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몸도 많이 아프고 끌려갈 때 그런 것 때문에 여기저기 아프지만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유가족들, 시민들을 2중 3중 4중으로 경찰들이 삥 둘러 싸고 있었거든요 (…) 무슨 대한민국이 이렇습니까. 우리 가족들은요, 정말 가슴이 찢어져서 너덜너덜합니다”

평소 기자회견에서 대표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던 3반 예진엄마가 모처럼 마이크를 잡았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약속을 지키라고 1년째 외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대부분 그렇듯, 조금도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자리였다. 경찰이 무리한 차벽 치기, 물대포와 캡사이신 정조준 살포 등의 이야기는 쏙 빼놓고, 경찰의 피해 상황만을 전하며 추모집회를 ‘불법, 폭력’으로 규정하고, 주최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 18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경찰당국의 416 1주기 추모 탄압 규탄 및 시민 피해상황 발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 정예진 학생 어머니 박유신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2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공동 주최한 <경찰당국의 416 1주기 추모 탄압 규탄 및 시민 피해상황 발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항상 밝은 모습을 보였던 단원고 2학년 3반 고 정예진 학생 어머니 박유신 씨는 “자랑거리도 아니라” 나오기 싫었지만 “그나마 (경찰에) 일찍 잡혀가서 힘을 덜 써서 이렇게 나와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8일 범국민대회 이후 벌어진 청와대 인간 띠 잇기 행사 전후로 연행된 유가족 20명 중 한 명이다.

“40년 넘게 평범한 주부로 아이들만 키우고 가족 건강만 걱정하면서 그냥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유신 씨는 “하루아침에 내 새끼를 원인도 모른 채 떠나보내 그 이유 알고 싶다고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며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족을 억울하게 잃으면 범죄자가 되더라”라고 토로했다.

“저는 18일날, 무리하게 차단벽을 치려는 경찰차를 못 대도록 가족들과 같이 저지하다가 여경 몇 명이더라… 몇 명인지도 모르겠네요. 정신이 없어서. (그 여경들에게) 팔이 뒤로 꺾이고… 무슨 힘이 있겠어요, 엄마들이. 3일 동안 광화문 현판 앞에서 노숙도 했고, 먹는 거라고 잘 먹었겠어요. 그런 엄마들한테 ‘이 여자 다리 잡아’ 하면서 두 다리 잡고 질질 끌고 가더라고요”

“(경찰은) 화장실을 못 가게 해요. 이런 거 말해도 되나. 엄마들이 어떻겠어요. 남자들은 엄마들보다는 수월하죠. 창피스럽지만 알아야 되겠기에 말씀드릴게요. 아빠들이 이불을 펴면 삥 돌아서 그 안에서 볼일을 봤어요. 정말 기본적인 그것까지 아들 같고 조카 같은 경찰 앞에서 그런 수치스런 모습까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파요”

“여기 나온 분들은 그나마 상태 좋은 분들입니다. 저희 3반 엄마아빠들 장난 아닙니다. 저희 반 도원 엄마 같은 경우도 연행은 안 되고 막판에 호송차에 태워졌다가 도망은 나왔는데 말씀을 들어보면 여경들이요, 손에다 캡사이신을 발라서 눈에다 문질렀대요. 머리끄댕이 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렸대요. 아니 유가족이 무슨 죄인입니까. 무릎을 꿇리게? 그 엄마는 지금 아파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3반 아빠 한 명은 안경 쓰시는 분인데 안경을 벗기더래요. 안경을 벗겨서 캡사이신을 눈에 뿌리고 무릎을 꿇렸대요. 그러면서 수갑을 채우려고 했더래요. 수갑이 없어서 질질 끌려갔지만…”

“현행범이라고 조사를 받는데도 정말 기가 막히고 이렇게 새끼 잃어놓고도 범죄자 취급당하는 게 너무 서럽습니다. (…) 유가족들 그렇게 힘이 없는데 저희들을 보호해야 될 경찰들은 너무 무자비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더라고요”

