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에 돈을 쓰는 행위에 붙을 수 있는 적당한 동사는 무엇일까? 책은 일반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주로 책을 산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돈을 내는 행위는 ‘산다’ 동사가 붙기 어렵다. DVD나 블루레이의 경우에는 그 표현을 쓸 수 있는데, 지불한 비용을 통해 콘텐츠가 담겨 있는 기록매체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경우는 어떨까. 크게 두 가지가 나뉜다. 패키지 게임의 경우 ‘산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롬팩, 플로피디스크, CD 등의 기록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게임의 대세인 모바일게임,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애매하다. 물론 게임 콘텐츠 전체를 온라인마켓에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과금’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같다.

▲오프라인 시절 게임이 유통되던 물리매체의 사례들. 왼쪽부터 롬팩, 3.5" 플로피디스크, CD롬이다. 직접 매장에 가서 현금으로 사거나 플로피디스크 시절에는 용산, 세운상가 등지에서 장 당 비용을 받고 불법복제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롬팩 사진의 출처는 hanhogyu님의블로그(http://blog.dreamwiz.com/hanhogyu/).

‘과금’은 또 두 가지 의미로 나눌 수 있는 중의적인 단어다. <하스스톤> 같은 게임에서는 과금유저와 비과금유저를 나누는데, 굳이 결제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스스톤>은 공격력과 체력, 사용비용과 특수능력이 각기 다른 카드들을 가지고 상대와 대결을 벌이는 카드게임인데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카드와 플레이를 통한 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사이버머니를 통해 더 유용하고 강한 카드를 모을 수 있어 별도의 결제 없이도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제를 하면 무료플레이로는 모으는 데 오랜 시간이 드는 카드팩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스스톤> 유저들의 과금은 쉽게 말해 ‘카드를 돈 주고 샀느냐’의 기준이다.

또 다른 의미의 과금은 정액결제다. 단일기기에서 돌아가던 옛날게임과 달리, 요즘 게임들은 서버-클라이언트 간의 네트워킹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고, 온라인을 통해 지속적인 패치와 유지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은 게임에 들어가는 비용 항목에 운영비용이라는 계정을 추가하게 만들었다. 단 한 번의 구매로 콘텐츠를 팔아서는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온라인 플레이가 중심인 게임의 경우 정기적 결제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 기간정액 방식으로 결제 가능한 <블레이드앤소울> 결제화면(위). 게임에 쓰이는 카드를 구매하는 <하스스톤>의 결제화면(아래).

요즘 주류를 이루는 게임 결제방식을 중심에 둔다면 서두에 던졌던 질문의 답은 그래서 ‘구매’가 아니다. 구매라는 표현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콘텐츠의 소유 △재반복 사용 가능 유무를 언급했는데, 패키지게임이나 일부 패키지 형태로 판매되는 경우가 아닌 시장을 점유하는 대부분의 모바일, 온라인게임들은 구매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애매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그 요즘 게임에서도 구매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아이템구매’다.

아이템은 소유 가능한 것인가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플레이어의 분신이 되는 오브젝트를 아바타라고 부른다면, 아바타와 게임 속 세계가 벌이는 상호작용에서 도구적으로 작용하는 것들을 일반적으로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중세 롤플레잉 게임이라면 갑옷과 칼, 현대 FPS라면 총과 수류탄 같은 것들이다. 패키지게임의 구매가 중심이던 시절에는 아이템의 개별판매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네트워크게임의 시대에는 카드게임의 카드, 퍼즐게임의 폭탄, 롤플레잉게임의 무기강화 아이템, 스포츠게임의 유명선수 모두 다 개별구매가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을 ‘구매’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대금을 결제한 후 자신의 계정에 아이템이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계정에 들어온 아이템을 보고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대로 ‘나는 아이템을 소유했다’라고 표현하기엔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책이나 CD는 일단 구매를 통해 소유하면 출판사나 음반사가 어찌되던 간에 상관없이 내 소유이지만, 온라인게임의 아이템은 만약 해당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가 운영을 종료한다면 세상에서 소멸해버린다. 책의 소유와 게임 아이템의 소유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개념이고, 따라서 소유를 위한 구매행위 또한 같다고 보기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자는 재화에 대한 소유고, 후자는 용역에 대한 소유다.

