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상파도 ‘선물’을 받았다.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광고를 대폭 풀었다. 종편을 보유 매체들이 지면사유화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지상파 광고총량제가 도입됐다. 시청권 훼손 우려로 시청자단체들이 일제히 반대했던 간접·가상광고도 사실상 전면 완화 됐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정부소관으로 법제처와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법적 효력을 갖는다. 큰 이변이 없다면, 올해 한에 시행된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오락·스포츠보도의 가상광고 허용 △간접광고 허용시간 확대 △협찬고지 금지 완화 및 종류 확대 등을 의결했다. 끝은 아니다. 병원 및 전문의약품 등 현재 금지되고 있는 방송 광고 품목도 곧 규제 완화 방안이 추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프로야구 중계 중 가상광고. 두산 경기 중. 가상 광고로 삼성의 디지털TV 화면이 나감.

상품의 특장점 시현 허용하는 간접광고, 방통심의위가 막을 수 있을까?

에둘러 갈 것 없다. 어쨌든 시청자 불편은 불가피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광고가 많아서 TV 보는 게 불편하다는 응답은 75.4%)에 달한다. 시청자의 61.9%가 광고가 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광고가 있기에 저가에 양질의 프로그램을 볼 순 있다. 딜레마다. 이 딜레마에서 정부는 화끈하게 한 쪽의 손을 들었다.

방통위는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한들 “방송 광고시장의 변동을 우려해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총광고시간을 설정했다”며 “인기 있는 방송프로그램 전후 쏠림 하지 않도록 지상파의 경우 방송프로그램 시간 중 최대 15%로 한정했다”고 밝혔다. 시간당 지상파 광고는 현행 10분에서 9분으로 오히려 감소한다는 얘기다. 또한 유료방송 역시 10분에서 10분12초로 약 12초만 증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도입한들 MBC <무한도전>이라고 하더라도 9분(60분 방송 기준)밖에 광고를 붙이지 못한다는 얘기다.

단순 수치상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단 말처럼, 본질은 다른데 있다. 함께 풀린 간접·가상·협찬고지 규제완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도 광고총량제가 아닌 이 부분을 주되게 비판하고 있다.

▲ 프로야구 중계 중 가상광고. SK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대 피우고 싶으시죠?'라는 희화화시킨 가상광고가 나가 논란이 됨.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 ‘간접광고’와 ‘가상광고’는 TV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방통위는 ‘간접광고’의 기준을 “방송프로그램 흐름 및 시청흐름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과 “‘허위’와 ‘과장’이 아니라면”으로 전제했다. 시청 흐름 방해가 임의적 규정이라고 할 때, 쉽게 말해 허위 과장만 아니면 된다는 얘기다. 그렇잖아도 지난 2011년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간접광고’가 이미 시청 흐름을 방해하고 있단 지적이 높다. 삼성 제품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건 지금도 가능하다.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뜬금없이 삼성 노트북을 들고 나온다. .(▷관련기사 : 그날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왜 노트북을 들고 있었던 걸까) 여기에 이제 특장점 시현이 허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재석은 아마 삼성 노트북 기능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뜬금없음을 넘어 노골적인 선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무산될 수도 있다. 방통위는 논란을 의식해 <방송법 시행령>이 아닌 방통심의위 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통해 적용을 확정짓겠단 입장이다. 하지만 흐름은 분명하다. 방통위 관계자는 ‘드라마 및 예능프로그램에서 제품의 특장점 시현 허용’에 대해 “현재 방송심의 기준에서도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며 “이번은 프로그램 흐름에 저해가 되지 않는다면 특수기능도 시현이 허용되도록 할 예정”이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말했다. 방통심의위가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이 홈쇼핑화된다”며 반대한들 지켜낼 수 있을지 미심쩍다. 방통심의위는 ‘특장점 시현’이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방통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지켜낼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사진=연합뉴스)

보도에 들어가는 광고, 가늠조차 안 되는 ‘가상광고’의 폐해

‘가상광고’ 확대는 더 심각하다. <방송법 시행령>의 최대 폐해가 여기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지금까지 가상광고는 운동경기 중계 프로그램에만 허용됐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오락과 스포츠보도까지 범위가 확대된다. 운동경기 중계에서도 기존에는 선수와 심판, 관중 위에 가상광고를 노출하는 것은 금지돼 왔으나 앞으로는 “경기흐름 및 시청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경우”로 허용이 대폭 확대된다. 방통위는 다만 “시청자들이 광고와 정보를 혼동할 우려가 있다”며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가상광고만 불허했다.

