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 당시 세워진 경찰차량들 (사진=미디어스)

4월 18일 오후, 서울 도심은 마비됐다.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의 조속한 인양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연행된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지만, 철옹성처럼 세워진 경찰 버스와 폴리스라인에 막혀 거듭 멈춰서야 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동원된 버스는 470대(차벽트럭 18대 포함), 경찰은 13700명이었다. (▷ 관련기사 : <세월호 유가족 속속 연행… 범국민대회 결국 ‘중단’> / <세월호 참사에 ‘근혜산성’ 쌓고, '캡사이신'으로 뿌린 정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4월 16일 밤부터 광화문 누각 아래에서 노숙농성 중이던 유가족과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은 이미 수 차례 지적된 바 있다. 1주기 추모의 밤 행사를 마치고 광화문에 설치된 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이동하려고 했던 시민들과 유가족들을 진압한 것을 두고 국제앰네스티는 17일 “한국 경찰이 불필요한 경찰력을 사용하여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해산하려 한 것은 모욕적 처사이며, 표현의 자유 및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제앰네스티의 모니터링에 따르면 경찰관은 식별 표식을 전혀 부착하고 있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경찰의 책무성을 피하려 했다. 경찰은 희생자 유가족이 추가로 광화문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막았으며, 식사 반입도 막으려 했다. 이날 살포한 최루액은 특정 폭력 행위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기 위해 살포됐다. 이는 국제 기준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아놀드 팡 조사관은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나면서 정부 당국은 본색을 드러내고,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체포나 위협의 공포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없던 경찰 차벽 찾아볼 수 없었던 MBC, KBS

하지만 공영방송 MBC, KBS는 완전히 침묵했다. 헌법재판소에서 2011년 ‘위헌’ 판결을 내렸던 차벽 설치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최루액(캡사이신), 물대포 살수의 문제는 공영방송 뉴스에 들어있지 않았다. 기본적인 통행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설치돼 있던 경찰버스를 흔들며 격렬히 항의하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은 나왔으나, 서울 한복판을 장시간 마비시켰던 경찰버스 행렬은 풀샷 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불법·폭력 집회’ 엄단 계획은 비중 있게 보도됐다.

▲ 1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MBC <뉴스데스크>는 18일, 19일 모두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했다. 18일 <'세월호 집회' 참가자 경찰과 또 충돌…20여 명 연행> 보도는 “오늘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등 만여 명이 모여 특별법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십여 명이 연행됐습니다”는 두 문장이 전부였다.

18일 오후부터 진행된 유가족 연행 상황도,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것도, 유가족들이 속속 연행되는 상황에서 추모 집회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행사를 중단하고 광화문으로 향한 과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종로-광화문-서울시청-경복궁역 부근까지 설치돼 있던 경찰 버스와 차벽 행렬 장면도 없었다. 차벽 제거를 요구하며 버스를 흔드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만 부각됐다.

반면, 경찰의 입장은 단신에서도 충분히 반영됐다. 19일 <뉴스데스크>는 “경찰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열린 주말시위를 불법 폭력 집회라고 규정하고 ‘시위 주동자와 폭력 행위자를 모두 엄단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경찰 74명 부상, 경찰장비 368개 파손 등 경찰이 밝힌 피해 상황 수치도 포함됐다.

범국민대회를 주최한 416연대와 유가족들의 입장은 한 줄 언급됐다. 하지만 어김없이 ‘주장’으로 처리됐다. “이에 대해 4·16가족협의회 등은 ‘100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유가족과 시민 수 백 명이 다쳤다’며 ‘경찰의 진압이 과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KBS <뉴스9>의 보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뉴스9>는 18일 <‘세월호 1주기’ 대규모 추모행사 충돌…유족 연행> 리포트에서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에 ‘충돌’에 포커스를 맞춰 보도했다. <뉴스데스크>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이어졌던 경찰차량 행렬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집회 참가자들을 비출 때 일부 차량이 등장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 선후관계가 틀린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뉴스9>는 “만 명 넘는 참가자들이 도로를 행진하고 경찰이 차량 400여 대를 이용해 길을 막으면서 도심은 극심한 혼잡이 벌어졌다”고 말했으나, 경찰의 차벽트럭과 버스 설치는 추모 집회 도중 이미 완료돼 있었고 광화문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도로에 주저앉은 것이다.

▲ 19일 KBS <뉴스9> 보도

경찰발 보도자료 받아쓰기 행태도 여전했다. <뉴스9>는 19일 <경찰 “세월호 집회 불법·폭력 사태 엄중 대응”>에서 경찰관 폭행, 장시간의 도로 점거 등 경찰이 주장하는 ‘불법 폭력행위’를 열거하며 “이번 불법 폭력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라는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의 말을 전했다. 시위 참가자들의 입장은 “차벽을 설치해 놓고 일반인들의 통행까지 금지한다는 건 공권력의 남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의 말로 대체됐다.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전했던 SBS

반면 SBS <8뉴스>는 차벽 설치에 항의한 유가족들이 줄줄이 연행됐고,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에 18일 저녁 집회가 과격한 양상으로 번졌다는 점을 보도했다. 18일 <8뉴스>는 <도심 곳곳서 '세월호' 집회…유가족 15명 연행>에서 “물대포와 최루액이 다시 등장했다. 유가족들을 경찰이 붙잡아 끌고 갔다”고 말했다.

▲ 18일 SBS <8뉴스> 보도

<8뉴스>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포함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5명이 연행됐다. 광화문 앞에서 연좌 농성을 하던 유가족 10명도 연행됐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사흘째 농성하던 중이었다”며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은 유가족 연행 소식에 광화문 쪽으로 향하다 차벽을 치고 막아선 경찰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19일 <세월호 추모 집회 '격렬 충돌'…1백 명 연행>에서도 경찰의 보도자료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최루액과 물대포를 쓰며 과잉 진압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집회 말미 참가자들이 자진해산했다는 사실도 나타나 있었다. 주말 뉴스 내내 세월호 유가족의 인터뷰를 보도한 곳은 SBS뿐이었다. <8뉴스>는 “안전한 사회, 인간의 존엄성 가치를 국민과 함께 제대로 만들어가는 그런 행동을 다 해나갈 것”이라는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대표의 말을 담았다.

지난 15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열린 <세월호 참사 1년, ‘기레기’는 사라졌나>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수영 교수는 “보도를 하지 않으면 맥락이 실종된다. 1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전혀 보도되지 않아 대중의 인식 속에 ‘세월호’가 없던 상황에서 배·보상금 얘기가 나오고 인양 비용이 나오면 국민들 사이에서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다가 돈 얘기 나오니까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는구나’ 하는 이상한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주말 동안 두 공영방송의 세월호 추모 집회 보도는 해외 언론사인 로이터 통신보다도 못했다. 로이터 통신은 <South Korea police clash with protesters over ferry disaster> 기사를 통해 유가족, 시민들의 연행 상황 등 격렬했던 집회 현장을 전했다. “About 13,000 police and 470 police buses were deployed in central Seoul. 100 protesters were arrested last night”라며 470대의 경찰버스와 13000여명의 경찰병력이 서울 도심에 배치됐으며, 지난밤 연행된 시민의 숫자만 1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장 높은 ‘공적책임’을 부여받은 두 공영방송은 이번에도 ‘불법, 폭력 시위’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맥락 없는 보도를 이어갔다.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는 1년 전의 반성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 19일 SBS <8뉴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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