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폭로한 박근혜 정권 실세의 금품수수 의혹 퍼즐이 점점 맞춰지고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로 시작한 의혹은 초기에는 관련자들의 증언과 의혹 당사자들의 반박이 반복됐지만, 최근 보다 구체적인 증언과 증거가 나오면서 당사자들은 말을 바꾸거나 입을 다물거나 ‘만남’을 인정하는 단계가 됐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 측근들을 소환조사하며 여러 건의 다이어리와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특별수사팀은 이틀 전 진행한 경남기업 본사 및 관계사 3곳, 전·현직 임직원 11명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결과 다이어리와 수첩류 34개, 휴대전화 21개, 디지털 증거 53개 품목, 회계전표 등 관련 파일 257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현재 이 자료를 분석 중이다.

이완구 총리의 경우 2013년 4월 재선거 당시 운전기사가 등장해 ‘이완구-성완종’ 독대를 증언했는데, 이에 이완구 총리 측은 언론 보도 이후 이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따지며 대화를 녹취, 취업까지 거론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품수수 조사의 핵심인 ‘진술의 일관성’을 흔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또한 검찰은 재선거 당시 이완구 캠프의 회계책임자를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이 3천만원 수수 의혹을 밝혀낼지 주목된다.

파문이 확산하면서 이완구 총리 거취 문제도 나온다. 야당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남미 순방을 다녀온 뒤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알맹이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완구 총리 쪽에서는 이를 ‘재신임’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반대 해석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여권 핵심관계자를 인용, 박 대통령이 이완구 총리를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없는 동안의 국정 공백 문제도 있어서 일단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그런 발표가 이뤄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게 조선일보가 인용한 여권 관계자 이야기다. 대통령이 부재한 12일 동안 검찰 수사와 여론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 8인 가운데 가장 먼저 추가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경우도 사건 진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1억 전달자’로 알려진 윤아무개씨는 성완종 전 회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대화와 녹음은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 윤씨를 찾아간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성 전 회장은 윤씨에게 전달 사실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달자 윤씨의 증언은 홍준표 지사 측이 거론한 ‘배달사고’ 가능성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김기춘 전 실장은 비서실장이 된 이후 성완종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금세 ‘만남’을 인정했다. 그는 여전히 ‘10만 달러’를 받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이 그에게 구명 로비를 벌였고, 이 같은 로비 활동은 과거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구축한 ‘관계’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기춘 전 실장은 성완종 전 회장이 돈을 건넨 장소로 밝힌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피트니스센터에 자주 드나들었다. 김 전 실장은 성완종 전 회장 측에서 ‘정확한 날짜’를 제시해야 ‘구체적 해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CBS노컷뉴스 <이완구측, 운전기사에 말맞추기 시도… 수사염두 몰래녹취까지> 조은정 김민재 기자
▷한겨레 7면 <이완구쪽, 전직 운전기사 회유 시도 정황> 이세영 기자

