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가 속도를 내며 이완구 국무총리와 관련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지만, 거취 문제는 여전히 결론이 불투명한 상태다. 야당이 해임제출안 제출 일정의 구체적 조율에 들어가면서, 이완구 총리의 거취와 관련한 줄다리기는 이번 주에 중대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19일 경남기업 측이 관련 증거를 숨기거나 빼돌린 정황이 있어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내부 CCTV 파일과 컴퓨터 등을 분석한 결과 상당 부분이 삭제됐거나 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압수수색을 앞두고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했는지 여부를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완구 총리가 애초의 해명과는 달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이 술렁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후 1년 동안 성완종 전 회장의 통화내역을 분석한 결과 성완종 전 회장이 이완구 총리에게 전화를 건 사례는 153건에 달하고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회장에게 전화를 건 횟수는 64건으로 합쳐서 1년 간 217차례의 통화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217건의 통화 모두가 성사된 것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완구 총리가 그간 성완종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수시로 연락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파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2013년 4월경 이완구 총리를 수행했던 운전기사 윤모씨가 이완구 총리와 성완종 전 회장이 당시 독대를 했었다는 증언을 한 데 대해 이완구 총리와 새누리당 측이 윤모씨의 집 주소를 수소문하고 연락을 시도해 사실상 위협을 시도했다는 보도 또한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9일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완구 총리가 사실상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있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 이완구 국무총리가 19일 오전 서울시 강북구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제55주년 4·19혁명 기념식 행사를 마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러니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완구 총리가 이미 ‘시한부 총리’가 됐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출국 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독대를 해 남미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상황을 정리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이후 특별한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완구 총리가 사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사례까지 거론하며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점치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임명동의안 제출을 연기했지만 여론이 더 악화돼 대통령 귀국 3일 전 자진사퇴를 선택했어야 했다. 이완구 총리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순방을 떠나면서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정권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문창극 후보자와 같은 경로를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완구 총리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4·19 혁명 기념식에 정부를 대표해 기념사를 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안 계시기 때문에 국정을 흔들림 없이 챙겨야 한다”며 정치권 일각의 사퇴 요구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멘탈갑’이라는 인터넷 용어까지 활용해 이완구 총리의 사퇴 거부 입장을 풍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자 야당은 이완구 총리를 총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5일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현안에 대한 질의를 이완구 총리가 아닌 해당부처 장·차관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총리에게 현안을 질의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총리 해임건의안 상정까지 공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은 이완구 총리가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르면 23일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한 일정을 새누리당 지도부와 협의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의 경우 발의 이후 처음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돼야 한다. 만일 72시간이 지나도록 처리되지 않으면 해임건의안은 자동폐기된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본회의 날짜는 23일과 30일이다. 야당이 공언하는 대로 23일 해임건의안이 제출되더라도 이의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72시간 내에 따로 잡아야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 원내지도부와 본회의 개최 여부를 합의해야 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 두 번째), 추미애, 전병헌, 정청래 최고위원, 김한길 전 대표 등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제55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참배한 뒤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새누리당이 이를 위한 일정에 합의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해석이 다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야당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제출에 대해 “대통령이 외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결정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일주일만 기다려 주는 게 정치적 도리”라고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27일 귀국할 예정이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을 토대로 계산해보면 새누리당 지도부가 전향적 판단을 할 경우 27일 해임건의안 발의와 30일 본회의 처리가 유력할 것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헌정 역사상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경우가 없는데다 해임건의안 통과 자체가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가 해임건의안 통과라는 명예를 야당에 안겨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해임건의안이 제출될 경우 이완구 총리가 자진사퇴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 관련 현안 보고를 받는다는 점도 박근혜 정권과 이완구 총리로서는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이날 여야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수사 상황에 대한 질의를 벌이며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조선일보> 등 언론 보도 등에서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 범위가 야권 인사들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자당 소속 주요 정치인 등이 포함된 ‘리스트’가 언급된 기사가 나온 데 대해 항의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해당 리스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공방과 이완구 총리의 해임건의안 제출 일정 협의 등으로 국회는 이번 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중대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여론 변화에 따라 27일 귀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모종의 ‘결심’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내 소장파 등에 더해 청와대 참모 일부도 이완구 총리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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