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은 이제 방송 제작에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되어 버렸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협찬이 없으면 방송에서 교양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정도다. 하지만 MBN 미디어렙의 불법 영업 일지에서 드러났듯, ‘협찬’은 위험한 방식이다. MBN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은 한국인삼공사로부터 돈을 받고 제작됐다. 아로니아를 먹고 시력이 좋아져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며 방송사에 안경을 보냈다는 사연은 제작진이 연출한 ‘가짜’였다.

▲ MBN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최근 공개한 TV조선, 채널A, MBN의 광고·협찬 계약은 ‘협찬’이 어디까지 타락해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종편사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듯 ‘돈을 주는 대로 뉴스와 교양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지경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방송사 역시 그 행태가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협찬금 4400만원이면 뉴스도 팔아먹으며 ‘홍보’해주는 현실

MBN <경제포커스>는 한국전력 ‘자원외교’를 홍보해 주곤, 4400만원을 받았다. 2014년 6월 MBN과 한전은 “한국전력의 홍보물 방영”을 목적으로 <위대한 이름 아프리칸>이란 제목의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 그해 11~12월께 방영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렇지만 MBN이 다큐를 제작하지 못하면서, 방향은 보도물인 MBN <경제포커스>에 한전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 대체됐다. MBN <경제포커스>는 MB자원외교와 관련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의 실패담을 나열하며, 유독 “(자원외교)성공사례도 있다”며 한국전력공사의 성공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TV조선은 2012년 12월 ‘영향력 있는 CEO 선정’과 관련해 특집기사에 수상내역 소개를 명목으로 2000만원의 협찬금을 받았다. 전문가들을 TV조선의 해당 사업 자체가 “6억6000만 원짜리 수익사업”이었다고 지적한다. 시상식 만들고, 협찬 받아 수상자 선정해 이를 보도하는 것을 미끼로 돈을 갈취한 셈이다.

‘협찬’에 대한 문제는 비단 종편만의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KBS 협찬 기업과 기관> 관련 자료를 보면, 지상파의 협찬 또한 엇비슷한 문제가 있다. (▷관련기사 : KBS, 삼성 돈 받아 프로그램 만들곤 “수신료로 제작됐다” 고지)(▷관련기사 : ‘천태만상’ 방송 협찬…교통안전공단이 만드는 SBS '인기가요'?)

▲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화면 캡처

‘협찬’, 종편만 문제아냐…지상파도 오십보백보 상황

2013년 ‘공익적’ 내용으로 호평을 받았던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다큐멘터리는 삼성전자로부터 2억6000만원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며, 삼성전자의 스마트기기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내용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협찬 기업에 대한 광고효과에 충실했다.

KBS1 대표적 자체제작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은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억 원, 2013년 9월부터 2014년 8월까지 41차례 한전KPS로부터 회당 200만원 씩 모두 8200만원의 협찬을 받았다. KBS1 <즐거운 책읽기>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1억 원, KBS1 <러브인 아시아>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6000만원을 받는다. 또한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국세청에서 2200만 원 등 1억3550만원을 받았고, <인간의 조건>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7700만원을 받았다. 모두 시청자 입장에선 눈치채기 어려운 그러나 협찬 기업과 기관에겐 반드시 어떻게든 홍보효과를 내줬을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돈들이다.

MBC드라마 <메이퀸>은 보건복지부에서 2200만원을 받았다. EBS <다큐프라임>은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1억1000만원을 받아 절전 관련 다큐를 제작했다. EBS <다큐프라임>의 ‘인생항로, 나침반을 찾아서’ 편은 교육부로부터 1억4000만원, 고용노동부 6500만원, 인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에서 9000만원을 협찬 받았다. SBS <인기가요> ‘교통안전송’은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8억2500만원의 제작 지원을 받았다. SBS <인기가요>는 이 밖에도 한국관광공사에서 2억5000만원, 고용노동부에서 4290만원, 에너지관리공단에서 4400만원, 근로복지공단 4180만원 등 총 12억 원 이상의 협찬을 받았다. SBS <심장이 뛴다> 역시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6600만원을, SBS <자기야, 백년손님>는 국민보험공단에서 2200만원을 받아 제작됐다. ‘협찬’이 없으면 사실상 제작이 불간으한 지상파의 드라마와 교양프로그램의 현실이다.

