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팽목항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려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통령의 방문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또, 이들은 정부가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한 명확한 일정 등의 계획을 밝히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날 유가족들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이런 기본적인 조치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서 유가족들에 대한 정치적 무력화에만 골몰하는 정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17일 <대통령 거부한 세월호 유족들, 대한민국과 등지겠다는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유가족들의 태도를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식에 대해 “정부 주최로 대통령은 물론 행정·입법·사법 등 3부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들의 넋을 온 국민과 함께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어야 한다”면서 정부와 유가족 간의 갈등으로 안산합동분향소에서 개최하도록 결정됐다는 점,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에 방문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유가족들이 거부했다는 점, 유가족들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이를 막았다는 점, 안산시가 주최하기로 한 합동추모식도 유족들이 취소했다는 점 등을 열거했다. 또,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선체인양을 약속했다는 점,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회의에서 유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행령안을 고치라고 지시했다는 점 등 역시도 열거했다.

▲ 조선일보 17일자 사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은 예산 부담이 적지 않은데도 세월호 선체 인양을 받아들이고 시행령 문제도 유족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합동 추모식은 물론 대통령의 팽목항 위로 방문까지 거부했다”면서 “대통령을 끝내 거부한 유족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과 등을 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해줄 것 다 해줬는데 뭐가 불만인가”라는 세속적 논리를 지면에 옮긴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대통령이 세월호 선체 인양과 시행령안 개정을 언급했음에도 유가족들이 이를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규정하는 것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직후 정부는 선체 인양을 거론했고 유가족들은 일단 실종자를 찾고 나서 인양을 할 것을 요구했다. 실종자들이 내부에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체를 인양할 경우 오히려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실종자들이 하나 둘씩 비참한 상태로 발견된 이후 어느순간부터 새누리당 내에서 선체 인양을 하지 말고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 추모공원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수차례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세월호 인양 반대 논리를 생산해낸 바 있다. 첫째로 컨테이너와 진흙 등의 무게 때문에 원형보존 인양이 어렵고 둘째로 천문학적인 인양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셋째는 인양 과정에서 추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근거였다.

그러나 김진태 의원 등이 세월호 인양 불가론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이미 정부와 유가족들간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후였기 때문에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당시 국정조사특위원장이었던 심재철 의원이 카카오톡을 통해 유가족들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을 유포하던 것을 들키는 등 세월호 참사 이후 조치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만한 행위를 반복했다. 여당 조직, 종편, 특정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한 보수세력의 거대한 흑색선전 때문에 유가족들은 배상 및 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는 포기하고 오로지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만을 내걸고 세월호 특별법 쟁취를 위한 싸움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선체인양은 여전히 진상을 규명하자는 차원의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믿을 수 없는 행동으로 일관해왔던 집권여당과가 정부가 인양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질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상규명을 거부하는 하나의 ‘술수’로 비춰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미 흑색선전에 지칠대로 지친 유가족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의심을 갖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에 ‘구체성’이 빠져있다는 것도 이들이 의심을 풀지 못하는 하나의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체 인양 계획을 언급하며 ‘가장 빠른 시일 내에’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간 보수언론 등의 보도를 보면 선체가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은 정권 말이 돼서나 가능할 수 있다는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과연 이번 정권 내에 선체 인양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행령을 고치라고 지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을 일부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은 해양수산부 관료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시행령안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가 이후 쟁점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파견 공무원 비율 조정과 새로 만들어지는 기획조정실의 명칭 변경 정도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유가족들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 등은 시행령을 새로 제정하는 것만큼의 대폭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칫하면 정부가 소폭의 개정만을 용인하고도 “원하는 걸 들어줬지 않느냐”라며 생색을 내고, 이것이 다시 마타도어화 되는 상황까지 예측해볼 수 있다.

이런 판국에 박근혜 대통령이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시행령, 그것도 원만하게 해결이 되도록 신경을 많이 쓰기를 바랍니다”라는 정도로만 발언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런 맥락들을 모르지 않을것임에도 위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1주기를 지나면서 세월호 관련 이슈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제 그만 끝내자는 것이다.

▲ 조선일보 17일자 3면.

<조선일보>는 사설이 아닌 3면 보도에서도 ‘꼼수’를 부려놨다. 박근혜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을 거부한 유가족들을 다룬 기사 하단에 새누리당이 시행령안을 수정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기사를 배치하고 다시 하단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전 배·보상 논의를 거부하고 있지만 단원고 희생자 유족 2명이 배상금과 위로지원금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돈’을 소재로 한 마타도어를 버텨내며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보도가 어떤 맥락에서 기능하게 될지는 명백하다. 결국 <조선일보>의 이러한 태도는 세월호 1주기 이후 보수언론의 보도 전반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에 대한 우려를 안겨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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