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00MHz 주파수 할당의 방향을 잠정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UHD전국방송을 사실상 포기하고 경매를 통해 통신용으로 할당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방통위·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말 국회에 700MHz 주파수 108MHz 대역 가운데 24MHz 폭만을 방송용으로 할당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난망 활용을 위해 20MHz 폭을 할당한 점을 감안하면, 88MHz 폭의 2/3 이상을 통신에 할당하겠다는 방침이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부터 방송통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따라 700MHz 주파수(698~806MHz) 중 상향 728~748MHz 폭과 하향 783~803MHz 대역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하겠다고 의결했던바 있다. 방송계는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UHD방송 구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주파수 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방통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통위는 한 발 더 나아가 상향과 하향으로 나눠진 40MHz 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하기로 해 ‘알박기’ 논란을 자처했다. 할당 계획을 밝히지 않았던 나머지 대역도 사실상 통신용으로 할당할 수밖에 없던 배분이었다.

방통위, “700MHz 주파수 할당…제로베이스에서 협의”

▲ 1월 27일 오후2시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이 기자실에서 '2015년도 업무 브리핑'에 나섰다(사진=방통위)

그러나 3기 방통위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2014년 7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700MHz 주파수 활용과 관련해 “20MHz 폭을 재난망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면서 “(그런 점에서)통신 쪽 (할당 의결된) 40MHz폭을 포함해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 방통위 때 결정된 것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주파수 전체적인 운용방안에 대해 기존 40MHz폭(통신용)을 포함해 같이 논의해야한다. 주파수라는 건 한번 (용도가) 결정되면 바꾸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한정된 주파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방안에 대해 머리 맞대고 생각해봐야 한다. 700MHz 주파수 108MHz 폭 중 20MHz폭을 재난망으로 주고, (구 방통위 결정대로) 40MHz를 통신용으로 감안하면 48MHz밖에 안 남는다. 그러면 지상파 UHD서비스를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통신용으로 줬던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게 아니라 통신에게 그대로 줄 수도 있고, 방송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전제로 다시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걸 희망하는 것”_최성준 위원장

최성준 위원장은 “희망사항”이라고 이야기했으나, 48MHz 폭으로는 지상파 UHD서비스를 하기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단 점에서 명확한 방향 전환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같은 해 8월 4일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비전 및 주요 정책과제>으로 이어졌다. 정부여당 추천 허원제 방통위 부위원장은 “지상파가 UHD 시대의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방송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상파 측에서는 UHD서비스를 전국적으로 방송하는데 54MHz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700MHz의 108MHz 폭 중 재난방송으로 20MHz 할당을 합의했고 기존 통신용으로 40MHz를 의결했다. 그러면 남는 주파수는 48MHz 폭으로 지상파가 UHD방송을 하지 못하게 된다. 통신용으로 의결된 주파수를 지상파 UHD서비스를 위해 쓰고, 지상파가 UHD로 완전히 전환되고 나면 (현재 지상파가 쓰고 있는 HD방송을 위한)주파수가 반납된다. 그리고 그것을 통신용으로 재할당 가능하다”_허원제 부위원장

방향 전환을 시사했던 방통위는 그러나 8월 중순부터 말을 미묘하게 달리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진흥협회가 개최한 IT리더스포럼 강연에서 최 위원장은 “700MHz 등 새로운 주파수 배정 없이 지상파가 기존 주파수를 효율화해 쓰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한국경제>와의 ‘월요인터뷰’를 통해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방통위, “이미 정해져 있던 통신 배정 40MHz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겠다”

“주파수는 한정된 국가 자원이다. 그걸 어디에 쓰는 게 국민에게 가장 효율적인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원칙에 의하면 700MHz 대역 중 20MHz는 국가 재난망에 최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40MHz는 이미 통신사에 배정돼 있다. 문제는 지상파가 요구하는 초고화질(UHD) 방송인데, UHD 방송까지 하기엔 주파수 대역이 조금 모자란다. 하지만 기술 발전 추이를 볼 때 지금보다 더 적은 주파수로도 방송이 가능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주파수 사용에 관해 종합적인 검토를 해보자는 취지의 말이었는데 통신사에 할당된 주파수 대역을 지상파에 준다는 쪽으로 해석돼 한동안 힘들었다”_최성준 위원장

이 인터뷰에서 최성준 위원장은 ‘통신사에 배정된 40MHz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씀인가’라는 물음에 “가능하면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방법을 찾아보는 게 방통위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라고 재차 강조했다. ‘원점에서 재검토’와는 확연히 달라진 입장이다. 통신업계의 반발과 IT 전문지들의 공세에 말을 바꿨다는 비판이 언론계 안팎에 퍼졌다.

