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추모 집회를 막기 위해 동원된 경찰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이미 몇 차례의 물대포가 시민들과 유가족, 취재진들을 향해 뿌려졌던 18일 오후 8시 45분 경,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라고 방송했다. 레고 블록 놀이하듯 도심 한복판에 경찰버스를 줄지어 대놓고 차벽을 쌓아 통행을 막아 놓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귀가’를 말했다.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참사 피해자들을 앞에 두고.

18일 오후 3시 40분 경부터 시작된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는 오후 4시 31분 경 급히 마무리됐다. 집회 시작 전부터 경찰의 차벽 설치에 항의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범국민대회를 주최한 416연대는 대회를 중단하고 광화문에 고립되어 있는 유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길은 막혀 있었다. 집회 때부터 이미 도로를 가로질러 주차된 경찰버스와 폴리스 라인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사 1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 시민들과 함께 한 추모 행사를 마치고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주장하며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이었다. 정부 시행령(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독소 조항이 다수여서, 오히려 ‘진실 찾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 관련기사 : <유가족들과 특위는 왜 ‘세월호 시행령’을 거부할까>)

유가족들은 광화문 앞에서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평화로운 시위를 했지만 경찰은 경찰버스와 병력을 투입해 그들을 고립시켰다. 도구를 가지고 무력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은 화장실에 간다는 유가족들의 통행을 막았고, 유가족을 격려 방문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 역시 막았다. 급기야 18일 오후부터는 유가족 주변에 차벽을 쌓았고, 유가족들이 이에 항의하자 기다렸다는 듯 연행을 시작했다. (▷ 관련기사 : <세월호 유가족 속속 연행… 범국민대회 결국 ‘중단’>)

▲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지난 11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처음 살포됐던 최루액(캡사이신)은 이날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물대포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소화전의 물을 불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양의 물을 시민들에게 뿌렸다. 경고 방송이나 해산 명령 당시 언제나 ‘법과 원칙’, ‘질서’를 강조하는 경찰이었지만 정작 그들의 ‘공무집행’은 일관성도 원칙도 없었다.

‘최루액 발사는 1m 이상 먼 거리에서 해야 하고 얼굴에 쏘면 안 된다’는 경찰장비 사용기준 제12조 제1항, ‘물대포를 사람에게 직접 직선으로 쏘면 안 된다’는 경찰장비 사용기준 제13조 제3항은 물론 ‘경찰차벽으로 시위를 가리고 시민들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무시한 채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았다.

차벽 뚫은 시민들, 물대포와 최루액에도 돌아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날 투입된 경찰 병력은 집회 참가자의 두 배를 상회할 만큼 수가 많았다. 서울광장부터 광화문 누각, 경복궁역, 종로까지 인근이 모두 경찰버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폴리스라인도 군데군데 설치됐다. 박근혜 정부 2년차, 마침내 ‘근혜산성’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버스를 흔들면서 계속 차벽 제거를 요구했다. 스프레이로 ‘박근혜 퇴진’, ‘정부 파산’ 등의 글귀를 버스에 새기기도 했다. 오후 6시 20분, 오후 7시 20분 경 시민들이 차벽을 뚫고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 쪽으로 진입했다. 걷거나 뛰면서 이동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경찰버스 밑을 기어서야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 경찰은 이날 집회에서 수 차례 물대포를 살수했다. (사진=미디어스)

5시 50분 경 살수차가 나타났다. 이후 세종대왕상 앞에서 물대포 발사를 시작한 경찰은, 차벽 제거를 요구하며 경찰버스를 흔들고 버스 위로 올라간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최루액과 물대포는 이후에도 계속 살포됐다. 경찰은 무수히 많은 병력을 배치해 집회 참가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와중에도 거듭 해산명령을 내렸다. 무차별적인 채증, 물대포와 최루액 사용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명분 아래 적극 권장됐다.

“우리 경찰 채증 철저히 하세요!”

