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을 밀어 올리는 와이퍼가 살짝 떨릴 만큼, 봄비라고 하기엔 너무 거센 비였습니다. 안산으로 내려가는 길, 라디오는 대통령이 팽목항에서 읽은 대국민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팽목항이구나’ 아침까지도 확인되지 않던, 대통령의 동선이 결국 ‘팽목항’으로 정리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국가적 슬픔에 대통령이 한 마디 말도 보태지 않고 떠난다면 그 공허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일정을 몰라 비행기를 어디서 타는지도 모른 채, 광주까지 내려가야 할 기자들과 사절단의 불편이야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안산에 도착할 때쯤, 비가 조금 수그러들었습니다. 하늘도 울고 있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냥 그 비가 좀 야속했습니다. 굳이, 오늘 같은 날 이런 비를 뿌려야 하나. 잊지 않고 그들을 기려주려는 사람들 불편하게 말입니다. 그 뜻에 불편함이 있지 않고, 날씨야 대자연의 선택이란 걸 알면서도 조금 울적해졌습니다.

▲ 하필 비가 왔다. 안산 합동 분향소는 몇 번을 가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공간이다. (사진=미디어스)

몇 번 와봤지만, 언제나 그 거대하고 낯선 영정의 스펙터클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무엇입니다. 다시 그 무엇 앞에서 그날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있을 때쯤, 소란이 났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낯짝이 있으면 오지 말아야지” 전혀 여과 장치를 통과하지 않은 날 것의 분노가 그 영정 앞, 엄숙한 시공간을 완전히 갈랐습니다. 누가 왔나, 봤더니 김무성 대표님이었습니다. 국회에 드나들던 시절 몇 번 뵌 적은 있었지만, 그래서가 아니고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둘러싸여 있는데도 우뚝 서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역시 풍채가 좋았습니다.

밀려나듯 쫓겨나셨습니다. 우산을 받치는 수행원, 항의하는 유가족을 떼어내려는 사람들,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따라 붙은 기자들, 그림을 놓칠 수 없는 카메라들까지. 한데 뒤엉켜200여 미터를 뒹굴다시피 이동했습니다. 한 마디도 않으셨습니다. 등 뒤로 쌍욕이 날아와 꽂히고, 육두문자가 여??대표의 위신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었지만 묵묵히 가시기만 하더군요. 우산을 겨우 받쳐 들고, 한발 떨어져 쫓아가며 우뚝해 보이던 대표님의 지금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굴욕과 침묵이 언젠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지 아니면 그런 건 따질 겨를도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인지 헛갈렸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이 김무성 대표의 차를 막아서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렵게 차에 올랐지만, 대표님의 차는 ‘고착’되었습니다.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집회에서 경찰이 물리력을 동원해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고착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판단 유예이지요. 곧 연행할 수도 있고, 상황이 좀 진정되면 해제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고착의 순간, 차 안에서 대표님은 또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집회에선 보통 ‘고착’되면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아니,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걱정입니다. 이럴 이유가 없는데 공권력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분노’와 행여 연행이 될 경우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입니다.

대표님도 그러셨습니까. 물론, 좀 다른 고착이었습니다만 비박계의 대표 선수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나름 할 만큼 하고 있는데 행여 저들이 너무한다 싶은 마음이 드셨나요. 아니면 가뜩이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얼룩진 안개 정국에서 해결되지 않는 세월호 문제가 더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여지셨나요. 공교롭게도 대표님의 차량이 고착된 그 자리 곁에 ‘제발, 지겹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어떻게 자식이 지겹나요’란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 경찰 병력이 출동하고 나서야 김무성 대표의 차는 움직일 수 있었다. ⓒ연합뉴스

그리곤 잠시 후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2시가 넘어서까지 그 고초를 겪고 계셨는데, 그새 청와대로 가셨습니다. 후에 말씀하시길, 12시에 연락을 받으셨다고 하니 침묵으로 바삐 움직이던 그 발걸음은 아마도 청와대를 향한 잰걸음이었나 봅니다. 대표님을 만나기 직전까지, 청와대의 행보는 만취한 사람의 발걸음마냥 휘청거렸습니다. 청와대에서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이들이야 ‘추모’도 하고, 여당 대표 ‘회동’도 하고, 어쨌든 경제 외교를 위한 ‘출국’도 무사히 했으니 모로 갔어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들은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당일 아침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대통령의 동선, 직전까지도 공개되지 못한 일정, 유가족이 봉쇄해버린 분향소 앞에서의 구겨진 추모까지. 일국의 총리가 온 국민의 조롱꺼리가 되는 것도 그렇고 일국의 대통령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불안하게 가는 모습은 이유가 어찌되었건 나와선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그냥 무능도 아니고 국정 마비입니다.