▲ 한국경제 33면 캡처

이 무렵 국회가 본격 개입했다. 국회는 700MHz 주파수 할당과 관련해 여야 합의로 2가지 사항에 의견을 모았다. 지상파 UHD전환은 지역 소외 없이 ‘전국방송’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과 현재 지상파가 (HD를)UHD로 전환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주파수는 700MHz 대역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지상파 UHD방송 전환’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방통위는 이때 이미 700MHz 주파수에 대한 통신용 할당을 건드리지 않는 확고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주파수소위원회에서 방통위와 미래부가 마련한 <지상파 UHD 도입방안(안)> 문건이 제출됐다. UHD전국방송을 하되 단계적으로 하고, 방송에 필요한 주파수는 700MHz 이외에 기존 방송대역에서 찾아본다는 정부안은 국회의 여야 합의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방통위, “UHD전국방송으로 추진하되 ‘단계적’으로”

▲ 방통위의 UHD방송 추진 방안

방통위는 UHD방송 추진의 단계를 나눴다. 1단계는 ‘2015년 하반기 수도권에서 시범방송 추진’하고, 2단계 ‘2016년 중 수도권부터 우선 도입’, 3단계 ‘2017년 하반기 중 강원권 및 광역시로 확대’, 4단계 ‘2021년부터 시·군 지역으로 확대’ 하는 방안을 제시됐다. 방통위는 이 계획에 따라 UHD전국방송에 필요한 총 12개 채널 중 2016년까지 우선 5개 채널(KBS1·2, MBC, SBS, EBS)에 필요한 주파수만 확보하는 일정을 밝혔다.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방송에 필요한 주파수를 찾겠단 계획이었는데, 결국 당장의 700MHz 주파수는 통신용으로 할당하겠단 방침의 천명이었다.

그 후, 최성준 위원장의 발언은 해석의 여지 없이 노골화 됐다. 최 위원장은 지난 4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700MHz 주파수와 관련해 “지상파 UHD방송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며 “처음에는 수도권에서 이뤄져야 하고 지상파 쪽에서는 5개 채널, 약 30MHz 폭이 필요하다”고 못을 박았다. 최 위원장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나눠서 쓰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파수는 한정돼 있고 서로 쓰겠다고 하고 있다. 지상파 UHD방송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과 관련 분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를 위한 주파수 확보돼야 하는데, 700MHz(를 사용하는 데에는) 통신과 충돌이 생긴다. 지상파 UHD 방송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에 대한 이견은 없다. 처음에는 수도권이 이뤄져야 하고 지상파 쪽에서는 5개 채널(약 30MHz 폭)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통신은 이미 광개토플랜2를 통해 40MHz폭을 확보하고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략)… 제가 나눠서 쓰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분량과 시간적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복합이 되면 양 진영이 100% 만족은 아니나 서로 존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하고 협의를 계속 하고 있다”_최성준 위원장

당시, 언론들은 최성준 방통위원장의 발언을 “나눠서 쓴다”에 주목해 해석했다. 700MHz 주파수를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방송과 통신이 같이 쓸 수 있도록 방안을 찾고 있다는 말이었다. UHD방송을 수도권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면 통신용으로 700MHz 주파수를 할당할 수 있다는 방식이 기정사실화 됐다.

결국, 미래부와 방통위는 700MHz 주파수를 방송용 24MHz, 통신용 40MHz 할당하는 것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UHD방송은 KBS2와 EBS에서 각각 700MHz와 VHF-H 대역(현재 DMB방송)을 통해 채널2개로만 전국방송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KBS1과 서울MBC, SBS에는 700MHz 주파수를 각 1개씩 먼저 공급해 UHD방송 부분 서비스를 시작한다. 당분간 지상파UHD방송은 수도권에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시중-이경재-최성준으로 이어지는 동안 방통위는 UHD방송 추진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전파법>은 “방송사업을 위해 이용하는 주파수는 방통위가 관리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700MHz 주파수의 관리권 역시 방통위가 가지고 있었지만, 방통위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미래부가 700MHz 주파수 중 40MHz 폭을 통신에 할당해 얻은 경매대금 2080억 원을 2015년도 세입예산으로 책정했을 때도 방통위는 침묵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UHD방송은 수도권만 볼 수 있게 된다. 방송 전문가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UHD방송은 보편 서비스가 아니라고 합의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결정이 부담스런 정부는 사실상 확정을 짓고도 700MHz 주파수의 최종적 활용 방안은 상반기 중 주파수심의위원회를 통해 확정된다는 입장이다.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더라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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