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북, 구포터, 스쾃이 보여준 자발성의 힘

올해 4월, 운 좋게도 프랑스 스쾃을 돌아볼 기회가 왔다. 목동예술인회관 점거로 잘 알려진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주 멤버들이 구성한 레버러터리39의 스쾃 탐방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스쾃을 그저 막연하게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불법적인 점거’, ‘배타적 소유권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로 생각해 왔던 내게 이번 스쾃투어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비교적 ‘평범’하게 아뜰리에를 점거한 작가들이 있는 한편으로, 산골짜기 버려진 탄광에 중세 수도원 같은 돌집들을 짓고 펑크음악을 하며 농사를 짓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도심 한가운데서 자본주의적 소비에 반대하며 음식을 비롯한 모든 생필품을 주워다 재활용하는 스쾃도 있었다. 많은 스콰터들이 에술가이자 문화기획자이면서 동시에 활동가이고 가끔은 농부면서 목수이기도 했다.

▲ 디종의 스쾃은 자주관리를 목표로 한 정치적 활동을 그 중심으로 한다. 디종 스쾃운동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레 타네리의 입구. ⓒ안태호
2008년 한국사회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면에서 웬 생뚱맞은 프랑스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명색이 문화예술 웹진의 편집장이면 의당 일년간의 문화예술 지형들을 정밀하게 판단하고 분석해낸 결과물을 내야 마땅하지 않겠나. 그러나 올해 내게 스쾃이 보여준 자유의 풍경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없었다. 스쾃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나는 다시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들여다보게 됐다고 하면 적절한 변명이 될까.

사실, 눈으로 보고, 발로 밟고, 몸으로 겪어낸 스쾃의 풍경들을 한마디로 갈무리할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스쾃에서 만났던 사진작가 실비아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인터뷰를 위한 재회의 자리에서 그의 입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발성과 용기가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 그랬다. 실비아는 스콰터들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명령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바깥에 기준을 두고 사회적 질서에 휘둘리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질서를 스스로 조직하고 실현해나갈 줄 아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실비아가 프랑스 스쾃과 스콰터들의 모습을 담아 한국에서 연 사진전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였다.

<살북>을 만났다. 이제 겨우 3호를 발간했을 뿐인 이 책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 ⓒ살북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salbook)
<살북>은 만화가들 몇몇이 의기투합해 만든 부정기 만화책이다. 대여점을 통한 킬링타임 용도의 감상이 만화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지금의 지형에서 기껏 작가들 몇이 만들어낸 만화책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겠냐 하겠지만, 의외로 이 작은 책 하나가 만화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유는 단순했다. 많은 만화가들이 시스템 탓을 하고 있을 때, 사회적 분위기에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자신들의 작업을 받아줄 매체도 출판사도 없음에 절망하고 있을 때, 이들은 스스로 움직여 자기들의 작업을 사회화시킬 방법을 마련했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통신판매 방법으로 자신들의 책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이들의 작품은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아이템들은 아니다. 이들의 만화에는 그 흔한 슈퍼영웅도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한 음모론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매끈하게 빠지지 않은 삶의 생짜모습들이 고스란히 보석처럼 박혀있다. 올해 초 <살북> 2호를 받아든 나는, 이 눈물나는 시절에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벌인다는 사실이 눈물나게 고마웠던 것 같다.

<살북>의 활동은 작은 집단이 움직여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소집단 운동의 자발성은 역사적으로 꾸준하게 그 힘을 증명해 왔다. 20세기 서양예술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었던 다다이즘 역시 처음에는 기존 문화예술에 대해 짙은 회의를 가졌던 전위적 예술인들의 소모임이었을 뿐이고, 80년대의 거대한 물결을 그려냈던 민중미술의 시작은 ‘현실과 발언’이라는 동인에서부터였다.

소집단들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의에 자신을 짜맞추지 않고 자신의 대의에 맞는 일들부터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큰 덩어리는 그 수없이 많은 당위와 대의와 소명들에도 불구하고 각종 위계와 시스템화로 인한 잔짜증과 피곤을 돋우기 십상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거대한 집단들이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모으던 시대는 조금 촌스러워졌다. 그들은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지만, 이제는 둔한 공룡처럼 절룩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조차 있다. 공룡의 시대는 갔다는 걸 인정하자. 이제 다시, 작은 집단들이 빚어내는 큰 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집단의 사례로 하나 더 들고 싶은 것이 구본주 서포터즈다. 이 모임은 애초 구본주라는 예술가의 사고사를 둘러싸고 보험회사와 대립해 싸우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구본주 소송사건은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묵직한 질문으로 우리 사회에 남았지만, ‘구포터’(구본주 서포터즈의 줄임말로, ‘구본주를 나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는 예술의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재확인되어야 하는지를 그 행보로 증명해주고 있다. 구포터에는 구본주의 유족도 함께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구본주의 유족이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장 잘 아는 이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구포터들은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더니 태안에서 벌어진 비극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태안에서 기름을 닦아내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삼성의 책임을 요구하며 법률지원단과 함께 올해 초까지 계속 삼성중공업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티벳사태가 터지자 이들은 다시 기민하게 움직였다. 티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적극 결합해 시위현장에서 퍼포먼스를 도맡기도 하고 티벳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한 전시를 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기륭전자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싸움에도 빠지지 않았다. 구본주의 작품 갑오농민전쟁은 대추분교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홀로 학교 앞마당을 지켰고, 기륭전자 농성장 앞에서는 구본주의 5주기 추모전시가 열렸다.

▲ ⓒ구포터와 함께 하는 구본주 추모 블로그 (http://blog.naver.com/chan_ta)
사실, 블로그로 운영되는 구포터의 결속력이 그렇게 단단한 것만은 아니다. 미디어에서 다뤄질 만큼 큰 규모로 움직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구본주의 예술의 맥락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역시 이 지점이다. <살북>과 마찬가지로 구포터 역시 자발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가 이들에게서도 발견된다. 프랑스 디종에서 만난 스쾃 멤버들 역시 내게 “우리들에게 삶과 정치와 예술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2008년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촛불의 물결 역시 자발성의 성과가 아녔던가. 누군가 ‘자유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들에게서 자발성이 빚어내는 자유의 풍경을 보았다.

안태호
'문학청년' 소리를 듣던 어린시절,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을 잠시 했으나 자신보다 반짝이는 재능들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소망을 접었다. 한동안 문화정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정부/지자체와 어지간히 싸웠다. 현재 컬처뉴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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