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이 사립학교들이 최소한의 의무를 준수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원대학교가 적립·이월금을 부당하게 운영해 등록금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실험·실습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을 입증해내며 “등록금을 반환” 판결을 이끌어 낸 하주희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수원대 학생들이 이인수 총장과 학교법인(고운학원), 최서원 이사장(이 총장 부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과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3년 이후 입학한 학생들을 제외한 원고 학생들에게 학생 1인당 30만원 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결정이었다.(▷관련기사 : 등록금 공사비에 적립한 수원대, 30만원씩 반환한다)

수원대에 대한 법원 판결은 1심이기는 하지만 등록금환원율이 100%에 미치지 못하는 사립학교들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6일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박주선·안민석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 및 국회혁신교육포럼 공동주최 <수원대 등록금 반환 판결 의미와 쟁점 분석> 토론회가 개최됐다.

▲ 6일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박주선·안민석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 및 국회혁신교육포럼 공동주최 <수원대 등록금 반환 판결 의미와 쟁점 분석> 토론회가 개최됐다ⓒ미디어스

“사립학교들, 과다한 적립·이월금 제재 실효성 갖도록 한 판결”

발제를 맡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정평)는 수원대 판결과 관련해 “교육법과 교육기본법이 정한 원칙들을 위반한 것을 불법행위의 근거로 봄으로써 그동안 실효성이 없는 제재 조치들로 실질적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과도한 적립과 이월금을 제재하기 위한 법이 없는 건 아니다. <사립학교법> 제32조의2(적립금)과 제32조의3(이월금)은 “교육부장관은 (대학의)적립금 적립여부·적립규모 및 적립기간 등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교육부장관은 이월금이 재정규모에 비하여 과다한 경우에는 이월금을 줄이기 위하여 시정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규제를 맡고 있는 교육부는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을 근거로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다보니 사립학교들은 가능한 적립금을 많이 쌓는 구조로 학교를 운영해왔다.

하주희 변호사는 “법원은 <사립학교법>에 위반해 과도한 적립금과 이월금을 운영함으로써 학생들에 대한 교육비 환원이나 실험실습 교육을 받게 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수원대는 3년 동안 907억 원의 이월금을 증가시켰고, 같은 기간 동안 아무런 사용계획도 없이 669억 원의 적립금을 적립(2013년 2월) 현재 3245억 원의 적립금을 적립했다”며 “그런데 2014년 감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고도 교육부가 행한 조치는 겨우 6명에 대한 경고가 전부”라고 비판했다. 수원대 교육여건의 열악함은 이미 KBS <추적60분> ‘내가 내는 등록금의 비밀’ 편 등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링크)

하주희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수원대 판결은 <사립학교법> 위반을 이유로 학생들에 대한 직접적인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사립대학의 적립금과 이월금에 대한 실효적 조치를 촉구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학교의 설립 운영에 책임이 있는 총장과 이사장, 학교법인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으므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주희 변호사는 또한 “이번 판결은 결국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와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면서 “학교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비용부담자이자 대학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이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 결국 소송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또 다른 발제자 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이번 판결은 학생 등록금을 운영비의 주재원으로 하는 대학의 예산이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육 여건 개선 등에 우선 편성,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그로 인해 그동안 자의적이고 부당하게 예산을 편성해 사용했던 상당 수 대학 당국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도하게 이월·적립금을 관행적으로 쌓고 있는 상당 수 대학들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자료=대학교육연구소)

현재 사립학교들의 이월·적립금 누적 현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03년 5조6548억 원에서 2013년(10년 사이) 10조4578억 원으로 87.9%나 증가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이월·적립금의 41.2%가 상위 10개 대학이 보유분이다. 1위 대학은 이화여대로 전체 이월·적립금의 8.1%(10조4578억 원 중)를 차지했으며, 연세대(6917억 원), 홍익대(6687억 원), 수원대(4581억 원)의 순이다. 반면, 교육여건의 지표가 되는 장학금과 실헙실습비, 기계기구매입비, 도서구입비 등은 대체로 제자리이거나 후퇴했다. 실효성을 높이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 (자료=대학교육연구소)

“30만원 위자료 지급 판결은 아쉽지만…대학 부당 운영에 경종 울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또한 수원대 판결이 아쉽지만 유의미하다는 데에 입장을 같이 했다. 반값등록금운동본부 안진걸 공동집행위원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게 되겠냐’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 참여한 수원대생들과 승소 판결을 이끌어준 민변 변호사님께 감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안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애초 불법·부당했던 기성회비 환불 판결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등록금은 <고등교육법> 등 관계법령에 의한 근거가 명확하고 합법적인 징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등록금의 일부일지라도 피해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상 최초의 판결로 대학의 부당 운영에 경종을 울리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안진걸 공동집행위원장은 ‘위자료 학년 당 30만원’이라는 판결에 대해서는 “금액 산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비환원율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 전부를 인정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면서 “100%를 교육에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머지를 엉뚱한 데에 썼다는 얘기”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수원대 문제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들 또한 이인수 총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수원대 교수협의회 배재흠 대표 또한 “교육비로 70%만 썼다면 나머지 30%는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그렇지만 그나마도 법원에서 이겼기 때문에 나름 의미 있는 판결이긴 하다”고 평가했다. 배 대표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립학교가 징계권, 임용권, 예산심의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회에 개선을 요청했다. 수원대의 경우, 이사장이 이인수 총장의 배우자(최서원)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견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학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대학생단체 ‘대학고발자’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혜진 팀장(숭실대 학생)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은 대학에서 오로지 공부만 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동국대와 감신대에서는 비리사학 등 학교 여러 문제들로 인해 종탑에 올라가 투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4일 김리교신학대 총여학생회 이은재 회장은 ‘교직원 임용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교내 종탑 농성 중이다. 강 팀장은 “학생들은 ‘호구’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고 개탄했다.

“우리들을 화나게 하는 부분은 대학이 등록금을 받는데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들어가더라도 학교는 ‘돈이 없다’고만 이야기를 한다. 등록금을 내는 너희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양보만 요구한다. 인문계열이건 등록금을 더 많이 내는 공대 및 예술계열 모든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어학이나 정치외교, 국문학과는 대학에서 투자를 안 한다. 오히려 학교 취업률 까먹는 존재로 취급한다. 공대나 예술계열 학생들은 수원대와 마찬가지로 실험실 기구가 노후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실습을 한다. 분명히 ‘실험실습비’라고 돈을 더 받아 가는데 투자는 하지 않는다. 돈을 내는 학생은 있지만 투자, 아웃풋이 전혀 없으니 학생들은 돈을 내는 ‘호구’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_강혜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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