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미 지역 단위에서는 ‘구미새로고침’이라는 풀뿌리 시민정치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않은 ‘풀뿌리 정당(로컬 파티)’을 대비한 조직이었지만, 지역 정당 또는 준-정당적 지역정치조직의 활동 보장은 여전히 요원하다. 최근 원혜영 국회의원실에서 유권자단체의 설립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낸 상태다.

조직내 역량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구미새로고침이 일단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각종 문화사업과 정보공개운동이다. 중앙에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활약중이고, 얼마 전 ‘대구경북정보공개센터’가 출범한 데서 착안해 정보공개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때로는 ‘정보 없음’조차도 선용 가능하다. 한 시민의 건의로 구미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현황과 구미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근로시간을 노동부 구미지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더니 ‘정보부존재’ 통보를 받았는데 이 사실만으로 ‘노동부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며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구미 지역 학교들의 인조잔디 운동장 유해 물질 다루었다. 지난해 가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실시한 유해 물질 조사에서 드러난 검출 수치를 입수해 공개했다.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물질이 검출된 비산초등학교가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정보공개에 응한 학교들의 인조잔디에서 검출된 납, 카드뮴 등 유해 물질이 공개된 정보에 담겨져 있다.

이 내용은 구미 시민들이 가장 많이 가입된 것으로 알려진 모 카페에도 올려놓았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로 인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조잔디를 반대하지만 크게 다른 태도를 가진 세 사람이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A: “이 자료는 의심스럽습니다. 수치를 조작할 수도 있지 않은가요. 흙 아니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입니다. 흙이 좋은데 인조잔디를 왜 까는지.”

B: “납이 검출 되었다니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름에 뜨거운 햇빛 받으면... ‘오 마이 갓’이네요. 애들 장난감에 납 성분이 검출되면 무조건 회수하지 않나요?

C: “마사토 모래라고 안전할까요. 예전에 뉴스에서 놀이터 모래 조사했더니 온갖 중금속이 기준치 초과해서 나왔다고 하던데요. 국민들이 세금 더 많이 내서 인조잔디 깔아야 안전한가요? 도대체 이 세상에 안전한 게 뭐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떤 좋은 걸해도 똑같을 듯.”

▲ 유해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구미시의 한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사진=김수민)

A씨는 조사 결과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애초에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실시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을 것이다. 실시는 했는데 공개하지 않는다면? 공개하지 않는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했더니 “수치가 조작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음모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본인이 연구원으로서 직접 현장에서 검사하지 않는 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구미 지역 사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해 기준치의 수십배를 초과해서 납이 검출된 학교들이 있다. 이들도 수치가 조작된 것인가. 일부러 낮추었는데도 그 정도인 걸까, 아니면 부풀려진 것인가. A씨가 변함없이 조작가능성을 의심한다면 전자가 되겠지만, 인조잔디가 무해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후자일 수도 있다. 의심이란 끝도 없고 갈래도 무한한 법이다. 이런 의심들이 날것으로 부딪힐 경우 토론은 길을 잃는다. A씨는 반대편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에 부딪히는 순간 무력해질 것이다.

B씨처럼 충격받을 사람이 많을지는 모르겠다. 평균적인 반응보다는 예민하다고 볼 수도 있다. B씨의 이런 예민함은 A씨의 그것과 양적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하고 있다. A씨가 유해 기준치에 미달하는 검출량에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면, B씨는 우선 자료를 믿되 유해기준치에 미달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검출된 이상 심각하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행정편의주의에 절은 어떤 공무원이 ‘기준치 미달’임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B씨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 같다.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공인된 사실은 상대가 반박하고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만큼 좋고 유리한 근거는 없다. 똑같은 정보를 두고도 A씨는 그것을 다소 외면하는 반면, B씨는 공인된 사실을 활용하고 있다. 공인된 사실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 인정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민감하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가고 있다. 이게 별 일인가 싶지만 사회 현상에 A씨처럼 대응하는 사례가 숱하기 때문에 B씨의 이런 ‘평범한 예민함’을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언뜻 B씨가 A씨보다 순진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워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천적으로 따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설령 A씨의 의구심대로 수치가 축소되는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B씨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 관해서도 비슷한 구도가 조성되었다. 한쪽은 정부나 주류 언론의 발표를 어지간하면 또는 무조건 불신하면서 고의적인 침몰설, 국정원 개입설 등 음모론에 쉽게 경도되었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근거도 부족했거니와 음모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기술과 레토릭조차 찾기 드물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음모론 게시물을 연달아 링크하는 와중에 많은 시민들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대결로 여기게 되었고 끝내 사건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거나 예전에 하던대로 진영 논리에 기대게 되었다.

반면 화물 과적, 선박 연령 완화, 평형수 부족 등 뻔히 드러나 있는 문제들에 집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원인들은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불러 일으킨 시장만능주의’로 요약된다. 이 같은 사회 풍조나 이데올로기는 정권이나 국정원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뿌리가 깊다. 그래서 더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고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 다만 그것들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사실은 백일하게 드러나 있고, 사건 직후 시장만능주의에 물과 거름을 주어온 세력들도 대놓고 규제 완화 조치들을 옹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등 호조건도 함께 주어져 있었다. 이를 활용하지 않고 음모론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음모를 새로 밝혀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C씨. 인조잔디에 비판적인 것은 A, B씨와 같지만 마사토 운동장까지 싸잡아 문제삼고 있다. 마사토는 물빠짐이 좋고 촉감이 부드러운 장점을 가져서 인조잔디의 대안으로 곧잘 거론된다. C씨는 모래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되었다고 불평하지만 마사토에서도 그랬는지는 입증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조사할 문제임은 틀림없으나, C씨의 편견은 너무나 명확하다. “도대체 이 세상에 안전한 게 뭐가 있을지 의문이다.” 마사토와 인조잔디 외에는 천연잔디라는 방안이 있는데(참고로 천연잔디는 인조잔디처럼 축구 종목 위주로 공간을 획일화한다는 점을 갖고 있어서 학교에서 인조잔디의 오롯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 어떤 좋은 걸 해도 똑같을 듯”이라는 C씨가 천연잔디를 대안으로 여기고 있을 리도 없다. 결국 이분 말대로면 운동장을 없애버리든지 그냥 살던대로 살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선택의 여지 없이 후자겠지만.

세상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무비판적이라는 지적을 들어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실을 개선할 수 없는 비판을 늘어놓고, 지적을 받을라치면 “나는 분명히 비판했다”고 알리바이를 댄다. 아둔한 나는 그것이 본디 인간이 간직한 성질인지 아닌지 통찰하기 힘들다. 다만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나를 비롯해 개선이나 변혁을 추구하는 이런저런 집단과 그 구성원들도 아직까지 자유롭지 않은 문제다. 개성을 가로막는 사회에서 자기 표현이나마 분명히 하려고 집착하는 태도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자기 표현으로 느끼는 보람이 활동 목적의 전부이거나 핵심인가? 또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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