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정치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15일 대정부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에 대해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측면에서 수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날 세월호 참사 1주기 현안점검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한 번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향후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호응하듯 검찰은 곧바로 경남기업 본사 등 업체 4곳과 전·현직 임직원 11명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는 물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남긴 인터뷰와 ‘금품 메모’에 대한 수사에서 필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결국 정치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사정정국을 예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설득력있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 조선일보 16일자 1면.

보수언론도 정권의 이러한 행보에 발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날 1면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징후적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한 사진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완종 리스트’ 관련 소식으로 1면을 채웠다. 검찰이 수사를 위해 성완종 전 회장 측근들을 ‘줄소환’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성완종 전 회장이 자신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지원해 이완구 총리가 수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기사, 박근혜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관련 발언 관련 기사, 성완종 전 회장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3일 검찰조사에서 ‘전달자’로 알려진 윤승모씨에게 생활자금으로 돈을 건넨 것이라고 증언했다는 기사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주목할만한 것은 성완종 전 회장의 윤승모씨 관련 증언에 관한 기사다. 홍준표 지사는 그간 자신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종종 돈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윤승모씨가 중간에 ‘배달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하고 있는 검찰조사 내용은 성완종 전 회장이 홍준표 지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윤승모씨에게 돈을 건넨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어 홍준표 지사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다만, 성완종 전 회장이 당시 정치권 유력 인사들을 통한 ‘구명’ 활동을 포기하지 않던 시기이기 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거짓증언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 조선일보 16일자 5면.

<조선일보>의 5면 보도 또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국회 정무위원회 등을 통해 금융회사 등에 경남기업 지원 등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성완종 전 회장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지은 ‘랜드마크72’를 매각하려 했으나 총투자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매수자가 제시해 매각을 포기했다는 기사 또한 배치했다. 두 기사를 엮어서 보면 성완종 전 회장은 정경유착으로 방만한 기업 운영을 계속 유지해 위기를 키워온 시점이었다는 서사가 가능해진다.

<조선일보>는 같은 면 하단에 한화갑 전 의원을 취재한 기사를 배치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한화갑 전 의원은 2007년 12월 사면복권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통해 로비를 하였음에도 사면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후원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을 통하자 사면복권이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조선일보>는 또 성완종 전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사면된 것에 대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관계했을 가능성 역시 언급하고 있다. 즉,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한화갑 전 의원이 재정적 후원자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을 통해 사면복권됐듯 성완종 전 회장에 있어서도 ‘유사한’ 관계의 영향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맥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완종 전 회장과 참여정부가 ‘돈’으로 연결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를 준 것이다.

▲ 동아일보 16일자 2면 기사.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비교해 좀 더 노골적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2면에 이완구 총리가 “여야를 막론하고 성완종 전 회장에게 후원금을 받았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2004~2014 고액후원자 명단에 성완종 전 회장 명의로 된 고액 후원금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30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한 번에 후원하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는 후원자의 이름, 직업, 주소 등을 공개하게 돼있는데 성완종 전 회장이 운영했던 경남기업이나 대아건설 직함으로 고액 후원금을 낸 사례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사례를 들어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야권에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동아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이 성완종 전 회장에게 500만원을 후원받았다고 밝히면서 당시 후원이 2명의 서로 다른 이름을 통해 300만원과 200만원으로 나뉘어 이뤄졌다고 설명한 점 등을 언급하면서 이완구 총리가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점 등을 다시 강조했다. “수사가 야당에까지 번질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는 얘기다.

▲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서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성 회장이 의도적으로 타격을 주고 싶은 사람만 골라 명단을 밝힌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면서 “그러나 성 회장은 평소 정치권의 마당발로 소문난 데다 그가 남긴 자료에는 다른 여야 정치인과 관료, 공기업 관계자 등도 다수 등장한다. 성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두 번씩 특별사면을 받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성 회장과 접촉한 사람이 반드시 돈과 연관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에 거론한 8명에게만 부정한 돈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여야에 걸쳐 상당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면서 “검찰은 성 회장이 설정한 ‘복수 구도’를 넘어서는 수사 역량을 발휘해 이 많은 돈이 누구에게 갔고 어디에 쓰였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반복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의 보도와 사설을 종합하면 보수언론이 그리고 있는 사건의 실체(?)가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성완종 전 회장은 경남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정치권의 압력을 통해 기업의 위기를 극복해왔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치권에 돈을 뿌려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더 이상 이런 방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성완종 전 회장이 앙심을 품고 ‘복수심’에 벌인 일이며, 박근혜 정권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정치권 전체에 만연한 정경유착 관행을 뿌리뽑는데 나선다는 게 유력한 시나리오다.

▲ 중앙일보 16일자 1면 기사.

또 흥미로운건 보수언론이 이완구 총리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어를 포기한 듯 보인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의 관련기사에서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회장으로 부터 ‘비타500’상자에 담긴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 총리와 주변 인사들의 부인에도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은 이 총리에게 상당히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또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사람 중 단 한명이라도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 뻔한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불법자금 수수 의혹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사는 이완구 국무총리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완구 총리의 사퇴론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중앙일보 16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이완구 총리가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 외에 별도로 성완종 전 회장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 이완구 총리의 출판기념회에서 5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도 이완구 총리의 오락가락 해명 등을 문제 삼으며 “정부 2인자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을 갖췄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며 “실체적 진실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온 처신과 태도만으로 총리로서의 품격과 도덕성에 심대한 흠결을 남겼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에둘러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보수언론은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등을 진지하게 문제삼고 3천만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한 인터넷 패러디물 등을 소개하는 등의 기사를 공통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태도가 향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 방침과 이완구 총리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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