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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노동절, 언론 노동자들]20년차 케이블 기사 “세상 혼자 살 게 아니라면, 노조 하자”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5.01 09:20

개통경력 20년 케이블기사 김영수씨의 이력은 평범했다. 어릴 적 넉넉지 않은 형편에 몇 차례 학교를 옮겼고, 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다녔다. 군대는 통신병으로 다녀왔는데 전봇대를 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제대한 뒤 일 년 정도 여기저기 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배운 게 케이블’라고 결국 케이블TV가 만들어진 직후인 1996년 서울북부케이블TV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친구와 함께 이력서를 냈다. 보안업체와 서울북부케이블이었다. 두 곳 모두 합격했는데 고민하던 차에 TV업계가 다른 일에 비해 좀 더 있어 보였다. 내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이쪽이 왠지 멋있어 보였고, 대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출근하니까 니빠(니퍼) 하나 주면서 전봇대를 올라가라고 했다. 심지어 사다리도 안 줬다. 군대 통신병 경험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일이 생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군대에서 한국통신 노동자들에게 일을 배웠고, 직장에서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직접 몸으로 가르쳐주는 고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수씨는 “‘이곳을 만지면 전기가 온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며 “그런데 그만큼 안전은 뒷전이었다. 그때는 다치는 사람이 지금보다 많았다. 전봇대를 잘 타는 게 일을 잘 하는 척도였다”고 전했다.

“한 번은 정릉에 있는 한 횡단보도에서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오토바이 핸들을 비틀었다. 컨버터랑 공구가 쏟아졌고 몸에서는 피가 났다. 몸이 너무 아팠지만 일단 컨버터를 다 챙겨 근처 인도에 누웠다. 4명이 성북구 전체를 담당했기 때문에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약국이 있길래 거기서 소독약을 사서 몸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고객 댁에 갔다. 일한 뒤 조퇴했다.”

고객 집에 방문하고, 근처 전봇대에 올라 케이블을 끌어와, 셋톱박스를 설치하는 일은 모든 케이블 업체가 똑같았다. 특히 케이블TV가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고, 지역의 작은 유선방송이 인수·합병되면서 이직이 잦아졌다고 한다. 김영수씨도 하나로통신, 티브로드 쪽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어딜 가나 ‘비용’(월급)은 비슷했지만 관리자와의 갈등 때문에 옮겼다”고 말했다.

   
▲ 4월30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만난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김영수 지부장 (사진=미디어스)

“마지막에 케이블 일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7~8년 전이다. 나는 ‘갈굼’을 싫어했고 그래서 팀장과 싸웠다.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일을 그만두고 전남에 내려가 세콤 일을 1년 정도 했다. 지역에 내려오니 힘이 들었다. 북부케이블에서 같이 일했던 분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때가 바로 사모펀드들이 씨앤앰을 사들이려고 물밑에서 움직이던 때다.”

결국 케이블 업계로 돌아왔지만 “휴가라고 해봤자 1년에 2박3일뿐인 시절”은 십년이 지나도 계속됐다고 한다. 여기에 ‘해피콜’과 원청의 영업 압박까지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했다. 씨앤앰 하청업체 직원이 된 김영수씨는 “원청에서 ‘맞출 수 없는 지표’를 들이밀었다”며 “원청 관리자들도, 협력사 사장들도 불가능한 목표라는 걸 알았지만 강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표를 못 맞추면 급여, 진급, 삶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시적인 퍼포먼스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4~5년을 주구장창 압박했다. 100개라면 50명이 2개씩 하면 되는데 지표는 자꾸 올라갔고 누적됐다. 고객에게 사기를 쳐야 했고, 가족, 친척, 내 이름으로 허위영업(‘자뻑’)을 해야 했다.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원청의 압박과 하청의 중간착취를 못 버티는 단계가 됐다.”

