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연 남성의 연기를 보조하는 조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여성 중심의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데다가, 티켓파워에 있어서도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많아서 많은,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은 여성 투톱이라는 전략을 선택한다. 여성 캐릭터가 뒷자리에 머무른다는 기존의 관성을 거부한 채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운 선택이다.

<차이나타운>에서 엄마(김혜수 분)가 지배하는 세상은 돈을 벌어올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세상이다. 지하철에서 앵벌이를 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아이라 해도 주저 없이 길바닥에 버리는 것이 엄마가 지배하는 차이나타운의 생태계다. 만일 돈을 갚아야 할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할 때에는 채무자의 장기를 끄집어내서라도 돈을 받는 무자비한 채권자가 엄마이다.

엄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의리나 가족애와 같은 인간적인 윤리는 통하지 않는다. 돈이라는 맘몬이 최우선 가치가 된다. 만일 채무자나 엄마의 자식들이 밥값을 못하면 그는 용도 폐기될 대상이 된다. 그리고 각막이나 간과 같은 장기를 적출해서 돈으로 바꾸고 만다.

이런 엄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라난 일영(김고은 분) 역시 인간적인 온정은 온데간데없이 척박하기만 하다. 채무자의 입에 박카스 병을 넣고 주먹을 날리는 잔인함이 일영의 일상을 지배한다. 이런 삭막한 삶을 살아가던 일영은 악성채무자의 아들 석현(박보검 분)을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석현의 아버지 빚을 받기 위해 석현과 만나기 시작하지만, 석현은 다른 채무자와는 어딘가 다르다.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 일영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피해야 할 상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영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예의 바르게 처신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한다.

일영은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채무자 석현과의 만남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해외로 도망간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빚을 어떻게든 갚으려고 애쓰는 석현의 모습에서 일영은 가족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다. 일영은 그 누구도 믿지 않던 불신의 차이나타운에서 살아왔지만, 석현에게 어깨를 살포시 기댈 만큼 의지하기도 하며, 석현을 의식한 듯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한다.

일영의 이런 모습은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언급한 ‘서부영화의 공식’을 변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저 에버트는 서부영화에서 잘 나가는 총잡이가 어느 날 홀연히 총을 놓는 건 총잡이의 마음을 변화하게 만들어놓는 이성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부영화 속 총잡이가 한 여성을 만남으로 마음을 돌리고 총을 놓게 만든 것처럼, <차이나타운>에서 일영은 석현이라는 착한 남자를 만남으로 가족애를 깨닫고 인간미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심지어는 석현이라는 타자로 말미암아 일영은 자신이 알던 가족과 맞서기까지 해야 한다. 석현은 엄마와 일영이라는 가족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차이나타운>에서 낯선 타자 석현이 일영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엄마와 맞서게끔 만든다는 플롯은 로저 에버트의 서부영화 공식과 일정 부분 맞물린다. <차이나타운>에서 변주된 서부영화의 공식을 읽을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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