‘스포츠 보도’에 대한 허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상파3사의 스포츠 보도는 메인뉴스 뒤에 바로 붙어 방영된다. 방통위는 ‘스포츠 보도’라고 강조했으나, <방송법> 상 방송프로그램 장르는 ‘보도’, ‘교양’, ‘오락’ 뿐이다. 방통위의 입장대로라면, 사실상 보도 장르에 가상광고를 허용한 셈이다. 예컨대, 이제는 은퇴한 박지성, 김연아, 박찬호 등이 스포프 관련 활동을 해 이를 보도한다면, 이 뉴스가 ‘스포츠 보도’인지 ‘보도’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결국, 어떤 형태가 됐건 뉴스에 광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방통위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스포츠 보도는 메인 뉴스 뒤에 포함돼 있는데, 그 화면에 가상광고를 허용하겠다는 의미냐”는 <미디어스>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스포츠보도이건 아니건 ‘보도’가 가지는 의미는 사회적이다. 보도와 광고의 직접적 교류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스포츠보도는 명확하게 보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상광고를 가능하도록 한 것은 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등한시한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민언련 또한 “스포츠보도 등 ‘사실’을 다루는 프로그램으로까지 가상광고의 장르를 확대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물론, 가상광고도 시간제한은 있다. 지상파의 경우, 가상광고 시간이 방송프로그램의 5%(유료방송은 7%)로 제한된다. KBS <뉴스9>의 방송시간을 50분이라고 본다면 2분30초의 가상광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상광고는 일반적인 15초 광고와 문법과 기대효과가 완전히 다르다. 시간의 문제가 아닌 배치의 문제로 짧은 시간을 점유해도 언제 노출되느냐에 따라 임팩트가 훨씬 크다. 월드컵 등 스포츠 축제기간 방송뉴스의 절반 이상이 스포츠 보도로 채워질 때,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공산이 농후하다.

▲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화면 캡처

병원도 방송광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규제 완화 계속하겠다는 방통위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협찬고지’ 완화도 그대로 의결됐다. 내용을 간단하다. 현재 KT&G는 방송광고 금지된 품목인 담배를 제조·판매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협찬을 하더라도 ‘공익성 캠페인’이 아닌 이상 TV를 통한 ‘고지’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KT&G 자회사에서 생산되는 ‘홍삼’을 협찬할 경우 TV에서 고지가 가능하다. 공익성 캠페인 협찬만 고지할 수 있던게, ‘공익성 제고라는 목적의 유사성’만 가지면 고지가 가능해진다. 시민단체는 역시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마사회·KT&G 등 공익에 반하는 재화·서비스업자등의 공공기관 협찬은 경제적 파급 효과는 미미할지라도 방송윤리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었다.

하지만 방통위는 앞으로도 협찬고지 규제 완화를 계속해나가겠단 입장이다. 방통위는 “협찬고지 제도개선 추진 등 방송광고 규제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란 입장이다. 현재 진행중인 MBN미디어렙 영업일지 파문에서 드러났듯, 그렇잖아도 지금의 제작 환경은 ‘협찬의, 협찬에 의한, 협찬을 위한’ 것으로 척박해지고 있다. 모호한 규제 속에서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고 있는 형편인데, 완하하겠단 방통위의 입장은 그 언급만으로도 이 상황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관련기사 : ‘천태만상’ 방송 협찬…교통안전공단이 만드는 SBS '인기가요'?, ▷관련기사 : KBS, 삼성 돈 받아 프로그램 만들곤 “수신료로 제작됐다” 고지)

더 위험한 건 방통위가 방송광고 금지품목 역시 손보겠단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단 점이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현재 방송광고가 금지된 ‘병원’을 콕 짚어 “인터넷이나 모바일, 지하철 옥외광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며 “방송에서 풀어야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관련 부처 또한 이 같은 의견에 공감대를 가진 사안으로 조속한 시간에 개선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병원’ 및 ‘전문의약품’의 방송광고가 금지된 이유는 국민건강과 관련된 위험성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원장이 ‘타 매체도 한다’라는 식의 접근을 한 것은 그 자체로 언론에 대한 몰이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송광고 규제완화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그만큼 신중해야한다. 목소리 큰 사업자들의 이전투구가 아닌 이보다 시청자들의 권리가 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방통위는 내부에서도 지적이 나올 정도로 “방송의 공적책무가 아닌 재원확보”에만 매몰돼 논의를 진행했다.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지만, 시청자 복지 차원의 고민은 부족했다. 방통위가 규제완화를 목표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을 보일 때, TV보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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