이완구 총리는 입단속에 나섰다. CBS노컷뉴스는 “이완구 국무총리측이 국회 대정부질문 사흘째인 15일 새벽, 2013년 선거 캠프 직원들을 상대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나왔다”며 “이 총리의 의원실 5급 비서관 김모씨가 윗선의 지시를 받고 핵심 제보자인 운전기사에게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 녹취하면서 어긋난 동선을 대며 말맞추기를 시도한 것이다. 김씨가 검찰 수사에 대비해 곳곳에서 녹취를 수집해온 사실도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CBS노컷뉴스는 “김씨는 지난 2013년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 당시 이 총리를 보좌했던 최측근인 만큼 이번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지검장)의 주요 수사 대상”이라며 “김씨가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두고 유도질문을 하며 직원들의 녹취를 수집했다면 이는 구속사유인 증거인멸 시도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이완구 총리의 운전기사였던 A씨는 지난 15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도중 김아무개 비서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A씨가 “사실 오늘 새벽 김00한테 전화가 왔었다. ‘형님 그날(2013년 4월4일) 우리 기억나요. 형님 우리 (홍성) 도청 (일정) 끝나고 청양사무실 들렀었죠?’ 하면서 먼저 청양사무소에 들르지 않았냐고 묻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CBS노컷뉴스는 “김씨가 운전기사에게 청양에 들렀는지 물어본 것은 동선을 짜맞추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2013년 4월4일 당시 홍성에서 열린 충남도청 개청식은 오후 3시30분에 끝났다. 성 전 회장측이 왔다는 오후 4시30분에 부여사무실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중간에 행선지를 늘리려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특히 김아무개 비서관은 이 대화를 녹음하고 녹취록을 작성해 기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그는 “저는 솔직히 나중에 검찰에 제출하려고 다 녹취록 정리를 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CBS노컷뉴스는 “이미 검찰 수사에 대비해 유리하게 녹취록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김씨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완구 총리는 기다렸다는 듯 국회 대정부질문 말미에 이를 언급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김아무개 비서관이 운전기사 A씨에게 15일 새벽 전화를 걸어 2013년 4월4일 상황에 대해 기억하는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한 뒤 A씨에게 근황과 취업 여부를 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 비서관은 취업 얘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A씨가 과거 취업과 관련해 메시지를 보낸 것을 물어본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김 비서관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A씨를) 2013년 이 총리에게 운전기사로 소개한 것도 나다. 어제 통화하면서 취업 얘기도 있었지만, 지난해 (운전기사를 그만둔 뒤 쉬고 있던 A씨가) 먼저 취업과 관련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어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4면 <“李총리, 成에 받은 3000만원 계좌에 쪼개기 입금 가능성”> 김정우 기자
▷동아일보 1면 <檢, 이완구 재선거 회계책임자 소환키로> 장관석 기자

이완구 총리 측에서 이 총리에 불리한 증언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2013년 재선거 당시 이완구 캠프의 회계책임자를 소환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완구 총리 측이 성완종 전 회장이 건넨 3천만원을 ‘쪼개기 입금’ 방식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고액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2013년 4월4일 이후 이완구 총리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고액 기부자들은 모두 11명인데 기부금 5500만원이 일주일 새 모였고, 기부자들이 모두 ‘회사원’으로 기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 측이 지인과 지인의 지인 등을 동원해 후원회 계좌로 분산 입금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는 정치권 인사 설명을 인용하며 이완구 후보 측이 성 전 회장한테서 받은 3천만원을 500만원 단위로 나눠 타인 명의를 활용해 후원금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일보는 “정치자금 기부 시 직업란은 기부자가 임의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11명이 실제로 일반 회사원이라고 단정하긴 이르다”며 “하지만 ‘3천만원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는 만큼,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성 전 회장 주장의 진위 검증은 물론, 당시 이 총리 측에 건네진 ‘후원금 5500만원’의 정확한 출처와 기부 경위 등도 파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완구 캠프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당시 캠프의 회계책임자를 소환할 방침이다. 물론 캠프 인사가 이완구 총리에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은 적지만, 당시 선거 자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밖에도 검찰이 이완구 캠프의 장부도 확보해 수사할지 주목된다.

▷한국일보 5면 <홍준표 옭아맬 녹취… 1억 전달 윤씨 “회장님도 직접 확인”> 김청환 기자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궁지에 몰리고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1억 전달자로 지목한 윤아무개씨는 돈 전달 사실을 확인하는 성 전 회장과 자신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0년과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홍준표 캠프에서도 활동했고, 이후 경남기업 부사장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지난해 새누리당 대표 경선 때는 서청원 캠프 공보특보로 활동했다.

한국일보는 사정당국을 인용, 성완종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남기업 간부와 윤씨를 찾아 1억원 전달 사실을 재확인했고 윤씨는 성 전 회장에게 “회장님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홍준표 지사는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없고 윤씨에 의한 ‘배달사고’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윤아무개씨가 성완종 전 회장과 만날 당시 대화를 녹음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는 “윤씨는 성 전 회장의 방문 당시 대화를 녹취했으며 이런 사실은 두 사람 만남에 동석한 성 전 회장의 비서 이씨도 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문제는 홍 지사가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 같은 대화내용이 홍 지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물론 윤씨가 1억원을 홍 지사에게 전달하지 않고도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전달했다고 허위 증언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윤씨는 자신이 배달사고를 내지 않았다는 정황을 강조하기 위해 녹취 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