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매니 파퀴아오의 경기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실 경기를 보고 나서 화가 치밀어 오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메이웨더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싸웠고, 파퀴아오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싸우지 않은 것.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와 싸우기 전 47차례를 싸워 모두 이기는 동안 몸이 기억하는 이기는 복싱을 구사한 것인 반면, 파퀴아오는 그동안 8개 체급에서 세계챔피언 타이틀벨트를 두르게 해준 이기는 복싱을 펼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물론 경기 후 파퀴아오 측에서 어깨 부상 때문이었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일 뿐이다.

▲ 메이웨더가 3일(한국시간)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열린 파퀴아오와의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왼 주먹을 뻗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두 복서의 맞대결, 그래서 ‘세기의 대결’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던 경기가 ‘세기의 졸전’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또한 그런 ‘세기의 졸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는 2억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대전료를 6대 4 비율로 사이좋게 나눠가졌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선수는 복싱 역사상 최악의 ‘먹튀(먹고 튄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이번 대결이 거대한 시나리오에 따른 ‘짜고 쳤던 고스톱’이라는 말들도 나오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연말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와의 맞대결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파퀴아오가 이에 화답하고 미극프로농구(NBA) 경기장에서 우연히 조우하고,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이후 양측이 빠른 협상으로 대전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 파퀴아오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어깨부상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날짜에 경기를 치르고 지는 과정 모두 하나의 거대한 각본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개연성 없는 말도 아니게 들린다. 유능한 프로모터와 ‘세기의 복서’로 불리는 걸출한 복서 두 명만 있다면 개연성이 충분한 일이다.

사실 지난 2009년에 처음 이야기가 나온 이래 두 선수가 도핑 테스트 문제 제기에 따른 고소, 개런티 배분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해 지난 6년여 간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최근 6개월의 상황은 그야말로 신기할 정도로 ‘일사천리’였다.

▲ 3일(한국시간)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열린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 (AP연합뉴스)
실제로 SBS에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를 중계한 변정일 해설위원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두 선수가 NBA 농구 경기장에서 조우한 부분에 대해 ‘과연 우연일까’라며 기획된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이자 현 한국권투위원회장인 홍수환 회장은 지난 4일 CBS의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 좀 더 무게감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예를 들어서 홍수환 선수하고 염동균 선수가 라이벌전을 한다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시합 전에 보통 안 만나거든요. 조인식 하는 날 만나서 이렇게 시합을 하고 그러는데, 이 선수들은 우연치 않게 농구장에서 같이 농구시합을 보다가 만나게 됐다는 것이 좀 살아 있는 긴장감을 좀... 친해지게 하지 않았나,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시합이 이루어지기 전의 두 선수라면 사실 서로 거의 원수간이었거든요. 6년 동안 하다가 말다가 되다가 말다가 이랬는데.”라며 “시합 자체도 굉장히 양 선수가 신경질적으로 해야 되고 이래야 되는데, 너무 신사답고 웃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볼 때 그런 면에서 이게 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그런 몸값을 다 못하는 그런 시합이 아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박재홍 진행자가 ‘속된 말로 짜고 친 경기였다,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짜고 할 수야 없겠지만”이라면서 말을 아끼면서도 “두 선수가 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돈, 정말... 프로복서라는 것은 사실 뭐라고 할까요. 몸값이죠. 2670억에 달하는 그러한 몸값을 해야 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거죠.”라는 말로 두 선수가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어쨌든 실제로 경기 내용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최악이었고 판정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이긴 메이웨더는 연일 세계 복싱 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고, 파퀴아오는 엄연한 '공식적 패자'다.

▲ 메이웨더(좌)와 파퀴아오(우)가 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AP=연합)
하지만 욕먹는데 익숙한 메이웨더에게 지금의 비난과 조롱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고, 파퀴아오 역시 “내가 이겼다. 메이웨더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적어도 필리핀 국민들에게는 ‘패자’가 아닌 ‘사실상의 승자’가 되어 있다. 머니와 팩맨, 그 누구도 상처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챙긴 형국이다.

만약 유능하면서 영향력까지 강력한 프로모터 한 명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측 매니지먼트사에 ‘세기의 대결’ 극비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그 시나리오(파퀴아오가 악천후에 따른 필리핀행 항공편 결항으로 우연히 농구장을 찾았다가 메이웨더와 조우하는 이벤트를 포함한)에 의해 움직였다면 누군가 그 사실을 알고 발설하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난 약 6개월 동안 진행된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은 충분히 제기가 가능한 의혹이다.

만약 두 선수가 벌인 맞대결에 대해 ‘세기의 대결을 가장한 세기의 먹튀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머니와 팩맨은 진심으로 억울할까? 물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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