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응하는 정부·여당·보수언론의 스텝은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엉켜버렸다. 애초 야당까지 엮어 정치권 전체의 부패 문제로 이 사건을 맥락화하려는 전략이 검찰의 비협조로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20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정기획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기획과 이완구 총리의 ‘대국민담화’로 검찰의 수사가 오히려 난국에 빠진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야권 끼어 넣는 전략 포기하지 않는 새누리당

그러나 여권은 여전히 이 사건에 어떻게든 야권을 끼워넣는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두 차례 사면받은 데 대해 “다소 이례적 사면에 대해 국민이 걱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황교안 장관은 사면 당시 상황에 대한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의 질문에 “흔치 않은 일로 알고 있다. 사면을 받은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정부별로는 조사해봐야겠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재차 답변한 바 있다.

▲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원회에서 `성완종 관련 불법자금 수수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장관의 답변은 그간 여당과 보수언론이 꾸준히 제기해온 성완종 전 회장과 야당과의 부적절한 관계 등을 암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수언론이 21일 지면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일보>가 야당 의원 7~8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로비 장부’의 존재를 보도해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전 의원 등에 고발당한 상황에서 나름의 ‘반격’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어차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한 새누리당, 되든 안 되든 야권 언급

이외에도 새누리당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걸고 넘어지고 있는 것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새누리당 김형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2007년 출간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의 자서전에 추천사를 썼고 ‘아름다운 재단’ 사업 지원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대해 “성완종 파문 이후 성 전 회장과 야권 인사와의 각별한 관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이번 성완종 의혹은 여야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인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하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앞의 사례와 동일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야권을 끼워넣으려고 하는 것은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이 이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여론조사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3~17일 성인남녀 2천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전화면접 및 자동응답 방식으로 무선전화 50% 유선전화 50% 병행 RDD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p, 세부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를 진행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대비 1.5%포인트 하락한 38.2%를 기록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모든 지역과 계층에서 하락한데다 주요 지지층인 보수층마저도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 ‘성완종 리스트’가 정권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된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이후 하락했지만 당내 일각에서 이완구 총리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독대를 하는 등 행보가 이어지자 소폭 상승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도의 경우 새누리당이 참여정부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두 차례 사면받았다는 점을 거론하고 일부 야당 의원들이 성완종 전 회장의 로비 대상이었다는 보도가 나온 시점 등에서 하락세를 보였다는 게 리얼미터 측의 분석이다.

이런 결과를 종합해보면 여론의 관심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집중돼있는 것이 사실이며 성완종 전 회장의 ‘로비’에 참여정부 또는 야권 출신 인사가 연관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불리한 국면이 조성된다. 따라서 새누리당으로서는 앞뒤야 어쨌든, 의혹에 실체가 있든 없든 성완종 전 회장과 야권과 연관된 무언가가 나올 때마다 이를 크게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조선일보 20일자 1면 기사.

태극기 방화, 정권 타도, 전문 데모꾼…전가의 보도 꺼내 든 조선일보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난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이 조성된 것도 야권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여기에는 18일 세월호 관련 시위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우고 있는 사진기사가 포함됐다. 이 사진 기사에는 “통신사 뉴스1이 촬영한 사진을 채널A가 19일 오후 뉴스 및 저녁 종합뉴스에서 방송했고, 이를 캡처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조선일보>로서는 다소 복잡한 경로를 거치더라도 반드시 시위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우고 있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필요했던 셈이다. <조선일보>의 이어지는 10면 기사에는 ‘좌파단체’ 등의 어휘를 사용했고 사설에서는 “세월호 관련 집회·시위가 정권 타도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전문 데모꾼들의 기획·선동 때문”이라고 썼다.

▲ 조선일보 20일자 사설.

비슷한 관점을 내세우는 것은 다른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이날 10면 기사에서 “시위를 전문적으로 이끄는 외부 세력이 개입해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이라는 경찰의 주장을 인용했고 사설에서는 “이날 시위를 이끈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4·16연대의 주도세력 중엔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이끌었거나 일부 좌파 단체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동아일보>도 이날 10면 ‘기자의 눈’ 코너를 통해 19일 진행된 집회의 폭력적 측면에 대해 상세히 묘사했다.

/td> ▲ 중앙일보 20일자 10면 기사.

문제는 재보선, 야권 참패하면 프레임 전환 확실시

보수언론이 집회 및 시위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적 상황에 대해 ‘침소봉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의 유포가 4·29 재보궐선거에서의 유불리와 엮이면 특정한 정치적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간 보수언론은 4·29 재보궐선거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들을 국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야권연대’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왔다. 이러한 새정치민주연합 책임론은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여론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 등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하면서 ‘배후세력론’을 제기하는 상황에서는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색깔론적 맥락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집회 및 시위를 폭력시위로 변질시켜 대한민국의 혼란을 부추기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게 이들의 전형적인 논리고, 그간 보수세력은 이 ‘배후세력’을 통합진보당과 연계하는 이미지 전략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마침 초미의 관심사인 서울 관악구 을 재보궐선거에서 옛 통합진보당 소속 이상규 후보가 사퇴했다. 여차하면 다시 ‘야권연대’의 맥락이 강조될 가능성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4·29 재보궐선거를 둘러싼 여론은 야당에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 ‘정권심판론’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상층 여론은 어떤지 몰라도 주요 선거구에서 여야는 ‘박빙승부’로 맞붙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세력이 성완종 전 회장 사건에 대한 ‘피장파장론’이나 ‘배후세력론’ 등을 계속 제기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유리한 국면에서조차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무능론’이 당 안 팎에서 제기되 문재인 대표 체제가 크게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에서 특정 세력에 유리한 여론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 늘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배워왔다. ‘초원복국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어려움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로 대응하는 것으로 충분한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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