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3일, <미디어오늘>은 <KBS 보도국에 ‘일베’ 기자 있다> 기사를 통해 올해 1월 1일부터 입사한 A 기자가 여성 혐오, 특정지역 비하 등의 글과 댓글을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 올린 것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A 기자 한 기수 선배인 41기들이 일제히 항의글을 올리고 11개 협회가 임용 취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으나, KBS는 “A 기자의 평가결과는 사규에서 정한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고,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4월 1일 그를 정식 임용했다.

A 기자는 다른 동료들처럼 경찰기자 생활을 거치지 못하고 내근만 해 오던 그는 보도본부가 아닌 정책기획본부 내 남북교류협력단으로 파견된 상태다. A 기자는 지난 13일 사내 게시판에 “진정 새 사람으로 거듭날 준비가 돼 있고, 염려하시는 것과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드릴 기회를 얻고자 한다”며 “공영방송인으로서 필요한 잣대를 그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철저히,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겠다”는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

▲ 17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가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주최 측 제공)

2달 넘게 KBS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일베 기자 임용’에 대한 토론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KBS 11개 협회(경영협회·기술인협회·기자협회·방송그래픽협회·아나운서협회·여성협회·전국기자협회·촬영감독협회·촬영기자협회·카메라감독협회·PD협회)와 KBS노동조합(이하 KBS노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이 공동 주최한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가치> 토론회에는 주최측을 포함해 70여명의 구성원들이 참석, 3시간 가량 이어졌다.

일베 수습 임용 수수방관한 KBS 경영진 성토

기조발언을 맡은 KBS PD협회 안주식 협회장은 “여성 혐오, 특정지역 폄하, 장애인 비하 글을 작성해 인터넷에 게시하고 그런 글을 읽어왔던 (일베) 헤비 유저가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공영방송 KBS 정식직원으로 임용됐다. 범법행위가 아닌 이상 입사 전 행위는 문제시할 수 없다는 사측의 입장은 폭력적이다. 꼼수로 넘기고자 하는 얄팍함”이라며 “참담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안주식 협회장은 “(KBS가) 일베 옹호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수신료로 월급 준다는 비판이 쇄도할 때도 사측은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관료주의적 입장만을 밝혔다”며 “법률자문 역시 인력 담당 부서의 실책을 덮는 데에만 활용됐다. 아직 채용 과정에 있는 수습직원에 대해서는 수습을 취소, 연장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오직 입사 전 문제라는 점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안주식 협회장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결격 사유를 밝힐 수 있었는데도 경영진은 어떠한 조치가 없었다. 또한 11개 협회가 사장 면담 요구 등 민주적인 사태 해결을 요구했으나 3시간 만에 거절당했다”며 “이는 공영방송 KBS의 입사기준을 둘러싼 가치판단의 문제,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의 부재, 현 조대현 사장 체제의 비민주성과 무능한 위기대응 능력으로까지 확대됐다”고 말했다.

KBS기자협회 김철민 협회장은 어린이들을 ‘로린이’라며 성적 대상으로 비하하는 글을 올리는 등 일베 사이트에서 활동했던 사실이 학부모들에 의해 발각돼 결국 임용이 취소된 경남의 한 체육교사의 사례를 들어 이번 사태를 설명했다. 김철민 협회장은 “이미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패스해 정규 절차를 밟아 임용 취소할 근거가 없다고 했으나 교육청은 ‘저런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굴복해 취소했다”며 “회사도 과거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남교육청과 정반대의 결정을 했다”고 꼬집었다.