대표님과의 회동에 눈길이 쏠린 것 그 때문입니다. 할 말은 하는 여당 대표, 엄혹한 정국, 극단적 수세에 몰려 있는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선택한 단 하나의 만남. 모든 것이 그 회동의 의미를 뜨겁게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차라리 아니한 만 못한 만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대표님은 ‘명분’과 ‘실리’도 모두 잃으셨습니다. 공식 브리핑을 하며 내내 굳어있던 대표님의 표정은 그래서였나도 싶습니다.

우선, ‘명분’입니다. 대통령의 조문은 ‘폐쇄’되었고, 대표님이 분향소를 갔는데 추모제는 ‘취소’되었습니다. 그 폐쇄와 취소 직후,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당정청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특별한 형식으로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추모를 하네 마네, 할 것이면 안산으로 와 달라가 논란일 때, 과단성 있게 공식 추모제 시간에 맞춰 안산을 찾은 행보는 돋보였습니다. 정치는 때로 시원하게 욕을 먹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볕든 자리만 찾는 행보로는 결코 민심을 위무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대통령과 만나시려거든 안산에 갔던 그 입장을 관철시켰어야 옳았습니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그 자체로 성완종 게이트의 ‘몸통’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만날 것이면 최소한 대통령의 입을 통해 당이 아닌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지겠다는 말씀 정도는 끌어냈어야 합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님은 “대선은 내가 책임지고 치른 선거”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합니다. 당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했다고 했지만, 그 가감 없음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은 너무 미약합니다. 아니, 가감 없음 자체가 모호한 얘기입니다. 이 예민한 시기에 ‘해석’을 남기는 대화는 그 자체로 무능한 모습입니다.

▲ 유가족들의 항의에 김무성 대표는 항의하는 사람, 취재하려는 사람, 찍으려는 사람, 막으려는 사람들과 뒤엉켜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사진=미디어스)

두 가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첫째, 대표님의 소위 ‘말발’이 그렇게 청와대에 위력적이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얼핏 엿보이던 여당 내 야당의 포지셔닝이 이제 쉽지 않게 됐다는 점입니다. 어제 회동으로 대통령과 당의 관계가 분리는커녕 완전히 종속적이란 것만 또 드러났습니다.

‘실리’적인 면에서도 낙제점입니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오늘 자 보도들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 ‘이완구 총리 해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위시로 한 보수 언론은 이미 ‘사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다는 ‘전언’들도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성과는 대표님의 것이 될까요. 아닙니다. 돌아와서 결정하겠다는 대통령의 몫입니다. 당 안팎에서 사퇴 요구가 공공연했는데, 대통령이 그걸 몰라서 들은 건 아닐 겁니다. 중요한건 답인데 그걸 독대를 하고도 못 들으셨습니다.

중요한 건 오히려 그 다음 문맥입니다. 대통령은 다시한번 ‘정치개혁’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새로운 ‘성완종 리스트’를 흘리며 야당 중진 7~8인의 비리 연루 의혹을 흘립니다. 정치권이 모두 더럽혀질 공산이 큽니다. 가뜩이나 팽배한 정치 냉소의 분위기는 대통령이 없는 열흘 동안 더 커질 겁니다. 그리곤 대통령이 돌아옵니다. 정치를 개혁해야 할 주체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는 그림으로 상황이 수렴되면 어떻게 될까요. 대통령을 반대하는 진영은 아마 넌더리를 낼 것입니다. 여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은 아마도 대통령의 결단을 칭송하겠지요. 거기서 대표님의 역할은 있을까요? 이런 말씀 면구합니다만,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물론, 성과라고 할 것도 있습니다. 세간의 말대로 총리가 식물이 아니라 병풍이 되어버리고 대표님이 사실상 국정의 2인자라는 점이 각인되었습니다. 여권 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마당에 이 위엄은 상당한 ‘프리미엄’이 될 것입니다. 위기의 대통령이 독대를 청하는 인물은 그럼에도 여전히 40%의 지지율을 갖고 있는 대통령의 콘크리트 기반을 생각할 때, 앞으로도 꾸준히 대표님께 상당히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대선 자금’을 향해 갈 것이고 ‘구정치의 퇴장’을 요구하는 대중적 열망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읽은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정치개혁’을 얘기한 것이겠지요. 이미 ‘대선 자금’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신 마당이니, 대표님이 선택할 지점은 ‘구정치의 퇴장’밖에 없습니다. 이완구 해임의 깃발을 들고, 지난 대선까지의 문제는 여야 양비론으로 묶고, 새로운 시대를 표상하는 리더십으로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대표님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였습니다.