“현재 물대포를 살수하고 있습니다. 기자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벽 훼손을 위해 줄을 이양하고 있습니다. 물포를 이용해 저지하고자 합니다. 기자 여러분, 물러나 주세요. 전의경들, 채증 철저히 하세요. 경찰 집기 파손은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합니다. 물포 살수하세요! 캡사이신 사용하세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안전을 생각한다는 세월호 대책위 여러분이 경찰의 안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방송으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경찰에게 욕을 하는 사람은 바로 연행하세요. 경찰 차량에서 탈취한 방패 등으로 불법 폭력 시위를 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뿐만 아니라 기자 여러분의 생명과 신체에 명백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멈추세요!”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박근혜 정권이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7시 50분 경,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민들과 함께 청와대 쪽으로 이동했으나 경찰에 저지당했고 계속 대치 상태를 유지하다 10시 28분쯤 다시 광화문 누각으로 돌아왔다. 10시 30분, 단원고 2학년 7반 고 전찬호 학생 아버지 전명선 씨가 집회 마무리 발언을 했다.

전명선 씨는 “저는 사실 국가를 상대로 이렇게 싸워본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 1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상대하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핍박받고 돈에 휘둘리며 가치 없이 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도 여러분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이다. 약속한다. 끝까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함께하겠다고 약속한다”고 밝혔다.

전명선 씨는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깡패 같은 공권력의 바리케이트를 넘었다. 2008년 이후 두 번째라고 한다. 두드리고 계속 요구하면 우리가 원하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그 답변이 나올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이다. 두드려서도 안 나오면 국민과 함께 안전한 사회, 인간 존엄의 사회를 위해 행동할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4월 24일에도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 경찰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뿌리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학생 아버지 유경근 씨는 “오늘(18일) 경찰 차벽을 뚫은 게 두 번째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할 게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진짜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대한민국 역사상 첫 번째 과제이자 완수해야 할 사명일 것”이라며 “다 같이 하실 수 있죠?”라고 말했고 시민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아름다운 밤인 것 같다. 안 그렇습니까”라며 “여러분 분명히 요구하자.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민에게 항복해야 한다. 이런 국민의 뜻에 항복하지 않는 정부라면 우리가 정부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은 “우리는 그동안 많은 참사를 겪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고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 아닌가 모르겠다. 진실을 밝히는 길을 우리는 매일매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며 “오늘 길을 터주느라고 애쓴 민주노총 조합원과 여러분 수고하셨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 준 민주 시민과 학생 여러분, 너무 고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시민이 힘을 합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것을 오늘 저는 확신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박근혜 정권이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국민의 힘으로 또 밀고 가야 한다”며 “우리가 만들어낸 이 밤, 결코 잊지 말자. 유가족과 시민이 모이면 분명히 정의를 세울 수 있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 수 있고 부패 정권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경찰은 유가족과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다. 한 유가족이 경찰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5000여명의 시민들이 힘을 보탰던 이날의 집회는 오후 11시께 공식 마무리됐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됐다. 해산명령에 불응한 ‘현행범’이므로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고까지 방송한 경찰은 무차별적인 연행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 연행 과정은 지나치게 고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져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7시 55분 경, 청와대로 향하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최루액을 맞을 때 최루액을 쏘는 곳에 가까이 가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 3명이 붙어 젊은 여성 시민을 경찰 밴에 강제로 태워 연행한 것이 한 예다.

결국 유가족 20명을 비롯해 총 100여명의 시민들이 현장에서 연행돼 금천, 성동, 마포, 노원, 서초, 강남, 송파, 동작, 강동, 은평, 중부경찰서로 옮겨졌다.

▲ 광화문 대로변이 경찰차에 의해 막혀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액 살포에 우비와 우산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7시 20분 경,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가는 길이 뚤렸다. (사진=미디어스)

▲ 시민들은 경찰버스 밑을 기어서 광화문 누각 쪽으로 진입했다. 유가족들이 시민들의 이동을 돕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3호선 경복궁역 부근도 이미 경찰버스 수십 대가 세워져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 청와대로 향하는 유가족들을 막기 위해 대기 중이었던 경찰 병력이 급히 투입됐다. (사진=미디어스)

▲ 시민 연행을 저지하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리 가장 바깥쪽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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