골절, 인대 손상, 발목 염좌… 추모 집회 참여 시민들 피해 심각

▲ 왼쪽은 여러 명의 경찰들에게 넘어진 채 밟히고 구타를 당해 허리와 대퇴 관절 부위에 심한 통증을 호소했던 시민의 모습. 오른쪽은 한 시민의 인대가 손상돼 고정시켜 놓은 모습 (사진=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전진한 의사는 18일 추모 집회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40분 동안 응급 진료를 한 시민들만 3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전진한 의사는 “부상자만 수십 명에 이른다. 경찰폭력에 의해 무릎 골절, 손톱 손실, 단기 의식상실을 보였고, 응급수술한 환자도 있었다. 최루액에 의한 결막염 때문에 작열감을 호소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며 “(경찰이) 주먹, 방패로 가격하거나 집단 구타를 해서 머리와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사람,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거나 찢어진 환자들,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 판정 받은 사람, 둔기에 맞아서 조직과 내부 장기가 손상되는 피해를 입은 사람 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진한 의사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려졌던 최루액의 유해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전진한 의사는 화학물질의 특성과 위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물질안전자료’(MSDS, Meterial Safety Data Sheets)에 따르면, 경찰이 최루액에 사용하는 노니마바이드(파바, PAVA)는 피부나 눈에 접촉했을 시 매우 유해한 물질이며 반복적으로 노출도리 경우 장기손상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진한 의사는 “(시민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한 경찰이 스스로 부상자가 74명이고 시위대는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매우 심각한 기만”이라며 “누가 방패와 최루액, 캡사이신, 물대포를 가지고 있었나. 의사로서 볼 때 적반하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애초에 이렇게 충돌과 부상이 생긴 데는 불통 자세로 평화적인 추모 행렬 가로막은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 경찰이 18일 범국민대회 이후 이어진 추모 행렬에 참가한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는 모습 (사진=오마이뉴스)

“경찰도 법 집행 시 요건과 절차,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 준수해야”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 역시 “발언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굉장히 답답하고 참담하기 때문에 오늘은 좀 말을 하려고 한다”며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않는 경찰의 진압 행태를 꼬집었다.

16일부터 18일까지 추모 집회 현장에 늘 동행했다는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에게 법 집행의 근거를 물어봐도 소속과 이름을 얘기해 달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 했다. 항의하면 엄포만이 돌아왔다”며 “경찰들이 대응하느라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런 걸 지키지 않고 국가권력을 행사한다면 깡패와 뭐가 다른지 질문 드리고 싶다”고 질타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당시 경찰이 설치했던 차벽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사건을 진행했던 박주민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차벽 설치가) 합헌이려면 위험이 명백하게 현존해야 하고 그 위험이 차벽 설치 이외의 방법으로는 방어될 수 없을 때여야 한다고 했고, 통행을 완전히 막게 설치하면 위헌이라고 했다”며 “16일, 18일 차벽은 모두 위헌, 위법적”이라고 말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그런데도 마치 (차벽 설치가) 적법한 것인 양 얘기하고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서만 ‘불법’, ‘엄단’ 이런 이야기를 한다. 경찰과 국가도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요건과 절차를 지켜야 되고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깡패들이 사용하는 물리력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일갈했다.

▲ 18일 경찰이 세워둔 차벽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세월호 유가족들은 18일 추모 집회 당시 경찰이 시민인 척 가족들 틈에 끼어있었다고도 말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버스를 넘어뜨리려면 줄이 필요하다고 하고, 칼이 있느냐고 물었다. 가족들이 이상해서 소속을 묻자 회피했고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어 옷이 들춰졌는데 그 안에 경찰 명찰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쏜살같이 도망갔다”며 “만일 이런 사례가 또 확인되면 다음부턴 저희가 붙들겠다. 신원 확인하고 명확한 사과 받고 무슨 목적으로 선동하고 있는지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언론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장면을 부각시키며 추모 집회를 ‘반정부 시위’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그 사람을 찾고 있다. 결코 저희 가족들이나 416연대에서 준비한 게 아니고, 정말 시민이 흥분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며 “반정부 집회라고 하는데 이건 정부가 가족과 국민들에게 하겠다고 한 걸 안 했기 때문에 빨리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라고 반박했다. 이어, “(태극기를 불태우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그걸 부각시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가족들과 시민들의 뜻을 폄훼시키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전했다.

▲ 최루액을 맞은 시민이 물로 눈을 씻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