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불법 대선 정치 자금 사건'으로 규정하며 ‘특검’을 요구했다. 다음날인 24일 보수언론들은 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드러냈다. 정권 실세들의 금품수수 정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언론이 사건을 어떻게 끌고 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사면될 당시 함께 사면된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의 특별사면에 이명박 전 대통령 측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개입한 것을 참여정부 핵심관계자가 확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이 증언이 사실일 경우 당시 친이계에서 특정인 사면을 요청했다는 것이 처음 확인되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이날 ‘성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 요청에 의해 사면이 이뤄졌다. 양 전 부시장 케이스와 똑같은 것’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자체 조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 조선일보 24일 1면 기사.

다만, <조선일보>는 해당 사실에 대해 발언한 참여정부 핵심관계자가 성완종 전 회장 사면을 요청한 사람에 대해 “문 대표도 도통 기억이 안 난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또 다른 노무현 정부 관계자는 ‘양 전 부시장뿐 아니라 강신성일, 이기택 전 의원 등 한나라당 인사 5명의 사면을 누가 요청했는지는 이미 내부적으로 조사가 됐다’고 했다”고도 썼다. 결국 이 기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참여정부의 2007년 12월 특별사면에 관여했다는 점을 밝히는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오직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인사만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 조선일보 24일 5면 기사.

<조선일보>는 5면 기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사실들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친노 ‘이명박·이상득’ 거론하자…친이 “말도 안돼”>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양측의 주장을 건조하게 전했는데 눈여겨 볼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발언이다. 정두언 의원은 그간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이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해왔고 이 주장은 야권 인사들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핵심 근거 중 하나로 활용돼왔다. <조선일보>는 이날 정두언 의원의 발언을 또 전했는데, 여기서 정두언 의원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정황상 그 당시 청와대와 인수위의 협의하에 이뤄졌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하고 있따. 여기서 주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정황상”이라는 대목이다. 결국 <조선일보>의 이 기사에서 당시 이상득, 이재오 의원 등과 함께 핵심 실세 중 하나로 꼽혔던 정두언 전 의원의 그간 주장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는 셈이다.

▲ 조선일보 24일자 사설.

이날 <조선일보>는 보도에서 위와 같이 은근슬쩍 야당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장치를 이것 저것 배치해놓고 사설에서는 노골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조선일보>는 <문 대표, ‘성완종 특사’ 직접 해명하면 될 일 왜 떠넘기나> 제하의 사설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2차 사면이 정말 이명박 당선자 인수위 요청으로 이뤄졌다면 문 대표는 누가 성 전 회장 사면을 청탁했는지, 노무현 청와대는 왜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밝힘으로써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고 정치적 혼란도 정리할 책임이 있다”면서 “그러나 문 대표는 이날 ‘사면을 담당했던 민정수석과 법무비서관, 부속실장이 밝힌 것 이상으로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 전권 사항인 특사 문제를 ‘법무부 소관’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며 남의 얘기 하듯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문재인 대표를 맹비난했다.

▲ 동아일보 24일자 사설.

문재인 대표를 비난하는 건 비단 <조선일보> 뿐은 아니다. <동아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성 회장의 1, 2차 특사 모두 자신들과 무관하고, 더구나 ‘더러운 로비’를 받지 않은 점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왜 진실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나 특검을 회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도 문 대표는 아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성 회장의 자살 당시 메모를 내세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했다. ‘남이 하면 불륜,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전형적인 이중 인식이다”라고 썼다.

보수언론들의 이러한 반응은 일단 ‘성완종 리스트’ 정국을 성완종 전 회장 특별사면 의혹 정국으로 돌려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는 검찰이 담당하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다시 정국의 흐름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4·29 재보궐선거 전까지 성완종 전 회장 사건에 대한 참여정부 책임론을 제기함으로써 소나기를 피하고 봐야 한다는 심산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일부 여권이 이러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성완종 리스트’ 사건 자체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보수언론들은 경남기업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건조하게 전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대응을 대신하고 있다.

▲ 중앙일보 24일자 사설.

이 중에서도 <중앙일보>의 태도는 각별하다. <중앙일보>는 보도에서 은근슬쩍 성완종 전 회장 특사에 대한 참여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면서도 이날 사설에서는 전날 문재인 대표의 기자회견과 이에 대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반응 등을 문제삼았다. “여야 대표가 우리 사회의 현안인 성완종 리스트와 특사 의혹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내놓는 것은 얼핏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가 의문이다”라고 쓴 것이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지금은 성완종 리스트와 특사 의혹 모두 검찰 수사를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단계다. 검찰이 독립적으로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한 뒤 그 수사 결과가 미진하고 우리 사회가 납득을 못한다면 정치권이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통해 풀면 된다”라면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여야 대표가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우긴다면 검찰이 어떻게 소신을 가지고 수사를 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거의 <중앙일보>가 아니라 ‘검찰일보’이다. 이 정국에서 검찰의 편을 드는 건 오로지 <중앙일보> 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는 <중앙일보>와는 달리 <조선일보>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희생양 하나를 확실히 정하기로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이완구 국무총리가 인척인 검찰 일반직 고위 공무원을 통해 성완종 전 회장 관련 수사를 수시로 확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 톱에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4면 기사에서 “만약 이 총리가 검찰 간부에게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강요했다면 직권 남용 혐의도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짚었다.

▲ 조선일보 24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여당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청와대 책임론’에 대한 일종의 ‘꼬리자르기’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이날 <경향신문>은 4면에 여권 내부에서 자원외교 수사에 대한 ‘기획사정’ 여부와 주체를 놓고 떠넘기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썼다. 일각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또 한쪽에서는 이완구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강행하는 ‘오버’를 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는게 핵심 내용이다. 같은 내용을 주초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한겨레> 등에서도 보도한 바 있다. 문재인 대표가 23일 기자회견에서 우병우 수석이 수사에 개입하지 말 것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조선일보>는 이 사태의 불씨가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까지 옮겨 붙는 것을 차단하면서 야당을 향한 ‘반격’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고 <중앙일보>는 청와대와 정치권에 휘둘리는 검찰의 입장을 방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비춰진다. 물론 이러한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이 결국 사건의 마지막에 같은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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