김철민 협회장은 최근 <이광용의 옐로우카드>라는 프로그램에 독일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로고가 일베에서 만든 ‘바이에른 무현’ 로고로 나간 것을 언급하며 “편집팀에서 가장 깨끗한 고화질을 찾아 넣었는데 일베 이미지였다. 모르고 한 것이었지만 방송 후 난리가 났다. ‘KBS가 일베 기자를 정식으로 임용하더니 완전히 개판이 됐다. 조직적이다. 배후를 밝혀라. 수신료 걷어가지 말라’ 이런 요구가 빗발쳤다”며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시청자들은 그렇게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민 협회장은 “이는 이념적인 대결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패륜적인 집단에 대해 있는 사람을 거르는 문제다. 일베가 사회적 해악이라는 것은 합의된 사항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방송에서 일베 마크를 사용하면 법적 조치를 내리는 것도 이 같은 합의를 보여준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시위를 하고 단원고 학생을 어묵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정상인가”라며 “이런 사람을 KBS 기자로 임용하니 안 그래도 의심 받는 ‘공정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KBS는 ‘케일베스’라고 조롱받고 있다”며 “11개 협회의 주장을 다 거부하면서 어떻게 할 건지 모르겠다. (이번 일은) 경영진 스스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곡해하는 배임행위로 사법적 책임 물어야 한다. 일베 임용에 관여했던 경영진들에게 책임을 묻고 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아 KBS 여성협회장은 A 기자가 일베에 올렸던 생리대 인증 발언, 공연음란 발언 등을 소개하며 “과연 이러한 글을 쓴 자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경영진의 판단은 뭐냐. 읽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여성혐오 글에 동조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격변하는 사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몇 가지 규정들로 인해 KBS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 사람 하나를 들이는 데 있어 좀 더 치밀하고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개인에 대한 집단적 거부의사 표명 정당한가” 반론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KBS 내부 구성원들은 일베의 ‘반인륜적’ 가치관과 A 기자의 임용을 강행한 KBS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반론은 외부 전문가로 초청된 윤석민 서울대 교수로부터 나왔다.

윤석민 교수는 “여성 및 특정지역 비하, 특정 정치집단 비하 등이 노골적으로 표현돼 있는 걸 봤고 그런 차별적인 표현 수위가 상식적인 사회 통념에 반한다는 것을 공감한다”면서도 “이런 표현행위를 공개 비판하면서 개인에 대한 집단적 거부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정당한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윤석민 교수는 “물론 일베의 일탈 행위는 나쁘다”면서도 “익명 표현자의 신상을 밝히고 집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타당하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문제가 된 인사의 일베 전력을 고발하는 보도행위가 애초에 타당했는지 의문이 든다. 사상 전향적인 반성문을 정황적으로 강제하고 이를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을 보니, 누구보다 균형적이어야 할 KBS 사원들이 온당한 문제제기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건 아닌가. 이건 사적 처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채용 취소에 대해서는 “반인륜적인 표현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고 KBS가 지니고 있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사명을 토대로, 그의 직업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겠다”며 “교사는 그의 손에 어린아이들이 맡겨지기 때문에 너무나 명백하고 확실한 위협이었지만 이번 건은 경우가 다르다. 직업적 제한을 가한다기 보다는 내부의 자율적인 통제나 사내 분위기를 통한 제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다”고 설명했다.

▲ 지난달 30일, KBS 41기 기자들이 A 기자의 임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새 노조, 국민감사 청구 제안

새 노조는 국민감사 청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새 노조 김성일 사무처장은 “입사 취소는 사규 상에 명시된 절차다. 다만 타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인사권자가 하는데, 직원들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인사권자를 설득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공영방송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김성일 사무처장은 “안고가지 않을 것이다. 조합은 움직일 것”이라며 “국민감사 청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론조사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말을 토대로 (향후 계획을) 생각해 보겠다”고 전했다.

김철민 협회장은 “결국 이건 사측의 의지 문제”라며 “임용을 강제한 행정절차가 정말 문제가 없었는지, 구성원들도 좋고 외부 시민단체도 좋고 국민감사청원이라도 해서 채용절차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회사 입장을 해명할 사측 관계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주최 측의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초 예정돼 있었던 외부 기자들의 취재도 무산됐다. 주최 측은 사전 방문 허가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정작 KBS는 안전관리실, 홍보실, 인력관리실 모두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며 기자 출입 가능 여부에 대한 답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사는 주최 측이 제공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