▲ <리니지1>에서 유명세를 탔던 진명황의 집행검. 현금거래가 가능했는데 호가가 1억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잦았다. 본질은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DB였겠지만 게임 내 세계관에서는 의미가 남달랐다.

게임 아이템에 대한 소유를 좀 더 실재적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물약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을 상상해보자.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용사가 되어 쏟아지는 적들을 무찌르고 나아가야 하는데, 공격을 당해 체력이 빠질 때마다 물약을 마셔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물약의 가격은 현금결제로 개당 500원이다. 나는 게임을 위해 물약 10개를 5천원에 현금결제했고 내 인벤토리 안에 물약이 들어왔다.

예시의 물약은 현실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산 프로그램상의 ‘트리거’다. 물약 단축키를 눌러 아이템을 사용하는 순간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안에서 플레이어의 아바타 체력수치를 바로 변경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이 있고, 플레이어가 5천원을 내고 구매한 것은 실시간 체력 회복프로그램의 구현 권한이다.

실시간 체력회복 구현의 권한은 <물약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 안에서만 유의미하다. 게임의 가상현실은 다분히 목적론적 존재론에 입각한 가상현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 세계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라면 게임은 아예 세계의 성립 자체가 목적론적 존재론에 의해 이루어진 가상현실이다. ‘물약’의 존재는 <물약 온라인> 세계 안에서만 성립하므로 <물약 온라인>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현상, 예를 들어 게임사가 운영을 종료한다거나 서버가 멈추는 일이 발생하면 물약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캐쉬템에서부터 비롯된다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아이템의 구매와 소유가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가상현실의 세계에현실의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물약 온라인>에서 아이템 구매가 현실의 현금이 아닌 게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게임의 세계관은 독자적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개당 500원이라는 결제 루트가 존재한다면 물약을 사기 위해 아바타가 벌여야 하는 게임 속에서의 직업활동과 사냥, 각종 거래행위는 현실화폐의 교환가치 기능에 얽혀버린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약 스무마리의 사슴을 사냥해 고기와 가죽을 벗겨 팔아야 물약 한 개를 살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쉬템의 존재는 스무마리 사냥에 걸리는 시간을 500원에 대응하게 만든다.

게임을 쉽게 표현할때 ‘룰에 의한 상호작용’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룰은 게임의 세계관과 존재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세계관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세계와의 분리를 뜻하는데, 분리되지 못한 현실의 난입은 게임서사에서는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작용한다. 스무마리 사슴을 반드시 잡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겪는 일들로 꾸려져야 할 서사는 단돈 500원에 소멸한다. 세계관이 무너지고, 가상세계를 지배하는 가치가 무의미해지고, 게임 속 오브젝트들이 가져야 하는 상호작용 또한 무너지면서 게임은 더 이상 룰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재미를 일으키지 못한다. <스타크래프트 1>에서 9드론 저글링 빌드에 들어가는 시간과 자원이 캐쉬템에 의해 변동될 수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에 많은 게임업체들은 게임의 결제방식이 가급적 룰과 상호작용의 코어를 건드리지 못하는 결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당대를 휩쓰는 대세 AOS게임 <리그오브레전드>는 챔피언이라고 부르는 게임 내 캐릭터들이 전장에 모여서 5대 5의 협동전투를 벌이는 게임인데, 100여가지가 넘는 챔피언은 사용하기 위해선 구매해야 하지만 구매가 싫을 경우 PC방에서는 전체 챔피언을 개방해주며, 매주 10여개의 챔피언을 무료로 돌려가며 제공한다. 챔피언들의 외형을 바꿔주는 ‘스킨’도 유료로 판매하는데, 말 그대로 외형만 바꿀뿐이지 게임 내 대결의 현장을 좌우하는 캐릭터의 능력치나 상성 변화는 유료로 건드릴 수 없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챔피언 중 하나인 갱플랭크의 스킨 모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리지널 캐릭터, 특공대 버전, 유령 버전, 해군 버전. 컨셉아트는 크게 달라지지만 게임 내 성능은 변화가 없다. 참고로 갱플은 보통 꺼내면 다른 팀원이 뭐라 한다.