김영수씨가 속한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가 2013년 설립부터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만들고 ‘건바이’(건당수수료 개인사업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에 집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원청은 영업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며 “과거처럼 영업이 삶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지만 ‘여파’는 있다”고 했다.

사실 한 지역에서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케이블 판에서 노동조합은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원청은 조합원이 적거나 없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줘 노조를 고사시킬 수 있다. 노조 설립 첫해, 깜짝 놀란 원청과 하청이 임금 인상과 고용승계를 약속해놓고 몇 개월 만에 약속을 뒤집고 임금 20% 삭감안과 함께 조합원을 ‘표적해고’ 한 것은 사실상 노조 고사 작전이었다.

“무법천지에서 비밀리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원청도 하청도 충격에 빠졌다. 원청에 노조가 있는 씨앤앰은 충격을 피하기 위해 초기에는 하도급 문제도 개선하려 했고, 정규직화도 유도했다. 그 비용을 하청에 내려줬다. 그런데 2014년 갑자기 업체가 원청 탓을 하며 20%를 삭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업체 변경 과정에서 갑자기 ‘선별적 고용승계’ 이야기가 나왔다.”

   
▲ (사진=미디어스)

2014년 6월부터 석 달 동안 총 109명이 해고됐다. 해고자들은 노숙농성에 돌입했고 노동조합은 장기투쟁을 시작했다. 12월31일에야 일단락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다. 원청 씨앤앰, 고용노동부, 미래창조과학부를 찾아가기도 했고 최대투자자인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 급기야 고공농성과 단식농성까지 이어졌다.

“사실 자기이익만 생각한다면 싸움은 이미 끝나야 했다. 그런데 평소 동료 때문에 휴가 못 쓰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동료애가 있었고, 이게 동지애가 된 것 같다. ‘내가 쉬면 옆사람 힘들까봐’ 하는 마음이 ‘내가 빠지면 옆사람이 더 힘들다’는 마음이 된 것 같다. ‘이거 해서 뭐가 남아요?’ 묻는 조합원도 있었지만 노숙에 점거에 단식에 고공농성까지 이런 게 계기가 됐다.”

50일 동안 이어진 서울신문 광고판 고공농성도 그랬다. 김영수씨는 “(임정균, 강성덕 두 사람이) 스스로 무엇인가 해야겠다며 선택한 것이었다”며 “언론을 통해 우리 문제를 알려내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공농성으로 지지부진하던 교섭은 풀리기 시작했고, 지쳐 있던 조합원들이 다시 모였고, 기자들도 다시 붙었다.

“쉽지 않았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땅바닥의 상황도, 저 하늘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다. 정균이는 위에서 조합원 수를 셌고 (수가 줄어들까봐) 걱정했다. 나는 ‘속상해도 참아라. 일부러 많이 부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아래 있는 사람도 위에 있는 사람도 잘 버텼다. 정말 열심히….”

노동조합의 질긴 싸움, 국회와 사회운동단체의 지원,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파업으로 원청 씨앤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109명 해고자 문제가 해결됐다. 노동조합 요구도 대부분 관철됐다. 김영수씨는 “막상 손에 쥔 것이 적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 조합원도 있지만 우리는 더 성숙해졌고 한편으로 더 순수해졌다. 1년 동안 싸웠고, 우리는 이겼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김영수씨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싸워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처음엔 지표 구조를 바꾸겠다고 시작했지만, 사실 노동조합이 뭔지 몰랐다. 나밖에 몰랐고 내 시각이 전부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몰랐던 것을 배우고, 넓게 볼 수 있게 됐다. 씨앤앰 전체도 볼 줄 알고 사회적인 문제도 고민한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정치 이야기를 하며 욕으로 끝났지만 지금은 행동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느낀 부당함을 알리고 싶어 한다. ‘당한 사람은 나인데 왜 참아야 하나’ 생각한다. 그럼 노동조합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마치 결혼처럼 해도 바보, 안 해도 바보다. 그런데 세상을 혼자 살 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노조를 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권한다. 노조하자!”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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