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밤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타깝다” 했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수습할 차원에서 이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애초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완구 총리도 국정 공백 없이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이런 까닭에 그의 사의 표명 시점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분석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완구 총리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여당으로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이완구 총리 한 명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수습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는 데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은 다각도로, 전방위적으로 구명 로비를 펼쳤고 그 중심에는 청와대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이 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특히 두 인물과 성완종 전 회장 사이에 있었던 통화내역이 나오면서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사망 직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자택 주변을 배회했다는 사실을 재구성한 21일자 한국일보 보도.

▷한국일보 1면 <與, 李총리에 “23일까지 사의 표명” 요구키로> 양정대 기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도부는 20일 서울 관악을 재보선 지원을 위한 현장 선거대책회의 직전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이완구 총리에게 “23일까지 사의 표명”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일보는 “이와 함께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당 지도부의 의중을 전달하는 절차를 밟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4‧29 재보궐선거 사전투표(24~25일)를 앞두고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완구 총리 자진사퇴 움직임으로 여론 악화를 막아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원 연루돼 있고, 검찰 수사 결과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만큼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동아일보 3면 <成, 이병기와 140차례 - 김기춘과 40차례 전화> 장관석 조동주 기자

검찰과 언론의 관심은 다시 ‘성완종 리스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완구 총리는 리스트 8인 중 가장 빨리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황교안 법무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청와대의 의중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사건을 키우고 싶겠지만 사건의 볼륨을 키웠다가는 정치적 협상으로 이번 수사가 맹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리스트 8인에 대한 수사와 함께 경남기업의 로비 자금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검찰이 성완종 전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금씩 흘리는 것은 8인에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나름의 의지 표현이다. 동아일보는 검찰 특별수사팀 발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여야를 막론하고 구명 전화를 걸었고, 이른바 ‘메모 리스트’에 적힌 여권 핵심 8명 중 일부와는 최근 1년 사이 100∼200차례에 이르는 전화 착·발신이 오간 것으로 20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 1년 동안 성완종 전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성완종 전 회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이에 40여건의 착·발신 기록이 있고, 이병기 현 비서실장과는 140여건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특히 이병기 실장의 경우 국가정보원장 자리에 있던 당시 통화가 집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시작한 이번 파문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이제는 이완구 총리 한 명을 정리하는 것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해졌다. 성완종 전 회장의 사망 직전 인터뷰와 언론 취재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3면 <성 前 회장, 자살 직전 김기춘 자택 인근서 배회한 흔적> 김지은 정재호 정승임 기자

검찰은 현재 8인에 대해 출국정지를 하지 않는 등 헐거운 관리를 하고 있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성완종 전 회장이 사망 당일 김기춘 전 실장 자택 인근을 배회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김민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받은 ‘경찰 무선 교신 녹취록’을 확인, “성 전 회장이 9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김 전 실장의 자택 인근에서 배회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며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김 전 실장의 자택과 걸어서 10~15분 정도, 직선거리로 300m와 400m 떨어진 지점 등 두 곳에서 포착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성 전 회장은 9일 오전 평창동 K빌리지와 평창동 정토사 인근을 맴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K빌리지와 정토사는 김 전 실장의 자택(평창동 507-4)과 각기 400m와 300m씩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고 전했다. 11시3분까지도 K빌리지에서 휴대전화 신호가 잡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찰은 당일 성 전 회장의 아들로부터 실종 신고를 받으면서 끝자리가 각기 64**, 30**인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2대의 번호를 확보”해 통신사 기지국 정보를 바탕으로 위치를 분석한 결과다.

한국일보는 “성 전 회장이 자살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전 10시부터 3시간 전의 자취를 추정할 구체적 근거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라며 “성 전 회장이 막판까지도 김 전 실장에게 구명을 요청하려 애썼다는 진술이 나오는 가운데, 자살 당일 김 전 실장과 통화나 만남을 시도하려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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