하지만 캐쉬템이 게임의 본질적 재미를 해친다고 해서 게임이 마냥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사라질뿐, 또 다른 재미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현질(게임 아이템을 현금 거래하거나 캐쉬아이템을 구매하는 행위를 얕잡아 부르는 말)로 인해 게임성이 망가졌다는 평가를 듣는 문제작 <리니지1>을 아직도 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중요한 사례다. 현질과 캐쉬템으로 무장한 게임 속의 아바타는 상호작용의 재미 같은 걸 다 집어던지고서라도 ‘강력한 나’라는 역할극을 통한 대리만족의 희열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 문학과 통속 소설을 구분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막장드라마의 무개연성과 과도한 세속성을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높은 시청률이 막장드라마의 방영 토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듯이, 이 글 또한 게임 외적인 재미로 돌아가는 게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 캐쉬템 이상의 문제

다만 문제는 그 정도다. 최근 이슈가 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결론부터 내리자면 지나쳤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단순히 특정 아이템을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뽑기 방식을 동원해 n%의 확률로 게임 내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형태를 말한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키트 아이템의 당첨 확률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게임웹진 <디스이즈게임>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며 게임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캐쉬템 자체의 문제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게임성 훼손에 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없거나 얻기 힘든 아이템이 현금결제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제작사가 공들여 구축한 게임세계와 그 안에서의 무궁한 가능성은 현금 몇 만 원으로 대체된다. 그런데 이 캐쉬템마저도 돈을 내고 100%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확률로만 당첨되는 형태로 판매된다면 게임 고유의 재미를 포기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도박의 영역이 된다. 게임이 걸핏하면 도박, 약물과 묶여 중독 제재의 대상이 될 때 그토록 게임업계가 강조했던 멘트들, “게임을 독자적 예술로 봐달라” “게임은 새로운 매체지 중독재가 아니다” 같은 말들을 무색케 하는 것이 확률형 아이템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확률형 아이템을 기획하는 사람의 업무는 게임기획이 아니라 마케팅 기획이다. 게임성과 무관한 기획임은 이미 글 위에서 확인했고, 적정한 확률로 뿌려지는 캐쉬템의 효과와 가능성을 분석하고 매출을 키우는 게 목표인,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게임의 독자적 세계관을 흔들 수 있는 기획을 하는 업무가 게임기획은 아니다. 고래 한 마리의 출현 확률을 세팅하던 <바다이야기>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혁신적 인터페이스로 명작 반열에오른 <LOOM>을 부르는 ‘게임’과 유흥가 어느 구석에서 짙은 선팅으로 내부를 가린 채 걸어둔 간판 <게임장>의 ‘게임’은 동음이의어다.

3만원을 추가로 내면 소설의 주인공이 원래 스토리와 다르게 제3의 연인과 맺어지게 된다거나 죽어야 할 등장인물이 살아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의 상상이 캐쉬템 문제였다면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는 ‘3만원을 내면 일정확률로 소설 <소나기>의 여주인공이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볼 수 있어요!’ 라는이벤트 문구가 나오는 문제다.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 돌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야 하며, 임금은 임금의 본분을 하고 신하는 신하의 본분을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게임의 것은 게임에서 풀고, 마케팅의 영역은 마케팅에서 풀어야 하는 것 또한 그런 세상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Play the Game>

#01- 비욘드 어스,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02- MMORPG의 장르적 특성과 워크래프트의 세계관 그리고 WOW

#03- 게임 속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04- 게임에도 정당해산 따위는 없다

#05- 스타크래프트, 윙코맨더3...우주를 다룬 최고의 게임은?

#06- 상호작용의 매체, 게임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07- 나의 삼국지는 그렇지 않아!

#08- 맞고만 치던 당신, 설날 고스톱 스코어는 얼마?

#09-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이야기, XCOM

#10- 새마을운동 게임으로 정신과 이념을 교육한다굽쇼?

#11- 시뮬레이션 게임의 개척자 <심시티>를 통해 본 게임의 재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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