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권은 극심한 교통체증이었다. 거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기자를 태운 택시기사는 “차라리 지하철 타는 게 나을 뻔했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구글이 만든 창업가 공간 ‘캠퍼스 서울’로 가는 길은 멀었다. 평소라면 택시로 십여 분이면 닿을 거리인데, 40분 넘게 걸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 시각 라디오에서는 대통령의 방문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창업허브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는 대통령 발언이 흘러 나왔다. 택시기사는 “중소기업이나 찾아갈 것이지 대기업만 찾아간다. 어제(7일)도 삼성에 가지 않았나. 아마도 문제 안 되는 곳만 찾는 것 같다”는 흔한 불만을 쏟아냈다.

서울 대치동 오토웨이타워 지하 2층에 위치한 구글캠퍼스는 아담하고 예뻤다. 건물 내부로 들어갈수록 LTE와 3G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점만 빼면 정말 훌륭했다. 입구에 있는 카페와 대형 강의실, 아기자기한 사무실, 크고 작은 미팅룸과 수다방, 워킹맘을 위한 공간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이곳에 입주한 업체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 서울 대치동 오토웨이타워 지하 2층에 있는 구글 캠퍼스 서울 (사진=미디어스)

구글의 자신감도 돋보였다. 구글캠퍼스는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달리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 이곳에 입주하는 업체는 구글과 아산나눔재단의 창원지원팀인 ‘마루180’이 함께 선정하는 방식이다. 임정민 캠퍼스 서울 총괄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와 협의는 했지만)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구글은 세계 세 번째, 아시아 최초의 캠퍼스로 서울을 선택했다. 구글에 따르면, 4월14일부터 3주 동안 ‘베타운영’을 거쳤고 이 기간 28개 국적의 천 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현재 캠퍼스 서울에는 8개 업체가 입주했는데 대표적으로 카메라 필터 애플리케이션 ‘레트리카’를 만든 벤티케익, 영어 글쓰기 도우미 서비스 ‘채팅캣’이 있다.

스타트업에게는 ‘희소식’이다. 세계 최고 IT기업의 ‘인증’과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리 그로브 구글 창업가 지원팀 총괄은 캠퍼스 런던의 스타트업들이 3년 만에 18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1억1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며 “캠퍼스 서울을 통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구글의 설명대로 모바일과 사물인터넷 등 ICT 분야의 기술혁신은 ‘2세대 제조업’을 유도할 수 있다. ICT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은 모바일OS를 사실상 독점한 구글에게 필수다. 구글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글로벌화’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직접투자’할 수도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펀딩’에 큰 도움이 된다. 모두에게 ‘이익’이다.

▲ ‘캠퍼스 서울’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이 개회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구글)

그런데 덩치가 작다. 서울 캠퍼스에는 80여개의 데스크가 있고, 8개 업체만으로 캠퍼스는 꽉 찼다. 업체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6개월로 짧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이동통신 3사, 삼성과 LG가 ICT 스타트업을 ‘흡수’하고 있고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힘든 점을 고려하면 구글의 캠퍼스 서울은 ‘작고 예쁜 그림’ 수준이다.

구글이 작은 캠퍼스를 차린 이유는 ‘한국의 기업 환경’으로 보인다. 매리 그로브 총괄 또한 ‘정부 정책의 부족한 점’을 묻는 질문에 스스럼없이 규제, 정부 지원, 진입장벽을 꼽았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에 비해 소심한 불만이다. 구글이 ICT 생태계를 선순환하려면 창원지원 규모를 키워야 한다. 구글의 투자는 대부분 ‘수수료’로 되돌아온다.

구글이 원치 않더라도 구글이 원하는 아이디어는 매일 쏟아지고 있다. 구글이 ICT 생태계를 위해서라면 스타트업에게 공간과 상담만을 제공할 게 아니라 직접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이동통신사가 챙기는 ‘불로소득’ 수수료를 개발자와 이용자에게 내놓는 게 가장 좋다. 이대로면 구글캠퍼스는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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