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앓아 누웠다. 귀국 직후 건강검진 결과 위경련과 인두염 등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향후 1~2일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건강 상태의 악화로 28일 예정됐던 국무회의도 주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하던 중에도 링거를 맞으며 일정을 강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반복해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강희용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국가원수인 박근혜 대통령의 신변 정보가 이번처럼 낱낱이 공개된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건강상태 등 신변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 경호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위, 외국인 투자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그렇기에 가급적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 관례이며, 이러한 절제는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린 뒤 조윤선 정무수석 등 환영나온 인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러한 반응은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의심할 필요까진 없겠으나 굳이 청와대가 이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는 27일 기사에서 “청와대가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실시간으로 브리핑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도 건강 문제가 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이를 브리핑 등을 통해 공개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와병’을 실시간 전달되는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4·29 재보궐 선거를 이틀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여야 모두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짚기도 했다.

사실 여부야 어쨌든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밝힌 것이 여러 현안을 의식한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건전한 추측은 위에서 지적했듯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을 언론과 야권 등이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양해’를 구한 것으로써 이 경우 1~2일 간의 안정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을 밝히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 이상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 문제를 정략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 경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이상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명확해진다. 우선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독대한 자리에서 이완구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말을 다수 언론은 대통령이 귀국하는 27일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위경련과 인두염으로 신음하게 돼 이완구 총리의 사표 수리도 자연히 미뤄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간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보도에 의하면 이완구 총리의 사표 수리는 빨라야 28일~29일 새에나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4월 29일이 재보궐선거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이완구 총리의 사표 수리를 최대한 늦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져볼만 한 상황이었다.

청와대가 이완구 총리의 사표 수리를 최대한 늦추려 했다면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완구 총리가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신세라는 것이다. 이완구 총리는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부터 먼저 수사를 받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총리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검찰조사는 사퇴 이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일단 경남기업 핵심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에 대한 수사가 이번 주 내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경남기업 핵심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끝낸다는 것은 성완종 전 회장 등이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정치자금 및 뇌물 등의 규모와 상세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것으로서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금품 메모’의 실세 8인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 사퇴의사를 밝힌 이완구 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발코니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성완종 전 회장이 사망한 상태에서 유정복 인천시장이나 서병수 부산시장,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및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진행되지 못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검찰은 구체적인 정황이 어느 정도 드러난 이완구 총리와 중간에서 돈을 전달한 사람이 특정된 홍준표 경남지사부터 수사할 수밖에 없는데, 앞서 언급했듯 이완구 총리의 경우 법무부 장관을 지휘하는 현직에 있는 상태에서는 소환조사 등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검찰 입장에서는 이완구 총리가 공식적으로 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딴청을 피우며 대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완구 총리의 총리직 유지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수사는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재보궐선거일인 29일 전에 이완구 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는 ‘그림’이 그려지게 되면 이것이 선거 판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후 이완구 총리의 사의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정치권 일각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재가하면 되는 문제를 위경련이나 인두염을 핑계로 차일 피일 미루려 한다는 인상을 주면 오히려 좋지 않은 모양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을법 하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완구 총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찌됐든 이완구 총리가 재보궐선거 전에 수사를 받게 되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권력의 의지가 반영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이완구 총리가 칩거하는 동안 정신적 피로가 누적됐다는 등의 문제로 퇴임 후 건강진단을 받은 후 입원 치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는데 이는 검찰 조사를 대비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재보궐선거 이전에 이완구 총리가 검찰조사에 응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가능성 역시 예상해볼 수 있다. 4·29 재보궐선거 판세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분주히 움직여 이완구 총리 거취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기 때문이다.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를 증언한 운전기사를 회유·협박 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총리가 재보궐선거 전에 검찰조사를 받고 나름의 ‘당당한’ 모습을 연출한다면 지지층의 입장에서는 새누리당 소속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또 하나 얻게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완구 총리가 검찰수사를 어느 시점에 받게 되든 검찰-청와대-새누리당이 유기적으로 움직인 결과가 되리라는 점은 야권 일반에 있어서는 비관적이다. 어찌됐든 여권은 4·29 재보궐선거와 연관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고 여기에 야권의 정치적 행보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그야말로 ‘시한폭탄’처럼 던져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여권의 의도대로 폭발력을 잃는 수순으로 가고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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