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봉사하러 오는 곳이에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분과별 간담회가 있던 날이다. 분과별 위원장을 뽑는 첫 번째 회의 바로 전날이자, 분과가 선정된 후 첫 번째 만남이 있던 날이다. 대부분의 분과는 식당에서 모여 서로 인사 나누고,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자리를 가졌던 것 같다. 다음 날 있을 분과별 위원장과 간사, 온예산위원 선거에 대한 간단한 질의응답도 오고갔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밥을 먹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앞으로 있을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일정에 대해 서로 묻기도 하고, 연임된 위원들은 대략의 주기와 회의 패턴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분이 수줍게 본인의 당적을 밝히셨다. 퇴직 후 인터넷을 하다가 이런저런 사회 이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특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러다가 정당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힘은 없는 정당이지만”이라는 단서도 다셨다. 그 때 바로 등장한 반응이 하나 있었다. “전 정당, 당파는 다 싫어요.” 그때부터 정당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잠시 뒤 위원장 선거의 룰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선거 룰 중 일부분이 몇몇 위원들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 문제제기를 한 위원들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은 정해진 룰인데 왜 바꾸냐며 응대하기도 하고, 또 몇몇은 그냥 듣는 것으로 그 자리의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자리에서 정리될 사안은 아니고, 룰의 비합리성에 대한 공감은 어느 정도 되어있는 듯 하여, 일단 그 논의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다음 날 알아보는 정도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들렸다.

“위원장 선거 이런 것에 관심 갖는 분이 많으신가 봐요.”
“그러게요. 그런데 여기는 봉사에요, 봉사. 다른 것을 생각하면 안 돼요.”

봉사. 이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참여와 봉사, 여기서부터 우리가 풀어가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 다음 날 열린 각 분과별 회의를 마치고 전체 분과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주민참여예산위원의 직무규정에 대하나 이야기를 나눴다. 직무규정이라는 단어가 경직된 단어여서 그렇지, 내가 이해하기로는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과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 같은 것을 서로 합의하자는 자리였던 것 같다. 여기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내가 제대로 듣고 인지한 것이라면, “우리는 봉사하러 왔는데, 왜 자꾸 직무규정 같은 것으로 우리를 엮으세요. 좀 불편합니다.” 하는 발언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공감의 박수가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박수로 공감 받은 발언이었던 것 같다.

비단 이 현장에서만의 정서가 아니다. 제도의 진일보로 열린 정책 참여의 공간, 그 공간들 대부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분위기다.

봉사자로 호명된 개인이 위험한 이유

공적인 공간과 활동에 참여하는 자발적 노동의 의미에서 ‘봉사’의 의미를 부정하지도 않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런 ‘봉사’의 기회가 사라진 사회적 조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봐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 한 경험에서 언급 된 ‘봉사’라는 단어에는 좀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내 판단에 이 때의 ‘봉사’는 ‘정치적’의 상대적 개념이다. 즉, ‘봉사’는 정파성, 정치적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이면서 숭고한 활동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구의원 선거 운동을 할 당시 아침 유세 중 만난 한 유권자가 공격적으로 던진 질문 “그런데 봉사는 많이 하셨어요?”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인 것 같다.

매우 진부한 명제일 수 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개인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뉴스에 나오는 이슈에 대해 각자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고, 자기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갖고 있다. 그것을 정확히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판단 자체의 유무가 논쟁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판단을 보류하는 입장 역시 정치적 판단이다. 판단을 보류하는 입장도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사안을 잘 몰라서 내리지 못한 판단, 워낙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사회이기에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다는 판단, 그리고 정치적 발언 자체를 거부하는 판단 등이 판단을 보류하는 ‘정치적 판단’에 속할 수 있다.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시민들 역시 그러하다. 정치적이다.

▲ 서울시 생활권계획 수립을 위한 참여단 모집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사진=이태영)

무임금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봉사’라는 규정이 적합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탈정치’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봉사와 탈정치를 등치시키는 순간 우리가 접하게 될 가장 우려스러운 순간은 ‘토론 불가능’의 순간이다. 서로의 입장과 견해에 나누고, 이를 통해 정책을 생산하는 ‘참여’의 순간에 토론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봉사자’로 규정하는 순간 이 같은 토론은 ‘과잉’된 무엇으로 여겨지기 쉽다. 게다가 그런 순간 우리는 토론을 방해하는 새로운 장벽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 어떤 판단과 다른 판단의 경합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 토론이 ‘정치적’인 토론이 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토론의 흐름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든 그것을 정치적 판단으로 드러내어 하는 토론은 중요하다. 그래야 토론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 경험이 우리에게 참여의 효능감을 선물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은 지독하고 순수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그래서 당적을 가진 개인은, 혹은 그 개인들의 집합으로서의 정당은 오히려 정치적 토론의 공간에서 쉽게 배제된다.

봉사자로 호명된 참여정책 현장의 시민들에게 ‘정치적 개인’으로의 호명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정치적 개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기 객관화’라고 생각한다. 즉, 성찰적 시민이다. 공공성에 기반하여, 공동의 미래를 현실에 발 딛고 판단하고 기획하는 것이 정치적 개인이고 성찰적 시민이다. 그런데 봉사자로 호명 된, 그러니까 ‘좋은 활동’을 하는 선한 시민으로 불려지고 그 정체성을 선택한 우리는 어느 순간 스스로의 활동을 ‘객관화’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정치적 비판과 정치적 비난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사안에 대한 토론과 개인에 대한 공격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다시 한번 토론은 정지한다.

박원순 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이후, 제도적으로나 가시적으로 확대된 ‘참여’의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유이다. 참여한 개인들이 정치적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준관료화되거나, 참여를 독점하게 되는 현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순수한 개인에게 활짝 열린 제도, 정치적 개인에게 굳게 닫힌 광장

주민참여예산, 생활권계획, 각종 거버넌스와 다양한 공모사업. 우리에게 열린 참여의 공간은 점차 늘어난다. 이 공간에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나는 참여정책의 핵심은 ‘미래를 구상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미래에 개입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이고,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이 정책이다. 우리 사회가, 내가 살아가는 지역이, 그리고 나의 일상이 어떤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훈련, 그리고 그로부터 만들어진 정치적 판단으로부터 ‘참여’가 만들어질 때, 우리에게 확보된 제도화된 영역이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4월이다. 후쿠시마 이후에도,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패배감과 피로함, 그리고 무기력함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또 다른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순수한 개인의 참여를 독려하는 정책은 넓어지고 있지만,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개인들에게 광장은 더 문을 닫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 개인으로, 일상과 사회 모든 영역에 열린 제도의 공간에 참여해야 한다. 후쿠시마와 세월호와 분리되지 않는 우리 일상의 고민을 참여의 공간에서 풀어내야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럴 때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응답할 것이다.

▲ 4월 16일, 굳게 닫힌 광화문 광장. 하물며 그것이 추모의 마음이더라도, 정치적 구호를 가진 개인으로 판단된 사람들은 광장의 시민으로 초대받지 못한다. (사진=이태영)

이태영 /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30대 초반, 지역활동가이자, 녹색당원. 풀뿌리사회지기학교와 신촌민회, 체화당이 어우러진 신촌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있고, 서울녹색당의 정책위원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직한다.”는 목표로 2014년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 낙선했다. 아직 그 목표는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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