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이 피고(MBC)의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방송 PD 및 기자 등에 대한 제작자율권 침해와 부당한 인사조치 등으로 인하여 방송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이는 원고들(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취재환경 등 근로조건의 저하로 이어졌는바, 원고들로서는 원고들의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정방송의 실현을 위하여 이 사건 파업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29일, 서울고등법원 제2민사부(부장판사 김대웅)는 MBC노조가 MBC에 제기한 2012년 170일 파업 해고 등 징계무효 확인소송에서 다시 한 번 MBC노조가 ‘승소’했다고 밝혔다.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파업 목적의 정당성 △파업 목적이 적법한 쟁의행위에 속하는지 여부 △파업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 △해고 등 징계 재량 남용 등 모든 부분에서 MBC노조의 ‘공정방송 파업’ 정당성이 재확인됐다.

◇ ‘김재철 퇴진’은 ‘공정방송 실현’ 위한 하나의 수단

재판부는 “MBC노조가 이 사건 파업에 이른 주된 목적은 김재철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2012년 MBC노조의 170일 파업의 핵심 목적이었던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 가운데 후자가 주된 목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지난달 29일, MBC노조가 MBC에 제기한 2012년 170일 파업 해고 및 징계무효 확인소송 2심에서 승소한 후 열린 약식 기자회견에서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재판부는 불공정 보도 사태가 재발할 경우 자신의 ‘퇴진’까지 약속했던 김재철 사장이 사내 공정방송 보장 장치인 공정방송협의회(이하 공방협)를 열어달라는 MBC노조의 요구를 재차 묵살, 거부했기 때문에 노사 신뢰관계가 상실됐고, 결국 MBC노조가 파업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MBC가 2011년 이후 안건이 공방협 안건에 속하지 않는다거나 MBC노조의 파업 등을 이유로 MBC노조의 공방협 정례회의 및 임시회의 개최요구를 거부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정례회의 및 임시회의가 각각 ‘노사합의’ 혹은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MBC가 노조의 공방협 소집 요청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2011년 11월 3일 개최된 공방협에서 MBC노조가 불공정 보도를 이유로 공방협 운영규정 제10조에 따른 보직변경을 요구하자 김재철 사장은 추후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라는 정도로 강력하게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MBC노조는이 약속을 믿고 보직변경 요구를 관철시키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이후 한미 FTA 시위보도 등과 같은 불공정 보도 문제 등의 분쟁이 재발됐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이 참석하는 공방협 개최 요구를 한 것은 부당한 요구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 아래서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의 퇴임을 요구한 것은 김재철 사장이 불공정 보도에 관한 노조의 요구와 방송편성과 관련된 사내갈등 등의 처리에 관해 MBC노조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노사 신뢰관계가 상실돼, 김재철 사장 하에서는 MBC 구성원들의 방송 공정성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한 파업 기간 중 MBC노조가 <제대로 뉴스데스크>, <파워업 PD수첩> 등을 제작, 배포한 것을 두고도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이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는 데 실패하고 특정 가치에 부합하는 내용의 방송만 한 데 대한 반성이자, 방송 공정성을 담보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공정방송=노사 양측의 의무… MBC, ‘방송 노동자 근로조건’ 악화시켜

재판부는 “<방송법> 등에서 방송사업자에게 부여된 방송의 자유는 피고(MBC)뿐만 아니라 피고 구성원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라며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피고(MBC) 단체협약에 의해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달 29일 해고 및 징계무효 확인소송 선고 후, 박성제 기자가 승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재판부는 “방송의 제작·편성·보도 등 구체적인 업무수행 과정에 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실제 근로환경 내지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쟁의행위에 나아가는 것은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MBC 경영진이 △파업 직전까지 방송 공정성 보장을 위해 MBC 구성원들에게 부여된 거의 유일한 수단인 공방협 개최를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거부한 점 △<PD수첩> 등 구성원들을 비제작부서로 보낸 인사를 했다가 법원 가처분 결정을 받고 나서야 원직 복직시키는 등 스스로 인사권을 남용해 노사 갈등을 야기한 점 △2012년 1월 MBC기자회, 영상기자회 등이 MBC 뉴스 프로그램 개선안 및 인사에 반발했음에도 MBC노조의 문제제기에 대해 협의하거나 시정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MBC는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 단체협약에 의해 인정된 공정방송 의무를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 할 것이므로, 원고들을 비롯한 피고의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며 “이 사건 파업은 그 목적에 있어 정당하다”고 밝혔다.

