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확대되면서 신문들의 반응은 이완구 총리의 거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수준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은 사실상 이완구 총리의 사퇴를 거론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15일 1면에 전날 새누리당이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이날 오전 이 총리 관련 의혹이 보도되자 ‘직무 정지’, ‘자진 사퇴’ 등의 의견을 지도부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여당 내부에서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사퇴를 언급하는 수준까지 논란이 확대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조선일보 15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2면 보도에서 “만약 성 전 회장의 주장대로 돈이 전달됐다면 정치자금법에 저촉된다. 이 총리가 재선거 당시 이 돈을 받았다면 회계 처리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 당시 이 총리는 공무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뇌물죄 성립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즉, 사실상 의원직 상실까지 거론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날 사설면을 보면 보수언론이 이 사건 때문에 입은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직관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이 사건에 대해 길고 장황한 사설을 썼는데,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헌정 사상 현직 총리가 부정부패 의혹에 연루돼 검찰에 불려 나간 전례가 없다”면서 “총리는 국정 2인자이고 헌법상 대통령의 직무대행권자이다. 이 총리가 이런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조선일보>는 “이 총리가 현직에서 검찰 수사를 받으면 곧바로 수사의 공정성을 두고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총리는 법적으로 검찰을 지휘할 권한은 없지만 검찰 인사 권한을 갖고 있는 법무부 장관을 밑에 두고 있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쩔쩔매온 검찰의 과거 때문에 이번에도 과연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팽배한 상태다”라고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 특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특검 임명과 수사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 기간 동안 이완구 총리가 ‘형사 피의자’ 신분으로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국민은 박 대통령이 출국 전에 이 총리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 최소한 이완구 총리의 직무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 조선일보 15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그러면서 또다른 사설을 통해 여야가 정치자금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노동·공공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내놓았다. 노동·공공·금융·교육에 대한 개혁은 박근혜 정권이 3년차를 맞아 야심차게 내놓은 국정계획이다. 이것이 이번 사건 때문에 좌초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즉, <조선일보>가 이 문제에 대해 사설면을 할애한 것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문제로 박근혜 정권이 사실상 ‘식물 정권’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혼란은 <동아일보>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돈을 준 시점과 장소 명목을 적시한 진술이 나온 만큼 이 총리는 피의자 신분을 면하기 어렵다.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받았다는 사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줬다는 사람의 진술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면서 “어제 새누리당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총리부터 조속히 수사하라’고 검찰에 촉구한 것은 총리 사퇴까지 거론되는 당내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15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또 “이 총리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이상 검찰은 신속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면서 “재임 중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한 도쿄지금 특수부를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은 오른팔이라도 베어내겠다고 각오하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공개적으로, 육성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검찰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면서 “이 총리도 스스로 사퇴해 본인과 박근혜 정부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이완구 총리의 사퇴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태 수습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중앙일보 15일자 1면.

<중앙일보>는 이날 1면을 모두 이완구 총리 관련 소식으로 채웠다. 성완종 전 회장의 비망록에 20개월간 이완구 총리와 23차례 만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필두로 성완종 전 회장의 최측근들이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5만원권을 담아 들고 이완구 총리의 선거사무소로 갔었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기사, 부패척결을 외치다 3천만원 때문에 사정 대상이 돼버린 이완구 총리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기사 등이 그것이다. <경향신문>이 성완종 전 회장의 죽음 직전 50분간 인터뷰한 내용을 ‘무기’로 쓰고 있듯 <중앙일보>는 ‘비망록’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는 셈이다.

▲ 중앙일보 15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5면에 충청권 민심을 전하고 6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 때 항상 정면돌파를 선택했다는 측근들의 주장 등을 전했다. 좋게 말하면 사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전하자는 취지로 보이고 나쁘게 보자면 갈팡질팡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날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길고 장황한 사설을 배치했다. 이 사설은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워 보인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에서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과 목숨 운운하는 경망스러운 발언을 질타하면서 여당이 총리부터 수사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초유의 사태라고 평가하고 이완구 총리가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그게 어렵다면 즉각 수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검찰이 총리를 수사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이완구 총리가 직을 내려놓거나 아니면 특검을 실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를 해야 하고, 그래야 야당도 수사할 수 있고, 박근혜 대통령은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이완구 총리가 법리로는 살아남을 수 있지만 민심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나라는 총체적 위기이며, 성완종 리스트는 개발연대 시대에 성장한 엘리트들의 부패와 권위의식이 쌓인 끝에 나온 추악한 자화상이라는 내용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이날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이하경 논설주간의 칼럼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탄 배는 지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어느 낯선 항구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 어디로 뱃머리를 돌려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포리아(aporia)의 절망이 기다릴 뿐이다”라는 절망적 낭만으로 시작되는 이 칼럼에서 이하경 논설주간은 세월호 참사 1년과 성완종 리스트가 보여주는 정경유착을 언급하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교섭단체연설을 예로 들며 ‘건강한 보수’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어떤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이완구 총리를 둘러싼 의혹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시점에 굳이 이런 두서없는 방식으로 주장을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중앙일보 15일자 칼럼.

<중앙일보> ‘횡설수설’의 원인으로 꼽아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하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이것 저것 되는대로 말을 하려다 스텝이 꼬인 경우. 다른 하나는 이런 엄청난 사태를 앞에 두고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으나 그렇다고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늘어놓아 버린 것. 이도 저도 아니면 우리가 추측할 수 없는 배후의 어떤 문제가 있거나 단순히 JTBC 보도와의 보조를 맞춰보려고 한 것일수도 있다. 분명한 건 보수언론의 이런 혼란들이 집권세력이 처한 위기의 단면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시간은 자비없이 흐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환점을 돌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정권이 바뀔 걱정을 해야 한다. 이래저래 보수언론의 머릿 속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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