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16일 밤, 서울광장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 7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여명)이 모였다. 집회 이후 이들은 광화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광화문에 설치된 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4·16 약속의 밤> 자보에 “꽃 한 송이 들고 오세요”라고 쓰인 이유다.

하지만 경찰은 집회가 이루어졌던 서울광장 일대뿐 아니라 광화문, 서대문 부근까지 경찰버스와 병력을 배치했고, 광화문으로 이동하려던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최루액이 살포되기도 했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한 세월호 유가족은 중상을 입기도 했다.

4·16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는 17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은 어제,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었다. 대신 경찰의 폭력만 난무했다. 대통령이 사라진 도심에서 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상식적인 외침이 권력안보를 위해 동원된 황견들에 의해 짓밟혔다”고 질타했다.

▲ 17일 낮 12시 4·16 가족협의회와 416 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은 어제,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었다. 대신 경찰의 폭력만 난무했다”고 질타했다. (사진=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이들은 “손에 국화꽃을 든 행렬이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분향소로 향하자 경찰은 모든 주요 도로를 차벽으로 물샐 틈 없이 봉쇄했다. 참사 1주년, 가족과 국민들의 분향행렬은 이렇게 경찰의 완력에 의해 가로막혔다”며 “경찰은 광화문 주변의 주요도로로 향하는 모든 인도를 봉쇄했고, 합당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할 상처 입은 가족들을 마치 공공의 적처럼 취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득이 광화문 앞 인도에 주저앉은 가족과 시민들에게도 경찰의 폭력진압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10명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 학생이 연행됐다. 그들은 도로도 아닌 인도에 평화롭게 앉아 자유발언을 경청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의해 일방적으로 ‘불법집회 현행범’으로 몰려 강제로 연행된 것”이라며 “결국 우리는 이 자리에 주저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참사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가족 품에 데려오기 위해 진실규명과 인양을 호소하는 추모행렬을 경찰력으로 가로막고 최루액을 살포하면서 이 나라 공권력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며 “이 나라에서 국민으로 사는 것이 참담하지만 우리는 절망하거나 냉소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도 타협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세월호 유가족, 갈비뼈에 금 가 병원 후송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이어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세월호 유가족이 크게 다치는 일도 발생했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 최경덕씨는 “어제 가족 한 분이 이곳(광화문)으로 오던 중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이게 폐를 질러 피가 고여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다”고 말했다. 이 가족은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고 박성복 학생 어머니 권남희 씨로 어젯밤 병원으로 후송된 바 있다.

기본적인 통행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추모제 참가자 일부가 경찰 차벽을 타고 올라가는 등 저항하자, 경찰은 이들에게 캡사이신을 살포했고 이 중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경찰의 병력 투입과 통행 방해는 17일 오후까지도 계속됐다. 세월호 유가족 100여명은 경찰에 고립된 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민들에게 18일 오후 3시 열리는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족을 떠나보낸 지 1년, 제대로 된 추모조차 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경찰력에 둘러싸여 비통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러 와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며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부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국민들 스스로가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4월 18일, 가족들 곁으로 모여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세월호 1주기, 경찰들에게 막혀 광화문 광장에서 밤을 지새운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호소문> 전문.

▲ (사진=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우리 아들을 못 본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광화문에 아들 영정이 있어 시청에서부터 꽃 한 송이 들고 오다 경찰에 의해 막혔다. 또 한 번 기가 막혔다. 우리 아들. 사고 났을 때도 기가 막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기도 싫은데... 다른 부모님들께서 광화문 현판 앞에서 연좌하고 계신 다기에 우여곡절 끝에 겹겹이 쌓여있는 경찰들을 지나 힘들게 들어왔다. 대학생들 도움을 받고 날을 샜다.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며 긴 생각을 했다.

우리 아이... 작년 4월도 엄청 추웠다. 우리 아들. 우리 아이들. 사고 순간 얼마나 무섭고 추웠을까? 아이를 생각하면, 그 녀석들을 생각하면 이런 추위 따위, 이런 희생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내 사랑 아들, 무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이 길이 길다해도 엄마는 끝까지 가겠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어 앞으로 나아가니, 그것을 호도하는구나. 뒤가 아쉬워 뒤를 돌아보니 앞에 분노가 쌓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주춤하는 사이 우리 아이들 한은 그칠 줄 모르고, 눈물을 닦아 줘야 할 엄마 아빠들은 자신의 눈물을 닦기에도 벅차고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는구나. 이 구멍 난 가슴은 분노와 통곡과 절규에도 막아지지 않고 뒤에서 불어오는 호도에 더욱 커지기만 하네. 악의 무리와 싸워보지만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약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 훗날 좋은 세상에서 우리의 예쁜 자식들 만날 때 조금이나마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것이라도 해야지.

오늘도 분노와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해가 지고 또 떠오르겠지. 시민 여러분, 우리 가족들을 만나러 와 주십시오. 전국에서 모여주십시오. 안전한 나라 함께 만들고 세월호 진실도 함께 찾읍시다.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서, 내 자식에게 살기 좋은 나라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 아니 박근혜는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킨 것처럼 어제 4월 16일 우리 국민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참을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이 가장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국민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이 나라의 땅을 밟지 마십시요. 당신의 시민권을 박탈합니다.

그저 평범했던 우리 엄마 아빠들은 힘이 없습니다. 그저 금지옥엽 귀했던 내 새끼 어찌 그리 황망하게 떠나야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저희를 자꾸자꾸 고립시켜 작은 섬 하나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섬 하나는 주변에 우리 아이들을 삼켰던 그 시커먼 바닷물처럼 저희 또한 그렇게 숨을 쉬지 못하게 하네요. 저희는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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