차기 지지율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지난 대선의 당사자였습니다. 대선자금 문제가 나오면 계속 공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위치입니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의 공격수들이 계속 참여정부와 문재인 책임론을 성완종 게이트에서 거론하는 것 역시 그것밖엔 돌파구가 없는 상황의 고육지책이고, 그 고육지책이 먹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억지로 선택한 이완구 총리를 구정치로 묶고, 자신있어 하시는 대선 자금에 대해서는 쿨한 태도를 유지하며 순리대로 타고 넘는 것이야말로 구정치와 결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회동으로 대표님 역시 이제 거기 묶여 버렸습니다. ‘대선은 내 책임’이었단 말은 감정적으로야 의리있게 들리고, 지지층들 사이에선 파급이 있을지 몰라도 사안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위험한 줄타기입니다. 대선자금 3인방이라고 불리는 ‘홍문종, 유정복, 서병수’가 모두 거론되고 있는 때입니다. 이미 장악된 검찰이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쏟아지고 있는 언론 보도를 차단할 노릇은 없습니다. 대선자금까지 의혹이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치개혁의 명분을 쥐는 건, 그야말로 나머지 잘못을 실무자의 책임으로 돌리게 되는 꼴이 될게 뻔합니다. 책임을 지고 치른 선거지만, 대표님도 결국 그 선거의 실무 책임자셨습니다.

▲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했다. 비행시간까지 늦춘 만남이었다. 김 대표는 무얼 얻은 걸까. ⓒ연합뉴스

물론, 이 부분이야 그래도 정말 문제가 없다면 괜찮겠지요. 하지만 어제 회동으로 대표님은 대통령에게 깃발을 뺏기고, 그간 애써 쌓아왔던 차별화의 이미지마저 뭉개졌습니다. ‘정치개혁’의 구호를 외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남아있는 선거가 없는 권력입니다. 당장엔 펄펄하게 살아있지만, 끝이 분명한 권력입니다. 하지만 대표님은 다릅니다.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이 위기 국면의 얼룩은 고스란히 새누리당에 남을 것이고, 그 얼룩을 닦아 일생일대의 선거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대표님입니다. 근데, 대통령이 결단하고 새누리당은 그걸 단순히 지켜보는 처지로 남는다. 이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로 설명 드리지 않아도 대표님이 더 잘 이해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다시 ‘대통령의 남자’가 되셨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주인’에선 한 걸음 멀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 얘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세월호 ‘인양’을 밝혀주십시오. 기술적 검토가 이미 끝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술이란 것이 단순히 공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기에 계속 판단을 유예하고 있을 뿐입니다. 애매한 태도가 아닌 분명하게 ‘인양’을 결정해주십시오. 그리고 ‘시행령’에서 벌어진 장난을 거두라고 정부에 말해주십시오. 공무원의 지휘로 공무원이 공무원을 조사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너무 자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세월호 사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그 누구도 지금껏 하지 못했던 전향적인 선택을 해야 해법이 안 보이는 ‘성완종 게이트’를 풀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의 ‘결별’없이는 제 아무리 카리스마를 가진 대표님이라도 '영'을 세울 도리가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통한 결별만이, 성완종 게이트를 극복할 공간을 열 유일한 출구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완구 총리에 대한 거취 판단이야 이미 대통령의 몫이 됐으니, 행여 ‘반전의 도모’를 꾀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구시대적인 정쟁을 더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쩌다보니 함께 비를 맞은 사이가 되어 두서없이 긴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표님이 선택하실 수 있는 열흘 남짓의 시간, 부디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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