◇ 시기·절차·수단·방법의 일부 미비점 존재하나 ‘파업 정당성’ 허물지 못해

재판부는 파업의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도 MBC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MBC노조가 취임 당시부터 공정방송 보장을 요구했음에도 김재철 사장이 공방협 개최 및 인사 문책 등 노조의 요구를 거듭 거부한 점 △MBC노조가 2011년 12월부터 불공정 보도 문제를 시정하지 않을 시 파업하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밝힌 점 △MBC노조 가 찬반투표를 통해 노조원 다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하고 이를 통보한 점 △MBC가 MBC노조와의 교섭 도중 일방적으로 기존 단협 해지를 통보한 데 이어 새 단협 체결 이후에도 공정방송 보장 의무 이행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은 점 등을 두루 살펴봤을 때 “파업 개시의 시기나 절차와 관련해 관련 법규에 정한 요건에 다소 미비된 점이 있더라도 이로 인해 파업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까지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MBC노조가 파업 기간 MBC 본사 1층 로비에서 집회를 하고 현수막을 게시해 1층 정문을 폐쇄하고 일부 노조원들이 5층(보도국), 10층(사장실)에서 농성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집회, 농성이 파업 기간에 비춰볼 때 비교적 단기간에 그쳤고, MBC노조가 직장을 전면적·배타적으로 점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방송 차질이 있었으나 프로그램 ‘송출’ 자체가 중단되지는 않은 점 △선거방송, 올림픽방송에 필요한 최소 인력을 제공한 점 △법원 가처분 결정 이후에는 MBC 본사 건물 외부에서 집회를 개최한 점 △파업 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볼 만한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1층 로비 벽과 기둥에 구호 쓰는 행위 외에는 이렇다 할 손괴행위가 없었던 점 △일부 노조원들이 보도본부장 귀가를 방해하거나 파업 미참가자를 협박하는 듯한 언행 사실이 있지만 파업 자체의 정당성에 영향을 줄 정도의 행위는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이 사건 파업은 수단 및 방법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 ‘파업 주도 및 참가’로 인한 징계 “모두 무효”

MBC는 MBC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2012년 1월 30일 이후 수차례의 인사위원회를 열어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박성호 전 MBC기자회장, 박성제 기자, 최승호 PD 등 6명의 해고를 비롯해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PD 및 기자 등에 대한 제작자율권 침해와 부당한 인사조치 등으로 인해 방송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이는 근로조건의 저하로 이어져 MBC노조로서는 공정방송의 실현을 위하여 이 사건 파업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며 “언론 종사자로서 원고들의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하여 행한 것으로서 목적이 정당하고 나아가 수단과 방법 또한 상당하여 적법한 쟁의행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파업을 주도 또는 이에 참가하였음을 이유로 한 이 사건 징계처분은 징계사유가 없어 무효하다”면서 “설령 징계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원고들이 다년간 피고에 소속되어 성실하게 근무해 온 점, 파업기간 중에도 총선 개표방송 등 필요 최소한의 방송업무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근무를 한 점, 기타 이 사건 파업의 동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보면 이 사건 징계처분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있어 역시 무효하다”고 말했다.

▲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마당에서 <해고자 전원 복직! 공영방송 MBC 정상화의 시작입니다> 행사가 열렸다. 행사 직후 최승호 PD와 조능희 현 노조위원장이 밝은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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