‘협찬’에 대한 최소한의 공적규제도 작동하지 않는 현실

방송사업자들의 매출에서 ‘협찬’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코바코)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4 방송통신 광고비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지상파TV 협찬시장은 2997억 원에서 2014년 3354억 원으로 2년 사이 무려 11.9%나 성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과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협찬’이 철저히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단 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KBS의 협찬내역만 공개된 까닭은 수신료 직접 지원 받고 있는 KBS만 해당 자료를 제출하고, 타 방송사들이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MBC와 SBS 협찬 내역은 방송사가 아닌 국회에 자료제출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을 통해 재구성됐을 정도이다. 이는 ‘민간기업’이 방송사에 얼마나 협찬을 하고 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협찬에 대한 규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방송법>은 협찬이 가능한 경우를 △방송사업자가 행하는 공익성 캠페인, △방송사업자가 주최·주관 또는 후원하는 문화예술·스포츠 등 공익행사, △시사·보도, 논평 또는 시사 토론프로그램을 제외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KBS와 MBC, SBS는 자체제작 프로그램의 경우 교양프로그램은 회당 제작비 5000만 원 이상, 예능은 7000만 원 이상, 드라마는 4회 미만의 단막극 또는 110회 이상의 연속극이거나 회당 2억 원 이상의 대작 드라마에 한해서만 협찬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나 규제 여부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협찬이 금지돼 있는 뉴스를 보다보면 종종 ‘돈 받고 제작된 보도 아닌가’ 생각되는 리포트들이 있는데, 보도에 대한 협찬은 MBN 영업일지에서 드러났듯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문제가 점점 악성화 된다. 방송계 안팎에서는 ‘협찬’과 ‘광고’의 경계가 이미 모호해졌다고 보고 있다. 방송사들은 협찬을 받으면서 간접광고 계약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내용도 깨알 같다. 협찬사의 제품을 프로그램 내에서 ‘단순노출 몇 회’과 ‘에피소드 몇 회’로 구분하는 계약까지 일반화되고 있었다. “(협찬주의)경쟁 브랜드를 피해 연출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되는 경우도 흔하다. 협찬 자체가 이미 ‘광고효과’를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행 법률은 ‘간접광고’와 ‘협찬’을 전혀 다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간접광고는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해 그 상품을 노출 시키는 형태의 광고’를 뜻하는 반면, 협찬은 ‘방송프로그램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도 다르다. 간접광고는 프로그램 내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만 협찬은 프로그램 말미에 소개되는 형식이다. 판매처 또한 다르다. 간접광고의 경우,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통해서만 받도록 돼 있으나 협찬은 방송사에서 직접 판매한다.

협찬이 간접 광고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황은 시급한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국회에도 ‘간접광고’와 ‘협찬’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 현행법상 광고와 협찬의 차이(2013년 4월 자료=코바코)

국회에 ‘협찬’ 규제 관련 법안 제출됐지만 처리 막아서고 있는 ‘방통위’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협찬과 광고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점에서 협찬을 ‘간접광고’로 흡수해 관련 규제를 일원화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방송법 개정안>은 △협찬고지의 범위를 물품·인력·장소 등을 제공받는 것으로 한정하고 경비를 제공받는 협찬을 ‘간접광고’로 분류, △방송광고의 허용범위·시간·횟수에 대한 세부기준 및 방법 마련, △간접광고 상품 등의 효능·효과·기능 소개 불가, △가상·간접광고의 경우, 프로그램 시작 전 자막 표기, △외주사에 간접광고 판매 허용 및 지상파에 편성되는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경우,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 통해 판매, △방송사업자와 미디어렙에 방송광고 매출현황 보고서 제출, △방송광고 법규위반 시 방통심의위 요청에 따라 30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 등을 담고 있다.

이 같은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들은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 미방위 이인용 수석전문위원은 “(간접광고와 협찬)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금전적 지급에 따라 광고효과가 발생한다면 동일한 규제를 받을 필요성이 있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경비제공 협찬을 간접광고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개정안은 상품 외에 상표, 회사나 서비스의 명칭이나 로고 등을 노출시키는 경우를 추가하고 있음. 이는 현재 방송광고 품목에 유형의 상품 뿐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통신서비스 등)도 포함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간접광고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의미가 있음. …(중략)…방송광고에 대하여 규정하면서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는 바, 가상광고 및 간접광고의 경우에도 자막으로 표기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_국회 미방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중

▲ 기자회견에 등장한 '입금하신대로 만들어드립니다' 피켓ⓒ미디어스

그러나 <방송법 개정안> 처리는 난관이 많다. 우선,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방통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될 때,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긴급하게 국회를 찾았을 정도였다. 방통위의 노력(!) 덕분인지, 해당 법안은 대폭 후퇴된 채, 상임위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여야가 5월 임시국회 일정을 확정한 만큼 오는 12일 혹은 28일 처리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방통위 허원제 부위원장은 “경비 협찬을 간접광고로 전환하는 문제는 거래의 불투명성을 해소해야 된다고 하는 입법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 방송 제작 현실이라든지 이런 여건을 우리가 좀 감안해서 즉각적으로 대규모의 어떤 제도개선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방통위 차원에서 간접광고나 협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단계적으로 개선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찬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고, 부정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방송사들의 수익 구조상 해악을 논할 단계는 지났다는 평가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협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협찬을 받기 위한 방송프로그램들이 제작되는 현실을 방치할 순 없단 점이다. 방통위의 역할은 여기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돈 받고 제작되는 방송 프로그램을 감시하고 개선할 의지가 방통위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저 방통위는 방송사들의 이해관계를 대리해 해소해주는 행정 기관에 그칠 것인지, 5월 국회 방송법 처리를 주목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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