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티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끝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밤에 전해진 비보(?)에 신문들은 한 차례 혼란을 겪은 모양새다. 이완구 총리 사의를 반영한 지면과 미처 반영하지 못한 지면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보수언론들은 이완구 총리가 물러난 이후 상황에 대한 나름의 프레임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여야 모두 책임질 문제라는 게 핵심이다.

<조선일보>는 21일 1면에 이완구 총리의 사퇴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20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오른 8명이 첫 수사 대상이 되겠지만, 특정인이 특정인을 찍어서 한 것 그것만 수사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기사 역시 1면에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 같은 황 장관의 발언은 전·현 정권 때 벌어진 일 모두를 여야 가리지 않고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는 또 같은 면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박모 전 경남기업 상무를 검찰이 참고인으로 소환하기로 했다고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검찰은 경남기업의 지난 10년치 자금의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는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사면을 받는 과정에 의혹이 제기됐고,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에게도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긴 ‘로비 장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팔면봉 코너에서는 “황교안 法務, ‘성완종 수사, 메모 속 8인에 국한하지 않는다’, 추가 리스트 손에 넣었다는 뜻?”이라고 쓰기도 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가 반복 집착하는 ‘로비 장부’와 ‘리스트’는 지난주 자신들이 야당 의원 7~8명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보도한 장부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선일보>의 해당 보도에 대해 수사팀이 그러한 취지의 장부를 발견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보도를 근거로 ‘로비 장부’의 존재를 반복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 장부의 존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물론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여야 모두에 걸친 불법정치자금 사건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3면 보도에서 검찰의 수사 의지를 강조하며 검찰이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금품메모는 물론 여야와 정관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저인망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류근일 칼럼’을 통해서도 같은 맥락의 관점을 내보였다. 류근일씨는 이 칼럼에서 “그렇다고 야당은 ‘성완종 장비’에서 열외(列外)인가? 노무현 정권 때 성완종 회장을 두 번씩이나 사면해준 것과 관련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특사는 (청와대가 아니라) 법무부가 하는 것’이라고 떠넘긴 것도 이번에 선보인 언어의 서커스 가운데 단연 걸작에 속하는 것”이라면서 “지난 세월 이런저런 일로 잡혀가 사면·복권 받아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어설픈 소리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는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여의도版 ‘침묵의 카르텔’이란 칼럼을 통해서도 여야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면서 “정치권은 지금 함께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1일 사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조선일보>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 역시 이날 1면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전하며 “성 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인맥 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전반으로 사정 정국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얘기다”라고 덧붙였다. 또, <동아일보>는 3면에 전날 국회에서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회장이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이유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했고 사설에서는 “경남기업의 전신인 대아건설이 옛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경남기업 인수자로 ‘깜짝 선정’됐을 때도 의혹이 무성했다”면서 “성 회장은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 캠프에 수억 원의 자금을 건넨 혐의로 2004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합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이라는 주장이지만 대아건설이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하자마자 덩치 큰 기업을 인수한 것은 석연치 않다”고 썼다. 결국 참여정부 시기의 유착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경우도 비슷한 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결은 앞의 두 신문과 약간 달랐다. <중앙일보>는 이날 지면에서 위 두 신문과 같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경위, 충청권 대망론에 대해 다뤘는데 다소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중앙일보>의 5면 기사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부각된다. <중앙일보>는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을 다룬 이 기사에서 당시 사면 업무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전해철 의원 등이 “성완종 전 회장 사면은 자민련과 이명박 당시 당선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각 세력의 입장을 전했다.

▲ 중앙일보 21일 5면 기사.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자민련에 몸담았던 정진석 전 의원은 당시 자민련이 몰락한 상태였다는 점을 들어 성완종 전 회장 사면이 ‘자민련 몫’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성완종 전 회장이 상고를 포기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인 11월이라는 점을 들어 인수위가 가동되기 전 성완종 전 회장과 참여정부 간의 ‘딜’이 끝났을 것이라는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의 마지막 민정수석이었던 이호철 전 수석의 주장을 반론격으로 실었다. 이호철 전 수석은 당시 특별사면 명단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이 12월 사면에 포함됐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정도 인물이 포함되려면 당선인(MB)이 직접 부탁했을 것”, “성 전 회장은 양 전 부시장과 함께 인수위 요청으로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권력을 잡은 인수위가 사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비상식적인 상황”이라는 정두언 전 의원의 발언을 싣기도 했다.

▲ 중앙일보 21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여야 공방으로 쟁점법안의 처리가 어려워졌다면서 공무원연금개혁, 박상옥 대법관 청문회 등을 언급하면서 “민생과 직결된 안건들이 ‘성완종 리스트’ 블랙홀에 속절없이 빨려드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결국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를 정치권이 사실상 흔드는 결과를 만들지 말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중앙일보>의 이런 태도는 전날 지면에 김진태 검찰총장의 사진 포함 이번 사태에 대한 검찰 측 입장을 다수 포함한 기사를 배치한 것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읽혀진다.

검찰은 전날 <중앙일보> 기사에서 지난 2월부터 진행한 자원외교 관련 기업들에 대한 수사가 이완구 총리의 ‘담화문’으로 이전 정권을 겨냥한 기획 수사가 돼버리는 바람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은 또 <조선일보>의 ‘로비 장부’ 보도에도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위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일보>는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으로 이 문제를 확대하기 위한 근거들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고 <중앙일보>는 이와는 달리 검찰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수사결과를 낼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두 신문 중 어느 쪽이 향후 정국을 주도하는 묘수를 보여주느냐도 관심거리지만 언론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소한 이날 만큼은 <조선일보>보다 <중앙일보>의 태도가 언론의 본령에 조금이나마 가까웠다고 평가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러한 태도의 진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는 이후의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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