다. 예비군 훈련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격 훈련조차 이런 수준인데 나머지는 거의 거론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비군 훈련의 존치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노농적위대 등 대규모의 예비전력을 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만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현재의 방식으로 예비군 훈련을 존치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예비군 훈련을 실시하지 않더라도 예비역 편재 자체는 남겨두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 현재의 훈련 방식이 실효적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이를 개선할 수도 없다는 점을 이제 그만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유사시에 실제로 노동적위대를 동원하고 이를 현실적인 의미의 전력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노동적위대를 전시에 동원하려면 상당히 체계적인 행정작용이 전제돼야 하는데 북한의 행정체제는 일부 주요 도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동원된 노동적위대를 실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만한 물자가 어느 정도나 확보돼있는지도 불투명하고 훈련 수준이 얼마나 보장돼있는지도 의문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농적위대 등 예비전력에 대당하는 개념의 전력을 상시적인 형태로 운용해야 하는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총력전을 염두에 두기 보다는 비대칭전력을 활용한 전술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전국적 규모의 예비전력 운용은 다분히 총력전과 같은 상황을 전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들어 앞서 언급했듯 핵무기, 생화학무기, 특수부대 등의 비대칭전력의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으며 심지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개발 등을 시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군 훈련에 특히 방점을 둔 예비전력 운용이 얼마나 실효적인가는 의문이다.

▲ 3일 총기 사고가 발생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에서 군 앰뷸런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예비군 훈련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됨으로써 건전한 정치환경의 조성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예비군 훈련의 과정에는 보통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정신교육 실시가 포함된다. 이때 공개되는 자료들은 유사시 예비군 동원 절차 등이 나와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북한 체제에 대한 호전적 태도를 고취시키는 내용이나 군사적 긴장 유지 등을 당연시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는 베트남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국내에 존재하고 있는 ‘종북세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매카시즘적 내용의 자료를 의무적으로 시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꼭 시청각 자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예비군 훈련 과정에서 강연자로 초빙된 예비역 장교들이 유사한 내용의 강연을 통해 위기의식을 조장하려 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니 예비군 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드러나고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SNS 등에는 실효성도 없고 비효율적이면서 오히려 여러 위험을 키우기만 하는 예비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퇴역한 장교들의 생계를 보장해줌으로써 군을 통제·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만 기능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체제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제기되는 주장에 대한 변변한 반박 논리를 찾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만큼 오늘날 치러지는 예비군 훈련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차라리 예비군 훈련을 폐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외국의 경우처럼 현역 정규군과 현재 예비역의 방식 중 하나를 택일하되 복무기간에 차이를 두는 제도의 도입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거시적이고 근본적 차원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의 진전과 평화체제의 안착을 통해 예비군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국내외 정세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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